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모님의 마음을 언제 이해할 수 있을까?

by 노고록

승용차로 1시간 어머니가 혼자 계시는 서귀포에 다녀왔다. 10일 만이다.


우리 부부는 오늘 애월에 있는 유심재(장모님이 거주하시던 농가)에 가서 텃밭을 정리하기로 돼있었다.


"다음 주에 시간이 되는 날에 어머니 보러 갈까?" 오늘 아내와 같이 아침을 먹다가 불쑥 던진 말이다.

"난, 목요일 빼고는 모두 가능하니까, 당신이 시간 되는 날 정하면 돼요,

그런데 주중에는 신경 쓰이니 주말이 가는 게 좋을 듯싶은데" 아내가 당연하듯 대답했다.

" 아! 그렇구나, 그럼 오늘 갔다 올까?" 해서 결정된 일이다.


갑자기 어머니가 궁금했다.


이제 94세, 구순이 훨씬 넘으신 어머니는 서귀포에 혼자 사신다. 5남 4녀를 낳고 기르시는데 온 삶을 바친 분이다. 나이 들면서 우려하던 치매도 없고, 정신건강도 온전한 편이다. 지금도 기억력이나 셈은 우리보다 빨라서 가끔은 주위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힘든 삶의 훈장인지 육체적인 건강이 많이 안 좋다. 다산과 어려운 생활환경을 혼자 견뎌내면서 궂은 일을 마다 않던 지난 세월이 홀로된 몸에 녹아내린 것 같다. 이젠 집안에서도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할 정도다. 작년 말부터는 식료품을 사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일, 식사준비 등 외부 출입이 필요한 일이나, 혼자 서서 하는 일은 어렵다고 하신다. 이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낳고 기른 자식이 아홉이나 되지만 다들 자기네들 생활이 있고, 타지에 거주하는 자식이 많아서 어머니를 곁에서 일일이 캐어할 수 없는 실정이다. 비교적 가까이에 있는 누나가 지극 정성으로 오가며 캐어를 하기는 하지만, 누나도 이제 칠순이고 최근 건강도 갑자기 안 좋아져서 한계에 다다른 시점이다.


어머니는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조부모님 슬하에서 혼자 어렵게 자랐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5남 4녀의 많은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도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생활하신 분이라 독립심이 유독 강하시다. 따라서 가족 외에 누가 자신을 돌본다는 것, 어머님이 사시는 공간을 드나드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그러나 자식들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혼자 두시는 것보다 누가 옆에서 거들어 주고, 말벗이라도 해주면 좋을 환경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요새 부모님들은 장기요양등급을 받자고 하면 일단 거부를 한다고 한다. 등급을 받는 것은 자식들이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내기 위한 절차의 시작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보면 이런 일로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경우를 종종 전해 듣곤 한다.

우리의 경우는 반대의 정도가 더 심했다. 어머님이 치매도 아니고 정신이 온전하셔서 사리판단을 분명히 하시니 이 문제는 더욱 완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은 당연히 등급신청을 하는 것도 반대했고, 만약 신청을 해서 건강보험에서 현장실사를 오더라도 거부하겠노라고 일장 선언을 하셨다. 온 가족의 설득과 기다림이 필요했다.

만약 등급이 나오더라도 요양원에 보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고, 단지 어머님의 일상을 거들어 줄 수 있는 말벗만 오게 할 거라고 거듭 약속을 하니 거부하는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작년 말 거동이 불편함을 이유로 장기요양등급을 받았다. 다행히 요양보호사를 둘 만큼의 등급이 나왔다. 그러나 또다시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계속된 병원치료 덕분인지 어머님의 상태가 어느 정도 좋아지면서 당장 필요하지 않다고, 혼자서 지내보겠노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또다시 불안한 기다림을 해야 했다.


구정이 지나고 2월부터 평일 하루에 2시간씩 점심을 챙겨드리기 위해서 요양사가 방문을 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평일을 피해서 어머니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이제 한 10일이 지난 시점이라 어머니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고, 요양사를 데려다 놓고 자식들이 너무 안가면 이거 또한 도리가 아닌것 같기도 해서다.


갑자기 방문한 우리를 보고 잠깐 당황하기는 했으나, 우리가 우려했던 것 이상으로 어머니는 씩씩했다. 늘 우리가 가면 하는 것처럼 먹을 것을 바쁘게 내놓으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 항상 명쾌하고 날카로우시면서 정확하시다. 열흘 전의 이야기까지 상세하게 들려주신다.


"어쩜, 어머니는 그렇게 몬딱 기억해졈쑤과, 정확하게도, 대단해" 옆에서 아내가 거든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이야기 기차는 달려간다. KTX급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 아직은 좀 불편한 것 같다. 서로를 알아가는 신경전이 있는 것 같다. 다행히 어머니의 얼굴이 좀 편해진 것 같다는 아내의 얘기가 나의 불안한 마음을 추슬러 준다.


그 후로도 한참을 이런저런 얘기, 좌충우돌 많은 얘기를 했다.

어머니는 새로운 사람하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고,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음에 더욱 신이 난 모양이다. 매일 무엇인가 준비를 하고,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약간의 긴장감이 삶에 활력을 보태는 것일까?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어머니는 우리가 갈길을 재촉하신다.

"야, 더 있으면 비가 많이 오니 운전하기 힘들어진다. 어둡기 전에 빨리 가라"

돌아오는 길이다.


우리 부부도 낳고 기른 자식들이 모두 자기 삶을 찾아서 나갔다.


예전에 부모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자주했다.


"너도 자식 나아서 키워보면 부모 마음 알 거야!!!"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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