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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Sep 21. 2023

다시 "9월 벌초 길 단상.."

제주에서 9월의 인사는 "벌초 다핸?" 다.  

아무리 바빠도 추석 전까지 조상의 모든 산소에 벌초를 마쳐야 하는 것이 자손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제주에는 옛날 부터 "추석 전 소분 안허민 자왈 썽 맹질 먹으레 온다" 는 얘기가 있다. 

추석전에 벌초를 하지 않으면 조상이 추석 먹으러 덤블을 덮고 온다는 말로 벌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말이다.


제주는 예전부터 음력 8월 초하루(음력 8.1일)를 전후해서 가족이나 친족들끼리 모여서 모둠벌초를 하는 풍습이 있다. 사람을 모아서 한꺼번에 같이 벌초를 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모둠벌초는 문중벌초와 가지벌초가 있다. 문중벌초는 문중 친척들이 모여서 기제사를 지내지 않는 선대묘를 벌초하는 것이고, 가지벌초는 기제사를 같이 하는 8촌이내의 친족들이 모여서 하는 벌초다. 

모둠벌초 중 제일 큰 규모는 수십 명이 모이는 입도조 벌초다. 이런 모둠벌초는 1년에 한 번 정도는 어떤 의미로든지 멀리 있는 친족이나 가족, 또는 같은 조상을 둔 후손들이 모여서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 어, 어떵허영 여기완? 너도 우리 괸당이냐?"

사회생활하면서 이리저리 부딪혔던 사람이 모둠벌초에서 만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엉겁결에 당황하면서 악수를 하고 인사를 해야 한다. 다음부터는 괸당이다.

음력으로 8월 초하루는 무조건 벌초하는 날이다


예전 제주도의 모든 학교에서는 8월 초하루를 전후로 학교에서 벌초방학을 할 정도였으니 벌초의 의미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농경사회가 아닌 요즘 시대 무조건 8월 초하룻날 벌초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다. 8월 초하루가 평일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후손들의 많이 모일 수 있게 문중이나 가족별로 9월 중에 편한 일자를 미리 고정으로 정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9월 첫째 토요일이나 일요일. 또는 8월 초하루 바로 전 휴일이나 바로 지난 휴일등이다. 이렇게 미리 날짜를 정하는 것은 미리 일정을 조정해서 벌초에는 반드시 참여하라는 의미도 있다.


" 언제 헐지 몰란 마씸,  다른 일이 이서부난 못나왔쑤다"라는 핑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첨석을 못하는 경우는 가족끼리 미리 정한 소정의 벌금을 내거나 식사를 제공하는 등의 성의를 표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도 벌초 때면 타지에 사는 후손들이 휴가를 내서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이나 문중회의 큰 행사다.


조상산의 벌초를 두고 친족이나 가족 간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 벌초를 누가 해야 하느냐, 산소에 제사를 누가 준비해야 하느냐"

" 왜 벌초에 참석을 안 하느냐"에 대한 생각의 차이들이다.   


9월 제주의 중산간지역 산야나 목장, 오름은 벌초객으로 붐빈다.

가다가 뜬금없이 도로변에 차량이 모여있는 곳, 웽웽 예초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곳은 인근에 여지없이 산소가 있음이다. 제주의 산소들은 한라산에서부터 해안가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풍수상 좋다고만 하면 한라산 정상과  오름정상, 비바람이 치는 해안가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인력에 의지하던 시대다. 어떻게 산등성이까지 운구를 하고 장사를 지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큼지막한 돌로 가지런히 조성된 산담을 지날 때 느끼는 무게감은 사뭇 다르다. 무엇을 생각하면서, 무엇 때문에 이리 했는지 어림잡아 짐작을 할 뿐이다.

무조건적인 숭배나 섬김보다는 현실을 중요시하는 장례문화로 변하고 있다.


요새는 화장이 대세다. 통계에 의하면  전국적인 화장률은 90.5%다. 10명 중 9명이 화장을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사실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화장을 한다는 얘기다. 제주도의 화장률은 77.8%다. 깜짝 놀랄 적지 않은 비율인데도 전국에서 최하위라고 한다.


