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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un 11. 2024

어머니는 고마움과 감사함의 다른 표현이다.

오늘은 예정에도 없던 서귀포행을 결심했다. 어머니를 보러 가는 길이다. 겸사겸사다.

며칠 전 올해 봄 작물 첫 수확을 했다. 수확이라고 해야 애호박과 가시오이 몇 개다. 옆에는 상추 등 몇 가지 쌈 채소들이 텃밭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수확물과 텃밭 가득자라고 있는 상추를 보더니 아내는 상추를 유난히 좋아하는 어머니가 생각난 모양이다. 가시오이와 애호박은 이틀 전에 따놓고는 어찌 처리를 못 하고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수확물이니 어머니가 옆에 사시면 그냥 가져다드리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겸사겸사 서귀포로 급히 다녀오자고 아내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우리 나이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가 부모님의 건강이 걱정이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알츠하이머라는 흔히 얘기하는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별다른 대책이 없이 가족이나 본인이 모두 희생해야 하는 병이다. 그리고 자기가 누구인지를 잊어야 하는 참 기막힌 무서운 병이다.


아침에 TV를 보다가 그런 사연이 다뤄지는 걸 보고는 불현듯 어머니가 생각나서다. 1930년생인 어머니는 올해 90대 중반이다. 육신을 조금 힘들어하시나 정신은 든든하시다. 계산도 내보다 빠르고 기억력도 생생하시다. 5남 4녀가 모두 장성해서 나가 살지만 어머니는 혼자 꿋꿋하게 지내신다. 항상 아내와 나는 부분에 대해서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건강이 좋아지시면 가까이에 있는 장남인 내가 캐어의 중심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이런 걱정 반, 지금 이 나이까지 잘 버텨주심에 고마움 반으로 항상 마음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없다. 가끔씩 말의 실수가 있더라도 나이를 고려해서 우리가 이해하고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게 잘 실천이 되지를 않는다. 갑자기 상황이 꼬이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너무 생각이 많고, 기억력이 좋으신 어머니는 우리가 깜빡한 일로 다그치는 일이 발생하는 경우다.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화를 버럭 내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안 그러려고 숱하게 다짐을 하건만 그렇게 안 되는 걸 보니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느끼곤 한다. 전화를 끊고 나면 이런 날은 내내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렇다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전화하는 것도 그렇다. 할 수 없이 유행가 가사처럼 "세월이 약" 이러니 하고 며칠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며칠이 지나면 유야무야 마음이 풀리게 된다. 지금까지 그런 날과 일들을 숱하게 반복하면서 산지라 서로 묻고 사는 거다.



어머니를 보러 가자고 하면 아내는 버릇처럼 바빠진다. 냉장고, 김치냉장고, 냉동고, 온 집안을 다 뒤진다. 뭔가는 가져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 모양이다. 빈손으로 가면 미안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내가 가는 것 자체가 선물인데, 아내는 아무래도 한치 건넌 시월드라 그런지 생각이 조금은 다른 모양이다. 다행히 오늘은 가져갈 게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좀 조절해야 하니 말이다.


올해 이른 수확을 해서 설탕에 담가 놓은 매실 1통이 있다. 무겁다. 얼마 전에 수확해서 잘 건조한 양파도 있다. 농사를 하던 중에 올해 양파 농사는 우수한 성적이다. 먹을만하고, 누구에게 건내줄 만하다. 그렇다고 많은 건 아니다. 자가소비용으로 100개 정도 심은 거니 말이다. 첫 수확물인 애호박, 가시오이 몇 개를 챙겼다. 비가 온뒤라 한층 성숙해진 쌈 채소도 듬뜩 땄다. 4가지 종류다 보니 많다. 대파도 먹을 만하다. 이럭저럭 챙기다 보니 꽤 된다. 올해는 채소가 비싸다고 난리인데, 이 정도를 나눠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아내는 항상 얘기한다. "당신은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는 기쁨으로 농사하는 것이 아니냐고.." 딩동댕이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어머니는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기쁘기도 한 모양이다. 한가득 챙겨간 농산물을 보더니 당황스러운 게 조금은 더 많은 듯하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칭찬에 참 인색하시다. 아니 칭찬이라는 것을 주고받으면서 살 그런 세상을 못사신 것이다. 칭찬이라는 말을 듣고 살지를 못했으니, 어떻게 하는 것이 칭찬인지도 모른다. 용기를 내서 하는 것도 쑥스러우니 아예 하지를 못한다. 그럼 가만히 있기라도 하면 되는데, 오히려 역설적으로 기쁨과 고마움을 표현하려다 보니 어색하다. 역효과가 발생한다. 그냥 어색한 분위기만 연출되는 경우가 있다.


오늘도 어머니의 한마디는 이것저것 다 챙기고 한참 들뜬 마음으로 찾아간 아내의 마음을 섭섭하게 한 모양이다. 이제 만난 지가 30년이 넘었는데도 풀리지 않는다. 영원한 숙제다. 돌아서서 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몇마디를 건넸다. 이제 100년을 다산 어머니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 말고 말이다. 부모이기에 어쩔 수가 없는게 아니던가? 그러면서 아내와 나는 또 하루가 간다.

 

어머니는 우리가 가져간 농산물은 다시 재분배해서 나누어 주는 것이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어머니 집 근처에는 누나와 동생 2명이 산다. 어머니까지 하면 네 집이다. 우리가 가져간 농산물을 4등분 해서 배분을 해주어야 한다. 식구 수와 무엇을 잘 먹는지를 고려해서 칼 같이 나누신다. 그러면 자기가 편한 시간에 어머니네 집에 와서 가져간다. 우리가 서귀포 가는 길에 직접 가져다줄 수도 있지만 어느 날 어머니가 이일에 재미를 붙이신 걸 알고는 통으로 가져가고 어머니에게 이 일을 위임한다. 그러면 우리가 주는 게 아니고 어머니가 주는게 된다.

 


앞으로 우리에게 얼마간 이 일이 허용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차 트렁크에 내가 정성껏 재배한 농산물을 한가득 싣고 갔을 때 반겨줄 사람이 있을지 말이다.


오늘도 아내와 나는 기쁜 마음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선다.

자주, 오래오래 이 일이 반복할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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