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때(시기)가 있다.
작년부터 유심재에서 진행하다가 중단한 일들이 있다. 그중 가장 크고 시급한 게 텃밭의 한 구석 돌무더기를 정리하는 일이다. 예전부터 제주에는 돌이 많다. 농작물 재배를 위해서 밭을 고르다 보면 돌이 무지하게 많이 나온다. 돌의 처리방안이 항상 고민이었던 것 같다. 비교적 작은 돌인 "작지"서부터 큰 바윗돌까지 수북이 나온다. 돌은 모두 자연석이고 밭에 묻혀있다가 그대로 나오는 거라 울퉁불퉁 제멋대로다. 돌들은 일단 골채라는 삼태기를 이용해서 밭의 한구석에 모두 모아둔다. 이 돌무더기를 제주에서는 "머들"이라고 한다. 머들에서 비교적 크고 단단한 돌을 이용해서 밭사이의 경계인 돌담을 쌓는데 이게 밭담이다. 제주의 밭사이 경계는 대부분 이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즘 제주의 밭담을 "흑룡만리"라고 부른다. 구불구불 밭담을 이어놓은 게 마치 까만 용이 1만 리에 걸쳐 이어져 있는 모습과 닮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홑담으로 된 밭담 겹담으로 된 밭담
유심재의 텃밭도 마찬가지다. 삼면이 비틀비틀 돌로 경계인 밭담을 만들었다. 예전에 텃밭에 있던 오래된 초가집을 헐면서 나온 큰 주춧돌들을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밭 한구석에 몰아 두었다. 그 옆에 장모님이 매년 밭을 일구면서 나오는 돌들을 던져놓았다. 이게 세월이 지나면서 자그마한 머들이 되었다. 머들 위에서 잡초가 자라고, 쓰레기가 쌓이면서 거대한 동산이 되었다. 덤으로 옆밭에서 불법으로 경계를 넘어온 대나무들이 돌담사이 위아래로 자라면서 돌들을 싸고 감아서 밖에서 볼 때는 그저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만 보인다.
텃밭에 농사를 못 지을 정도로 대나무가 침범한 상태라 작년에 대대적인 대나무 정리작업을 했다. 약을 치고 몇 달간 기다리다가 다시 약을 치고, 몇 달을 기다리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울창했던 돌담사이 대나무들이 누렇게 시들어 갔다. 텃밭 경계도 제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시들어 버린 대나무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밭경계가 홑담이 아닌 겹담인걸 발견했다. 홑담은 한 겹으로 쌓은 담이고, 겹담을 그위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여려 겹으로 붙여서 쌓은 돌담구조다. 겹담으로 되어 있는 면적이 꽤 넓어서 정리를 하면 텃밭의 구조가 선명해지고 넓어질 것 같아서 아내와 상의 끝에 정리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게 작년 여름일 게다.
[ 정리전 텃밭- 좌측 구석에 돌무더기들이 보인다]
작년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나는 더위를 무지 잘 탄다.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한 바가지다. 옷은 물먹은 하마가 된다. 본격적인 머들제거 작업을 시작했다. 삽, 괭이, 골갱이, 호미, 정전가위 내가 사용하고 있는 온갖 농기구를 불러 모았다. 파고, 자르고, 괭이로 내려찍고, 문화재를 발굴하듯 돌들을 찾아내면서 정리작업을 했다. 대나무 뿌리들이 워낙 깊게 박혀있고, 중간중간 비닐이나 쓰레기들이 얽혀 있어서 작업이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며칠을 계속작업 했더니 몸은 지친데 달라지는 게 별로 없었다. 여름이라 비가 오면 다시 흙이 굳어져 버려서 작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흙을 파낸 공간에 공기와 바람이 들어가고 햇빛에 노출되면 작업하기가 쉬울 것 같아서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다. 그래도 정리한 공간이 탁 눈에 띄었다.
" 와, 많이 했어. 이 정도만 작업해도 돌담이 보이고 좋은데"
아내의 작업 재촉을 말릴 작정으로 자화자찬을 했다.
"그래요, 많이 했네, 일단 좀 쉬었다가 합시다"
그 일단이라는 말이 해까지 넘기고 말았다.
유심재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모습이 작업하다만 머들이다.
속으로만 "아이고 저 작업을 언제 하지,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데". 슬슬 재촉할지도 모르는 아내의 눈치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 생각지도 않게 지난달 우연히 유심재에 들른 날이다. 마음이 동했다. 왠지 육체를 움직이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작업복을 갈아입었다.