“최근 5년간 제주도의 일반 화장 건수는 1만 4천737건인데 묘 개장 유골 화장건은 3만 4천159건으로 유골 화장률이 2.3배가 넘고 있다” 고 얼마 전 언론에 기사가 나왔던 적이 있다.  

개장유골 화장은 기존에 있던 봉분형태의 산소를 개장해서 유골을 화장하고 봉안당이나 수목장에 모시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벌초를 해야 할 봉분 형태의 산소가 줄어들게 된다.  

화장이 급증하고 있다는 통계, 특히 유골화장이 대폭 증가한다는 것은 봉분형태의 산소가 후손들에게 유지와 관리라는 측면에서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 아, 내년부터는 벌초를 안 해도 돼 키여.."


주위에서 가끔씩을 들을 수 있는 얘기다. 산소들은 누적되어 증가하는 반면 벌초를 할 가족이나 후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의 몇 안 되는 후손들도 제주를 떠나 전국각지, 외국까지 흩어져 산다. 자기의 생업에 바쁘다 보니 적기에 고향을 찾아서 벌초를 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면 다른 사람 손을 빌어서라도 벌초를 해야 한다. 그래서 벌초철 도내 각 농협과 단체에서는 벌초대행을 한다. 차츰 관심이 멀어지는 수순이다. 그러다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로 수년간 벌초를 하지 않고 방치하면 금방 골총이나 잡초밭이 돼버린다. 그렇게 수년이 지나면 행정에서 무연고 묘로 관리를 해야 한다. 행정에서는 공고를 하고 후손이 나타나지 않으면 개장 후 화장을 하고는 봉안당에 안치를 한다. 후손 없는 선조가 되는 것이다.  

  

올해는 윤달(3월 22일~4월 19일)이 있는 해다. 윤달은 몇 년 만에 한 번씩 들기 때문에 여벌달·공달 또는 덤달이라고도 부른다. 보통달과는 달리 걸릴 것이 없는 달이고, 탈도 없는 달이라고 한다. 집수리나 이사도 윤달에 하면 가릴 것이 전혀 없다고 한다. 수의(壽衣)는 꼭 윤달에 하게 되어 있어서 나이 많은 노인이 있는 집에서는 윤달에 수의를 만들었다. 산소를 손질하거나 이장하는 일도 흔히 윤달에 한다. 결혼도 평생의 대사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데, 윤달에 하면 좋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윤달이 있는 올해 개장유골 화장이 부쩍 늘었다. 장의사를 예약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올해 전체화장건수는 평년대비 거의 30%나 증가했는데, 상반기 전체화장건수의 77%가 개장유골화장이라고 한다.

" 아들, 딸 구별 없이 혼둘만 낳아 신디 누가 조상산 벌초 헐거라.."

" 이젠 벌초할 사람도 없고, 누가 산에 신경 쓸 사람도 어선 확 판 봉안당에 갔다 놔서..."   

벌초철 흔히들 들어볼 수 있는 이웃이나 괸당들의 푸념 섞인 이야기다.


예전에는 중산간지대 임야에 가족공동묘지를 조성해서 분양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도 가족공동묘지를 운영하는 문중도 많고, 새로이 조성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 묘역을 누가 관리를 하고 때 맞추어서 벌초를 해야 한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상의 묘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벌초를 해야 하는 경우 보다야  훨씬 수월하다. 하지만 이경우도 매년 모둠벌초는 해야 한다. 그래서 아예 수목장이나 봉안당을 찾는다. 15년(연장해서 60년까지 가능), 40년이라는 한시적인 면이 있지만 그때까지 인 것이다. 벌초걱정이나 조상산 관리걱정은 안 해도 된다.


올해도 다시 찾아온 9월, 벌초는 해야 한다.


특히 올해는 7월 같은 9월이라 무더위와의 전쟁이다.

폭우성 강우가 내린 날도 있었다. 벌초를 하다가 포기를 하고 중간에 돌아온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예초기를 메고 이곳저곳 산소를 찾아다니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엄청나게 많은 변화를 했는데 관습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까지, 어느 범위까지 지켜져야 하는지 말이다... 변하고 달라져야 하는데 어떻게 함이 순리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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