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도 깜박거린다
요새는 젊은이들도 깜빡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주엔가 SNS를 하다가 본 글이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글이기에 유심히 보다가 메모를 해두었다.
석학의 문장이라 몇 번을 일고 또 읽었는데도 쉬이 가슴에 와닿지를 않았다. 공감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아름답고 좋은 추억만 기억에 남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기억,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이 영영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아픈 추억, 슬픈 추억은 사는 내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아서 우리를 괴롭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도 언제부터인가 내 기억이 자꾸 사라짐을 느끼기 시작했다. 평소 기억력을 자신하던 터라 자꾸만 희미해지는 기억들은 내게 몹시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원인을 알아야 다소 위안이 될 것 같았다. 나이가 먹어서, 오래전 일이어서, 술을 마셔서, 중요하지 않아서 등등의 여러 가지 이유를 찾으면서 합리화를 시도했으나 속 시원한 해답은 없다.
나는 평소에 미팅하거나, 컨설팅할 때도 그 자리에서 수첩을 꺼내서 메모하지 않는다. 대화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상대방을 조사하는 듯한 그런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미팅을 끝내고 저녁 시간 혼자 있을 때 그날 미팅을 되돌아보면서 정리를 한다. 그게 십수 년이 된 버릇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젠 그 기억력이 하루를 지나버리면 어제 일인지, 그제 일인지 분간이 애매해진다. 어떤 형태로든 몇 자라도, 아니면 키워드라도 몇 개 메모를 해두어야 기억을 끄집어낼 수가 있다.
"보일러를 껐지?" 유심재를 다녀오는 길, 거의 집에 다다를 때쯤이면 내가 아내에게 가끔 던지는 질문이다. "글쎄, 끄지 않았을까?" 부창부수라고 아내의 대답도 나와 비슷하다.
유심재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난 후에는 샤워해야 한다. 샤워할 때 켜놓은 보일러를 끄고 나왔는지 몰라서 서로에게 물어보는 말이다. 10여 분을 걸려서 집에 도착할 때쯤 생각이 난다. 애매하면 재차 확인하자는 주의다. 차를 돌려서 유심재를 다녀와야 안심이다. 가서 보면 보일러는 대부분 착실하게 꺼져있다.
예전에 보일러를 켜있는 것을 모르고 며칠간을 방치한 적이 있다. 오랜만에 방문한 집의 공기는 따뜻하다 못해 뜨거움을 경험한 적이 있다. 오래전에 설치한 보일러라 온도제어가 안되는 유형이다. 그 후로 보일러는 우리 부부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이것만이 아니고 사소한 일들이 일상이다. 자동차 열쇠를 안 가지고 나가서 의기양양하게 자동차 문을 열던 일, 유심재 열쇠를 안 가지고 가던 일, 카드를 안 가지고 마트를 가던 일 등 웃픈 일상이 많다. 주변의 이웃들이나 독자들도 많이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작년부터 글을 쓰기로 했다. 글을 쓴다기보다는 예전의 추억이나 기억들을 문자로 정리하는 작업이다. 서툰 문장이지만 살아온 길을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예전 기억이 떠오를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올해 초에는 집에 있던 모든 사진을 스캔했다. 내가 간직하고 있던 삶의 흔적인 자료들도 모두 스캔했다. PC앞에 앉아서 작업을 하다가 무료할 때는 폴더들을 열어서 뒤척여 보기도 한다. 내가 "이런 때도 있었나"하는 초면인 자료나 사진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 이랬었지"하는 추억의 자료나 사진들이다. 그럼 사진이나 자료 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과거로의 여행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연대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추억이나 기억들이 앞뒤로 뒤죽박죽되는 현상을 많이 느껴서다. 나의 연대기를 내가 살았던 고장, 시대의 상황과 맞추어 보는 작업이다. 가령 내가 고등학교 때 일 같은데 당시에 그장소와 건물은 당시에 없었던 경우다. 내 기억과 추억을 보정해 나가는 경우가 된다.
요즘은 도서관을 가도 문헌 자료실과 기증 자료실을 많이 간다. 과거의 기록을 보기 위해서다. 캐캐묵은 종이장, 부석부석한 갱지의 냄새 속에서 원하는 자료를 찾았을 때의 기쁨은 뭐라고 형언할 수가 없다.
지나간 추억은 모두 아름답다고 한다. 지나간 사랑은 그립다고들 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생활이었을지라도 견뎌낸 지금은 내가 승자이기에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다. 한참 과거를 추억하고 그리는 작업을 하다 보니 지나간 시간이 추억과 그리움으로 다가 온다. 분명히 당시는 괴롭고 힘들었는데 지금의 감정은 그렇지 않다. 아름답고 좋은 추억만이 남았다.
이제야 다산 선생님의 글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듯하다.
우리가 깜박거리면서 살고 있는 이유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