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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Feb 19. 2023

계획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오랜만에 마음의 휴식처인 유심재(留心齋)를 찾았다.

나는 텃밭이 있는 조그마한 농가에 "마음이 머무는 곳"이란 의미인 留心齋라고 이름을 지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 찾아와서 음악도 듣고, 흙을 밟고 밭을 일구면서 좀 느린 생활을 하고 싶어서였다.


유심재 입구에는 오래된 팽나무가 있다.

여기서 제주 전통의 긴 올레길을 들어가야 유심재가 나온다.

올레길 양옆은 구멍이 숭숭나 있는 돌담이 가지런히 서 있다.  

올레길에는 겨울이라 누런 빛을 띤 잔디가 봄을 기약하고, 양옆에는 사랑꽃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잠시라도 머무를 준비를 하고 유심재를 찾은 것은 몇 달 만인 거 같다.

잔디밭에 자리 잡은 잡초와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고양이들의 무단 배설 흔적이 오랜만에 찾은 주인을 맞아준다. 유심재를 찾는 날이면 아내는 잔디밭 잡초와 배설물을 항상 제일 먼저 제거했기에 눈에 보일 정도로 남아있다는 것은 게으른 흔적일 게다.   


" 오랜만이네, 우리가 얼마만이지?"

" 작년에 고구마 수확작업 할 때 오고는 안 온 거 아닌가?"

우리 부부는 투덜투덜하면서 긴 올레길을 지나서 제일 안쪽에 있는 유심재를 향했다.


집 모퉁이를 돌아서면 텃밭이 보인다.

우리 부부에게 신선한 먹거리를 제공해주었던 농사의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구멍 숭숭 뚫린 터널이며, 제거 못한 멀칭 비닐, 작년에 마무리 못한 밭구석 돌담까지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들이다. 여기저기 반갑지 않은 잡초들이 겨울의 찬바람을 뚫고 뾰족이 잎을 내밀고 있다.


오늘 우리가 정리해야 할 과제 들이다.


텃밭에는 오래된 매실나무 1그루와 내가 얻어다 직접 심은 2그루의 매실나무가 있다.

오래된 매실나무는 작년에 대대적인 가지치기를 했다.

벌써 봄을 준비하는 듯 앙상한 가지에 하얀 봄꽃이 피었다.


" 저기 매화꽃이 피었네, 꽤 피었어, 봄이 오는가 싶네" 혼자 중얼거리면서 카메라에 담았다.


현관문을 여니 차가운 공기가 우리를 반긴다.

인적이 멈춘 곳이 되다 보니 얼마나 차가웠겠는가?


" 어, 추워, 빨리 보일러라도 켜자, 오늘은 모든 방 보일러를 다 켜게 보일러실에 잠금장치를 풀어줘요"

아내의 외침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보일러실로 향했다.


신발은 벗고 마루로 올라가니 발이 냉랭하다.

어 근데 꾸리꾸리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유심재를 찾는 날이면 우리는 잔디밭에 산재해 있는 고양이의 배설물을 피해서 다녀야 한다.

"똥을 밟으면 재수가 좋다"고 하지만

신발에 묻은걸 모르고 이동을 하면 잔디밭 여기저기에 묻어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일단 고양이 똥을 제거하기 전까지 우리들의 과제 1순위는 을 피해서 다니는 거다.


" 여보! 고양이  조심하세요"  

입구들 들어설때면 아내는 제일 먼저 나를 주의시킨다.


그런데 오늘은 아내가 똥을 밟은 모양이다. 현관에 벗어놓은 아내 신발을 보니 이 묻어있다.


" 여보! 당신이 똥을 밟았네, 신발에 묻었어"

" 진짜! " 아내가 기겁을 한다. 신발을 잡고 수돗가로 향했다.

나는 물티슈를 꺼내서 현관에  묻은 자국을 지웠다.


우리는 오랜만에 텃밭이 보이는 창가에서 커피믹스 한잔으로 유심재 방문 신고를 했다.

음악이 있는 안방 창가에 앉아서 텃밭을 바라보면서 마실 수 있는 한잔의 커피는 최고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더욱 좋다.

비가 후드득후드득 지붕을 때리는 소리, 처마 끝을 타고 내리는 소리가 좋다.

잔디밭과 텃밭에 빗물이 고이는 모습 또한 이상하리 만치 마음에 여유로움을 가져다준다.



잠깐의 커피 브레이크의 여유로움을 뒤로하고 작업복을 갈아입고 텃밭으로 나갔다.


"무슨 작업을 먼저 할까? " 아내가 중얼거린다.

"나는 밭구석을 정리할 테니, 당신은 잡초를 제거하는 게 어때? "

 

유심재는 동쪽과 남쪽이 대나무숲으로 둘러 쌓여있다. 옆밭에서 자란 대나무 들이다.

텃밭 경계인 돌담을 사이에 두고 대나무들이 텃밭을 침범해서 광범위하게 터를 잡아 버렸다.

장모님이 혼자 계실 때에는 대나무를 제거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그냥 방치를 해두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작년부터 불법으로 월경을 한 대나무 제거작업을 하는 중이다.

큰 대나무는 잘라서 자른 부위에 제초제를 바르고, 잎이 나고 있는 어린 대나무에는 제초제를 뿌렸다.

대나무는 워낙 뿌리가 깊고, 넓게 자리를 잡은 식물이다.

텃밭을 일구고 뿌리채소를 재배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준다.


제주의 농촌을 돌아다니다 보면 돌담옆에 대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는 곳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여기는 예전에 사람이 살던 곳, 집이 있던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전 제주의 농가에서 대나무는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텃밭이나 우영밭의 돌담경계를 끼고 대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나는 작년부터 밭주위 돌무더기와 그 위에 자라고 있는 대나무를 제거해서 밭의 경계를 확보하는 작업 중이다. 워낙 대나무 뿌리가 깊고, 돌무더기와 겹쳐 있어서 제거하는 작업이 어렵다. 온갖 농기구를 동원하고 정전가위로 잘라내고, 부수고, 때리고 난리법석을 치면서 조금씩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이젠 마무리를 해야 할 시점이다.  


오늘 3시부터는 비가 온다고 예보가 돼있었다. 그래도 요새 기상청은 밥값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가 올 걱정에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부지런히 각자의 일을 열심히 했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후드득 후드득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난다.

그치겠지. 아니 강도를 더해간다.

호랑이 장가가는 정도로 비가 갑자기 세게 내린다. 처마 밑으로 피했다.

오랜만에 처마밑에서 비를 피해 본다. 얼마만 인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비오는 날의 유심재다.


잠시 회상에 젖어본다.

어린 시절 이런 경험은 낯설지가 않았다.

학교를 다녀오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주인 모를 집 처마밑에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던 그때가 생각이 난다.

그때는 무슨 생각을 하며 기다렸을까?  


비가 그 칠기미가 없어 보인다.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 조금만 더하면 마무리를 할 수 있는데, 아이 아쉽다. 하루 일감이 더 남았네"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무리를 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계획대로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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