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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Aug 01. 2024

불안한 예감으로 시작된 하루

아침 일찍 서귀포로 향했다. 어머니의 병원 진료 일정을 캐어하기 위해서다.  

갑자기 찾아온 감기 몸살로 여러 가지 일정이 취소되고 연기되었는데 어머니의 병원 진료도 그중 하나다. 전염성이 있는 컨디션으로 노모를 만난다는 것은 조금은 불안한 일이라 부득이 연기를 했다.


한 달에 몇 번 찾아가는 서귀포 일정에 혼자 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아내와 항상 동행이었는데, 아내는 오늘 선약이 있어서 같이 갈 수 없다고 미리 얘기를 한터라 부득이 혼자 가야 한다. 이런 혼자의 일정은 왠지 모르게 조금은 부담스럽다. 병원의 진료 일정이나 의사의 지시사항은 확실히 지켜야 하는 노모의 성정을 알기에 한 번 일정이 잡히면 변경은 없다. 주위 얘기를 들어보면 부모님들이 나이가 들었는데 병원 가서 뭐 하느냐고 버틴다 하는데 먼저 가겠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혼자 가는 1시간여의 길이라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동반자로 삼기로 했다. 방금 건네받은 커피잔은 뜨겁다. 난 아무리 더운 날에도 커피는 따뜻한 것을 마신다. 한가득 담아준 커피잔을 콘솔박스 앞 홀더에 넣었건만 차가 과속방지턱을 넘어갈 때마다 출렁이면서 뿜어내는 진한 커피의 향기가 차를 그득 메운다. 이때쯤이면 아내는 "아! 커피 향 좋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차가 출렁여서 커피색의 액체가 흘러나올 때마다 나는 부득이 길가에 차를 세우고 흘러나오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출발한다. 


혼자 드라이브하는 날에는 나는 카 오디오의 음량을 최대로 높인다. 그리고 모든 문을 닫는다. 차의 앞뒤와 옆의 6개 스피커에서 뿜어내는 웅장함을 느껴보기 위해서다. 누구에서 들은 건지, 인터넷에서 본 건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음악은 환경이 허락하는 한 가급적 볼륨을 높이고 들으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서다. 마음을 정제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내 마음 밖이 웅장하고 시끄러워지면 반대로 내 마음속은 조용해짐을 느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런저런 상념에 쌓인다. 매번 하는 일이다. 

나도 부모가 되면서, 자식들에게 부모로서의 나와, 부모님의 자식으로서의 나에 대한 생각과 행동이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역지사지의 관계다. 같은 것도 같고, 다른 것도 같다. 같다면 부모와 자식이라는 혈연적인 관계라는 것이고, 다른 것이 있다면 아마도 시대적 상황에 따른 역할과 기대의 변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혹자는 전자에 비중을 두기도 하고, 어떤 이는 후자에 방점을 찍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정답은 없는것 같다.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혼자 캐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별 탈이 없이 무사한 일정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주차 걱정으로 가득한 데 마침 병원 입구에 주차 칸이 비었다. 주차를 하고, 휠체어를 가져와야 하는데 휠체어가 보이지 않는다. 그사이 성질 급한 어머니는 혼자 문을 열고 병원으로 들어섰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들어서는 걸 보면서 일단 접수했다. 접수대에 휠체어가 없다고,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럴 리가 없다는 의구심을 가진 듯한 직원은 잠깐 망설이더니 어딘가 전화를 했고 엘리베이터 앞에 있으면 가져다준다고 했다. 그러나 기다려도 온다는 휠체어는 연락이 없었고, 순서가 되니 걸어가서 진료를 받았다. 다시 주사실까지 이동해야 하는 어머니는 걱정이 되는 듯 휠체어 얘기를 했다. 이동 거리가 그리 길지는 않지만, 항상 휠체어로 이동을 해왔기에 부담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주사실로 가는 길 나는 다시 접수대 직원에게 아직도 휠체어가 안 왔음을 얘기하고 재촉했다. 미안한 듯 다시 확인하겠노라고 얘기하는 직원의 말을 믿고 주사실로 향했다. 10분여 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동안은 휠체어에 를 주사를 맞았기에 어머니는 간호사의 권유에도 침대에 누워서 맞기를 거부했다. 내가 휠체어도 없는 병원이라고 탓했더니 간호사가 임기응변으로 편한 의자를 내주어서 어머니는 앉아서 맞을 수 있었다.  

주사를 맞는 사이 나는 병원 앞에 있는 약국을 다녀왔다. 꽤 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휠체어는 없었다. 이제 주사 맏는 것을 마치면 주차장까지 이동해야 하는 데 화가 치밀었다. 접수대에 가서는 일갈을 했다. "병원에 휠체어가 없냐고, 얘기를 해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며.." 큰소리를 하니 여러 명의 남자 직원이 얼굴을 나에게 돌리면서 반응했다. 금새 가져다 드리겠노라고 얘기를 했다. 아직도 정중하게, 조용하게 얘기하는 것보다는 큰소리가 유효한 우리 사회다.  얘기를 하고서는 더 기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정문 현관을 보니 마침 휠체어가 하나 있었다. 얼른 챙기고 어머니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휠체어 필요하신 분..." 조금 있으니, 여직원이 새 휠체어를 들고 나타났다. 금방이면 되는 것을 20분여를 기다리게 한 것이다. 

병원 울타리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아무렇게나 응대하고, 취급해도 되다는 영원한 갑의 정신이 깔려있는 상황이다. 아파서 힘들어서 찾아온 이들이기에 내가 치료를 해주기 전에는 나갈 수 없을 거라는 지배자의 정신 정도 말이다. 


상쾌하지 못한 진료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불법 주차를 한 차량이 내 차의 조수석 쪽에 가까이 붙어있어서 문을 열고 차를 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반대로 운전석 쪽은 여유가 있었다. 운전석 쪽에 휠체어를 대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이 발생했다.   

 

"이거 어떻게 할거우꽈? 뽑은 지 며칠 안 된 찬데 문콕 했쑤괴.."

옆 차 주인인 듯한 젊은 여자분이 영문도 모르게 멍하니 앉아 있는 어머니를 향해서 소리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옆 차 뒷문에 손톱만큼의 흰색 흠집이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는 어머니를 타에 태우고 자초지종을 알아봤다. 어머니가 불편한 몸으로 차에 오르려고 문을 많이 열다 보니 간격이 충분한 곳인데도 옆 차의 뒷문에 콕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손톱 크기보다는 작게 하얀색의 흠집이 있었다. 손으로 지워질 듯해서 몇 번 문질렀는데 조금의 흔적이 남았다. 출고한 지 1주일도 안 됐다는 차주와 실랭이 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보험으로 할 테니 공업사에 차를 맡기고 연락을 주시라고 얘기를 했다. 눈치를 보고 있는 어머니를 더 이상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서려는 순간 차주분이 잠깐 기다리라고는 하고 남편분하고 통화를 하겠다고 했다. 한참 동안 전화로 남편과 자초지종을 얘기하는 둣 했다. "됐쑤다. 남편이 그대로 넘어가랜 햄쑤다.." 나는 차주에게 몇 번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차를 돌렸다. 어머니는 뭔지 모르는 상황에 가슴을 조인 듯 수리비를 물어줘야 하느냐고 궁금해한다. 병원에서 1시간여도 되는 싶었는데 여러 가지 일을 겪는다. 



어머니를 집까지 모셔다드리고 돌아서는 길이다. 

아침에 마시다 남은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출발하면서 오랜만에 마신 아메리카노의 맛은 예전의 맛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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