작업하다만 절개면이 몇 달 동안 바람과 햇빛을 맞았다지만 대나무 뿌리가 워낙 단단히 얽혀 있어서 난공불락이었다. 대나무는 제초제를 미리 해둔 상태라 힘을 주어서 당기면 뿌리까지 쭈욱 당겨 나온다. 완전히 칡뿌리를 캐는 느낌이다. 자르고, 파내고, 부수고, 나르고 한 3일 했나. 완전히 머들이 없어지고 밭담의 경계 부분이 보였다.
"야. 다했다, 2년 동안의 공사가 마무리.. 끄읏..."
" 완전히 넓은 공간이네, 여기다 나무를 심어도 되겠네. 고생했어요 " 아내가 반가운 듯 한술 더 뜬다.
이제 마무리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예전에 초가집 주춧돌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2개의 큰 바위 같은 돌이다. 그 돌을 움직여서 돌담에 붙여놓고 그 위에 줄기가 길게 내리는 꽃을 심는 게 아내의 계획이다.
" 저 돌덩이를 어떻게 움직이지? "
텃밭에서 나온 온갖 야채를 섞어서 만든 전으로 점심으로 때우면서 둘이 고민을 했다.
"일단 둘이 힘을 합쳐서 당겨 봅시다" 뭐든 도전적인 아내의 강력한 메시지다.
"영차 영차, 한 번 더, 하나 둘 셋" 아무리 움직여도 끄떡도 없다. 이러다가 날이 샐 판이다. 몇 차례 반복 시도를 했다. 그대로 정성에 감복하는 듯 조금씩 움직여 주기는 한다.
"자! 한번 더" 외치고 힘을 주는 순간 아내가 기겁을 하면서 일어선다.
아내가 돌을 움직이려고 힘을 주는 순간 오른쪽 가슴에서 "빠직"하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당장 아프지는 않은데 이상하다고 한다. 순간 머리가 정지되고 동작이 멈춰지는 것을 느꼈다.
"빠직 소리가 났다는 것은 갈비뼈에 이상이 있다는 거 아닌가?, 금이 가던지, 골절이던지"
하여튼 찜찜한 기분으로 서둘러 작업을 마무리하고 우리 부부는 집으로 왔다. 아내는 별로 아픈 내색이 없다. 팔을 움직이는데도 불편은 없다 한다. 일단 집에 있는 근육이완제를 먹고 쉬어 보기로 했다.
[ 돌담이 깨끗이 정리된 후 텃밭 - 아래 큰돌이 우리를 슬프게 한 주범이다 ]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봅시다. 안 아프면 다행이고, 그런데 빠직 소리가 마음에 걸리네"
"그런데 뼈에 이상이 있으면 지금 아파서 견딜 수가 없을 텐데?? "
다음날 아침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한다. 아프지를 않다고 한다. 금요일이었다.
다음날 토요일 아침에 일어날려니 조금 불편하다고 한다.
일요일 더 많이 불편해한다. 숨 쉴 때 불편하다. 웃을 때도 불편하다. 가만히 있으면 괞찮은데, 비틀면서 움직일 때는 불편하다고 한다..
오늘이 휴일이니 내일에는 동네 정형외과를 가기로 하고 쉬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동네 정형외과에 예약하러 갔다. 웬일 병원이 한가하다. 예전에는 손님이 꽉 차있어서 많이 기다려야 했는데.. 지금 오라고 한다. 집에 가서 아내를 데리고 병원으로 왔다.
혹시 갈비뼈에 이상이 있어서 입원해야 하는 건 아닌지하는 조바심을 가지고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의사는 화면을 몇 번 확대해서 보더니만 갸우뚱하면서 별 이상이 없단다. 그래도 아픈데요??
물리치료와 근육이완제, 소염진통제를 처방받고 돌아왔다. 자고 일어났는데 차도가 없다. 마찬가지다.
다시 동네의원에 갔다. 불편한 곳을 들어본다. 마찬가지이고 차도가 없다고 대답하자, 갸우뚱한다.
어제와는 조금 다른 진료와 물리치료, 약처방을 받고 돌아왔다. 내일은 휴일이라 하루 쉬고 모래 오란다.
증세는 마찬가지다.
다시 갔다. 엑스레이를 다시 찍어보자고 한다. 재촬영한 엑스레이를 보더니만 마찬가지 대답이다. 약을 처방해 주면서 일단 쉬어보고 다음 주 월요일 오라고 한다.
아내는 처음 간 날이나 지금이나 증세는 마찬가지이고 불편하다고 한다. 아니 더 심하다고 한다.
"같은 병원을 3일간 다녔는데 차도가 없으면 다른 병원으로 가도 되는 거 아니? 때가된 거 같애"
아내가 불편한 심정을 그대로 얘기한다.
"간세해서 일을 늦게 한 대가가 너무 큰데.."
* 제주어사전
- 간세 : 게으르다는 제주어, 대부분은 제 때 하는데 가끔 느리게 하거나 빠뜨려서 안하는 경우에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