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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an 23. 2024

눈 내리는 날.. 아들은 볼 수 없었다

비행기 결항으로 아들이 내려오지 못한 날..

소복이 내린 눈은 여름에 떠난 아들의 엄마와의 상봉을 막았다. 


오랜만에 내린 폭설에 제주는 다시 멈춤이다. 

어젯밤에 내린 눈이 제주 곳곳에 소복이 쌓였다. 기온도 낮아서 내리는 눈은 금방 결빙이 된다. 대로를 벗어난 이면도로는 온통 함정이다. 최근에 눈은 강풍을 동반해서 같이 찾아온다. 

이런 날 제주공항은 급변 풍이 분다는 이유로 잠시 멈춤을 한다. 오늘도 종일 거의 모든 비행기 편이 결항이라고 뉴스가 뜨겁다. 



며칠 전 하나로마트에 장 보러 간 날이다. 한 달에 몇 번 가는 마트, 대충 코스도 일정하고 구입하는 물품도 비슷하다. 애들이 모두 서울 생활을 하고 우리 부부 둘만 사는 생활이라 말 그대로 대충이다. 오늘도 그런 일상이다.


"오겹살이나 사고 갈까? " 아내가 정육 코너를 기웃거리더니 고기를 사고 싶은 모양이다.

"맘대로, 먹고 싶으면 사고.." 난 평소 하던 대로 무심코 대답했다.  

"아니, 아들이 이번주에 오자나, 좋아하는 고기를 구워줘야지.."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우리 집 막내이자 유일한 아들이 드디어 집으로 오는 모양이다. 여름방학 때 내려왔다가 올라간 후로 아들의 실물 영접을 못 한 아내다. 학기 중에 몇 번 서울로 간다고 약속은 했으나 서로 간의 일정이 안 맞아서 가지를 못해서 아들의 모습이 꽤나 궁금한 아내다.  

엄마는 아들이 방학하고 곧장 내려왔으면 했는데, 입대를 앞두고 안과 치료를 받는다고 누나네 집에 머물었다. 보름간의 병원 진료가 마무리되자마자 아들도 엄마가 보고 싶다고 내려온다고 한다. 그게 다음 주다. 

아내는 아들이 내려오면 가장 좋아하는 오겹살을 구워주려고 미리 준비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나온 김에 유심재에 가서 직접 재배하고 있는 싱싱한 쌈 채소도 넉넉하게  수확하고 왔다.



아들을 픽업하러 내가 나가야 하는 만큼, 내가 시간이 가능하고 항공권이 가장 저렴한 날을 골라서 일정을 잡았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어제부터 오늘은 강풍과 폭설 예보가 되어 있어서 아내가 걱정을 많이 했다. 

"내일 날씨 때문에 비행기가 결항돼서 아들이 못오는 거 아닌가?"  기다리던 일을 망치는 것 같은 기분에 아내는 이내 뒤숭생숭한 모양이다. 

"아니 그 정도야 하겠어? 내일 한번 보자고.."


우리 집은 거실이 침실인 까닭에 누워 있어도 하늘과 한라산을 볼 수 있다. 

" 어.. 밖이 하얗네, 눈이 쌓였어요.." 아침 시간 밖을 보던 아내가 평소에 눈을 보면서 하던 느낌과는 다르게 얘기를 했다. 

"차가 못 다닐 정도야? "

"아니 그 정도는 아닌데..., 혹시 아들한테 비행기표를 바꾸라고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아들이 탄 비행기가 제대로 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최근에는 폭설이 오는 날은 여지없이 강풍이 동반되어서 제주공항이 마비되었던 까닭에 아내의 걱정은 이해가 되었다. 

"좀 더 두고 보지 뭐.."라는 말을 남기고 나는 아침 일정을 위해서 준비하고 밖으로 나갔다.



창문 밖은 온 천지가 하얗다. 주차장에 차들과 놀이터는 모두 흰 눈으로 덮여 있다. 길은 얼어 빙판이다. 조심조심 몸을 잔뜩 움츠리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평소 한적한 버스정류장은 북적인다. 사람 사는 동네인 것 같다. 

평소 제시간에 착착 도착하던 버스도 시간을 잠시 비껴간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도 덜그럭덜그럭 체인 소리를 내면서 달려야 하기에 연착이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하루사이에 엉금엉금 거북이가 되었다. 모든 게 슬로비디오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 타의에 의해서라도 한 번쯤은 테이프를 느리게 돌려 보는 것도 괜찮은 듯싶기도 하다.


요즘 제주공항은 일찍 일찍 일을 결정하고 마무리를 한다. 몇 번의 경험으로 관록이 쌓인 것이다.

예전에는 날씨가 나빠도 끝까지 상황을 보면서 결항 여부를 결정했기에 시간이 다다라서야 결론이 나온다. 

공항까지 갔다가 결항을 알고는 투덜투덜할 수 없이 돌아서고 했었는데, 이제는 일찌감찌 문자 연락을 준다.


당초 탑승 시간이 오후 15시 10분 비행기인데, 오전 10시가 되니 결항한다고 문자를 받았다. 


아내의 예감이 맞았다. 역시 여자의 직감은 무시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나는 오늘 또 한 번의 진리를 어겼다.


한동안 가족 단톡이 시끄럽다. 이젠 다시 일정을 잡고 비행기표를 예매해야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대로에 눈은 없다. 차들은 쌩쌩 달린다. 

대로를 벗어난 이면도로나 뒷길은 아직 빙판이다. 까치발을 하고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눈은 소복소복 쌓이고 차가운 공기로 금방 빙판이 된다. 바람은 강풍이다. 추운 강풍이라 몸은 저절로 움츠려진다. 비행기가 결항이 될 만도 한 날씨다.  


" 이 정도면 비행기가 올 수 있는데.., 왜 결항이야..?" 

집에 들어서니 아내가 아들이 오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듯 이내 투덜 투덜이다. 


오늘은 

아들 대신 내가 오겹살을 구워서 아내와 함께 따뜻한 소주 한잔을 해야 할 듯싶다.

문을 두들기는 바람 소리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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