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종편채널의 주말드라마인 무자식상팔자가 종편의 새 역사를 쓰면서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다.
작가는 "자식은 부모에게 십자가 같은 존재다.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 무자식 상팔자는 부모와 자식 간 충돌하는 이야기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힘겨운 싸움을 통해 가족이 소통하고 화해하는 법을 찾아보면 어떨까"라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고 한다.
”무자식 상팔자다 “ 우리는 주위에서 자식 때문에 애를 먹고, 힘들어하는 이웃을 보면 어른들이 으레 하는 말이다. 과연 맞는 말일까?
얼마 전 모 결혼정보회사에서 2030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결혼 후 자녀계획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여자는 거의 40%, 남자는 30%가 자녀계획이 없다고 답을 했다. 이들이 자녀를 원하는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자녀 양육에 따르는 경제적 어려움 및 부담감"(남 56.7%, 여 33.3%)을, 자녀계획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는 남녀 모두 "경제적 상황’(남 32.7%, 여 43.3%)"을 1순위로 꼽았다. 배우자와 자녀계획에 대한 입장이 다를 경우에는 남성은 ‘배우자의 의견에 따른다’(36.7%), 여성은 ‘배우자를 설득한다’(67.3%)고 대답한 것으로 보아 자녀계획에는 여성의 의견이 절대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아마도 원시시대에는 자녀계획이라든지 출산계획이라는 것은 없었을 거다. 청춘남녀가 여러 가지 이유로 만나서 결혼을 하면 사랑의 결실로써 자녀를 두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부족의 성장과 번성을 위해서 출산을 장려했다는 기록도 종종 볼 수 있다. 인구가 증가하고 먹고사는 게 어려워지면서, 무계획적으로 마구 증가하는 인구가 경제성장률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제 국가의 모든 자원이 관리 및 계획의 대상이 되었다. 인구 역시 국가가 조절하기 위한 출산율 조정, 즉 가족계획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베이붐 시대 무려 6.3명으로 최고점을 찍었다. 부모를 포함할 경우 한가족이 7~8명이 된다. 당시 전쟁 후라 어려웠던 국내 경제상황까지 고려한다면 인구가 국가의 최대 현안이 아닐 수 없다. 국가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의 가족계획은 1962년에 공식적으로 시작을 해서 199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1961년에는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창립되었다. 1970년대에는 산아제한 정책이라는 이름으로까지 추진되었다. 당시 경제개발을 최우선으로 추진하던 군사정권에서 경제성장을 좌우할 수 있는 인구정책은 국가의 핵심정책이었다. 정부에 의해서 적극적이고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
"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70~80년대 국가의 모든 정책은 가족계획과 연결되어 있었다. 가족계획을 실천하면 ㅇㅇ제공, ㅇㅇ 면제 등의 정책들이 포스터나 표어를 통해서 가정에 숫하게 뿌려졌던 기억이 있다. TV를 켜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 방송되는 성우의 낭랑한 목소리도 귀에 잔잔하다.
엊그제 발표한 작년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0.78명이다. 처음으로 0.8명 이하로 내려갔다. 우리나라가 툭하면 표본으로 삼는 OECD국가만 하더라도 평균 1.61명이다. 평균 1명 이하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출산율이 이렇게 급격히 하락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국가가 가족계획 정책을 아주 훌륭하게 추진한 결과인가? 사뭇 궁금해지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출산율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부담이다. 자녀를 낳고, 기르는데 소요되는 양육비와 교육비 문제다. 흔히들 부동산으로 얘기되는 집값은 자녀가 있든 없든 필요하니 조금은 논외로 하자. 우리나라의 급격한 성장을 뒷받침했던 교육열은 거대한 사교육시장을 만들어냈다. 최근 이런 사교육은 영유아시기로부터 시작을 해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자격시험, 취업시험을 거쳐 취업을 할 때까지 진행된다. 자녀들이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기까지다. 짧으면 20대 중반, 길면 30대를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20~30년 동안 소요되는 양육비와 교육비는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자리를 차지하기 전인 젊은 학부모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일 수도 있다.
둘째로는 자녀를 캐어하는데 따르는 무형적인 부담감을 얘기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부모도 처음 해보고, 자식노릇도 처음해 본다. 모든 게 처음이다. 다 낯설고, 어렵고,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족이 있고, 부모가 있어서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면서 살라고 하는 것이다.
셋째는 외부적으로 크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세대의 변화를 반영한 가장 중요한 이유일 수도 있다. 젊은 세대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최근 인권과 젠더, 성, 삶에 대한 많은 교육을 받고, 각종 매체를 통한 정보습득이 가능하게 되면서 젊은 남녀들이 자의식과 자존감이 매우 강하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젊은 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기간은 어느 누구든 그들의 가장 아름답고, 젊은 시절, 하고 싶은 게 가장 많은 시간일 것이다. 자녀들을 키우고 독립시키기까지 20~30년이 지나면 그들은 환갑의 나이가 되어 버린다. 그들의 부모님이 그들을 키우면서 살아온 생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한다. 본인들은 그들만의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뜨거운 열정으로 만났을 때는 둘이 같이할 수만 있다면 수십 년 동안이라도 변치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열정과 사랑은 어디다 매어둘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감정으로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세월이 지날수록 이자가 불어나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이었으면 좋을 텐데 그냥 세월의 무게만큼 이나 줄어들고 사라지고 만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사랑의 존속기간은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 미국 코넬대학교 인간행동 과학연구소의 신시아 하잔 교수는 전 세계 5,000명을 대상으로 관찰해 사랑의 유통기한을 밝혀냈다고 한다. 18~30개월이라고 한다. ”러브 칵테일“이라고 사랑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도파민, 아드레날린,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의 생성 분비과정을 관찰해서 얻은 결과다.
개인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30개월이면 900일이다. 미칠 듯하던 열정과 사랑도 마치 칵테일 잔이 비어가듯 '러브 칵테일' 물질도 900일가량 지나면 바닥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럼 그 이후 우리는 무엇으로 살까?
가톨릭대 성모병원 정신과 채정호 교수는 열정은 사랑의 한 요소일 뿐이고, 열정을 편안함과 애착으로 바꾸는 것도 사랑이라고 말했다. 러브 칵테일이 소진되면 열정이 식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러브 칵테일이 떨어지면 새로운 종류의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편안함과 애착을 느끼는 것도 사랑이다. 사랑이 식어가면서 이 둘을 이어 줄 뭔가는 있어야 하는데 예전에는 이것을 둘 사이의 자식이라고 했다.
" 엄마나 아빠가 없는 자식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산다"는 얘기를 주위에서 종종 듣는다.
과연 무자식이 상팔자 일까? 자녀를 갖지 않겠다는 것이 좋다는 생각인가?
개인적으로는 일견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위험한 생각일지 모른다. 인구의 감소는 사회경제적으로 한 마을과 도시, 국가의 존폐를 얘기할 정도로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인이 싫다는데 개인의 희생을 무릅쓰고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젠 국가가 진정성 있게 나설 차례이다. 단순한 구호나 임시방편적인 정책이 아닌 제도가 필요하다.
임신, 출산, 양육, 교육과정을 아우르는 토털 캐어,
결혼하고, 자녀를 갖고 낳는데 아무런 고민이 없을 정도로 전 과정을 아우르는 출산복지 정책이 필요하다.
이것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 국가의 존폐와 국민들의 생존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변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