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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Feb 19. 2024

포장을 해야만 하는 돈가스집

또하나의 버킷리스트를 지우면서

아들이 입대 전 꼭 먹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3개 있다고 했다. 

오늘은 그 2번째 리스트를 삭제하는 날이다.



동네에는 브랜드나 멋진 간판 없이 유명한 수제 돈까스집이 있다. 

조금 과장을 더 하면 돈가스는 어린이 얼굴 크기(?)만 하다. 

제주산 돼지고기로 직접 주인장이 만든다고 한다. 


보통 돈가스의 2배가 넘는 크기로 나온다. 여성들이나 웬만한 식성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 주문해서 혼자  먹기에는 무리다. 가게에서도 그것을 짐작함인지 아예 포장해 갈 수 있음을 큼지막하게 안내문을 벽에 붙여놓았다.



크다고 해서 가격이 비쌀 거다. 그건 아니다. 

아주 저렴하다. 저렴하니까 맛이 없다. 그것 또한 아니다. 

고기가 부드럽고 맛이 있다.


걷바속촉이다. 인터넷에 이미 소문난 맛집이라고 한다.


가게는 지금 30살이 훌쩍 넘은 첫째를 비롯한 우리집 3명의 자녀들이 초등학교 때 생일파티를 하던 그 분위기 그대로다. 때 이곳은 인근 초등학생들의 생일파티 장소로 엄마들 사이에 널이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내부는 한마디로 초딩스럽고 촌스러운 분위기다. 고급스럽거나 여느 레스토랑처럼 어른스러운 분위기는 아니다. 그냥 음식을 먹고 가기에 적당한 회사 내 그것도 관공서의 예전 구내식당 모습이다.  

그렇다고 지저분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차라리 언젠가 종종 다녔던 익숙한 노포의 분위기라고 하는 게 어울릴 거다.



이곳은 이미 관광객들 사이나 인터넷에서는 꽤 유명하다고 소문이 난 곳이라 한다. 

우리 가족도 애들이 어렸을 때는 종종 찾던 곳이기도 하다. 

아내가 몇 년 전 잠깐 집을 비울 때는 아들과 내가 종종 주문해서 먹던 추억의 음식이기도 하다. 


아들은 먹은 적이 오래됐다고 군대 가기 전 한 번쯤은 먹고 싶다고 했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 뭔가는 배고픔을 달래줄 필요가 있는 시간대였다. 


"돈가스나 먹고 갈까?"

"좋죠, 배가 아주 고픈데 그 정도는 먹어줘야죠.."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가게 안은 손님들이 있었다. 문을 열고 가게를 들어섰는데, 늘 그랬듯이 분위기는 바뀐 게 하나도 없었다. 빽빽이 들어선 하얀색의 책상 겸 테이블(?) 하며, 그사이에 가지런히 놓인 의자들, 애들이 볼 수 있도록 꽂아 놓았던 책꽂이와 책들, 초등학생이 읽기 쉽게 크게 적어 놓은 듯한 메뉴판들, 마치 학교 옆 분식집에 들어 온 느낌이다.   

 

학교옆 분식점 같은 가게 내부 모습


3명이 돈가스 3개를 주문한다는 것은 이 가게의 정체성을 무시하는 일이다.  

이미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아내는 돈가스 2개에, 매운 쫄면 하나를 시켰다. 쫄면은 메뉴판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미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경험에서 나오는 주문이다.


"야..오랜만인디. 초딩때 여기서 생일 파티하던 거 생각나?" 아들은 벌써 13~14년 전의 일이다.

"생각나지..난 그땐 햄버거나 콜라를 안 먹었으니까 여기서 생파를 했지, 근데 지금도 그때 그 분위기야, 

변한 게 없어..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데.." 아들이 회상에 젖는 듯 몇 마디를 거들었다.

"누나네도 여기서 여러 차례 여기서 생일파티를 했는데, 근데 이렇게 큰 돈가스를 이 가격에 팔아서 가게가 지탱되나? "  아내는 추억 반, 걱정 반으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그런 사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이 나왔다.






음식은 여전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요새는 찾아보기도 힘든 큰 접시에 한가득 돈가스로 채우고 나왔다. 

돈가스를 먹다 보면 밥이 남을 것 같아서 그런지 밥은 돈가스에 비하면 너무 적다. 

아내와 둘이 하나를 먹기로 했다. 

스프와 푸짐한 돈가스 모습


모락모락 나는 소스가 덮인 돈가스에 나이프를 가져다 댔다.  

돈가스는 금방 옷을 입혀서 익힌 듯 나이프를 대는 순간 고기와 튀김옷이 슬며시 분리된다. 

튀김옷이 벗겨진 고기는 부드러운 육즙을 내면서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다.

금방 먹어 주어야 한다.  조각을 포크로 찍어서 입에 넣었다.

즙과 향이 내 입안을 채워준다. 그 느낌이 다 가시기 전에 부지런히 포크를 가져갔다.

 


돈가스와 매운 쫄면을 곁들여서 먹는 맛은 별미다.

소스가 들어가서 달짝지근한데 매운 쫄면 한 젓가락을 더하니 입안이 시원 해짐을 느낀다. 

매운 돈가스의 맛도, 튀김이 들어있는 쫄면의 맛도 아니다. 


 아들은 배고프다고 하더니만, 그 큰 돈가스를 거의 순삭을 해가고 있다. 그런 적을 본 적이 없다.  

굉장히 배고팠던 모양이다. 

우리 부부도 교대로 서로가 먹어주기를 권하면서, 겨우 돈가스 1인분을 소비했다.


우리는 먹다 쉬고를 반복했다.  

자리를 잡은 지 거의 1시간이 넘어간다. 

우리가 갈비를 먹을 때 말고는 식당에 이렇게 오래 머물러 본 적이 없다.    


얼마예요.

네. 26,700원입니다.

우리 셋이 배불리 아주 맛있게 먹은 금액이다.

예전에는 우리도 항상 음식이 남아서 포장하고 갔다. 

다행히 우리는 오늘 포장을 안 해도 된다.



여기는 포장을 하고 가야만 하는 돈가스집이다.


먹다가 맛있어서 하나 더 주문해서 포장을 해가는 집이 아니고,

먹다가 남았는데 맛있어서 그냥 두고 가기엔 아꼬와서(제주어: 아까워서) 포장해 가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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