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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Aug 09. 2024

사진에는 감성과 스토리가 있었다.

30년전의 모습을 재현하면서

30여 년 전에 찍었던 사진을 그 장소에서 그대로 재현해 보기로 했다. 

30여 년이란 세월이 흐른 시대성을 반영한 지금 모습의 사진이다.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제주문화원의 기념사진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문화원의 기획서는 이랬다.  

2024년을 기준으로 30여 년 전의 사진, 그러니까 1990년대 사진으로, 제주 시내의 모습이나 배경이 나온 시대성을 알 수 있는 사진을 고르는 작업이었다. 30주년이라 30명의 회원이 사진을 제출하면 제주사진작가협회와 협업으로 그 장소를 찾아서 그 인물들이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하는 사진을 찍어서 전시회를 하자는 것이었다. 30여 년의 세월 동안 제주 시내는 어떻게 변했고, 인물들과 의상, 복장들은 어떻게 변했는지 비교해서 보여주자는 취지다. 처음 사업 설명을 할 때 번쩍이면서도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서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얘기하니까 재미있을 것 같다고 참여를 하자고 했다. 마침, 올해가 아내의 환갑이기도 했다. 나중에 도어록도 만들고 액자화해서 준다 하니 기념적인 일이 될 듯싶기도 했다.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표시하니 사진을 제출하라고 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모든 사진이 디지털화돼  있기에 며칠간 수천 장이 되는 사진을 다 뒤졌다. 그러나 답은 "제출할 사진이 없다"였다. 나 혼자 찍거나, 아내와 같이 둘이 찍은 사진이 수천 장 중에 손에 꼽을 정도였다. 

대부분 내가 셔터를 눌렀기에 내가 포함된 사진은 몇 장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사진이 가끔 있고, 대부분은 아이들의 사진이었다. 우리 부부가 들어간 사진을 전체의 1%도 안 됨을 알았다. 정작 우리 부부가 사는 삶에서 주인공인 우리 부부의 변해가는 모습들을 담은 기록들은 드문드문이었다. 결혼 초기에는 쑥스럽고, 기회가 없어서 사진이 없었고, 자녀들이 생기고 부모가 되면서부터는 모든 게 자녀로 관심이 이동하면서 우리 부부는 기록에 없었다. 현실적인 삶과 자녀들의 보육에 밀려서 뒷방 신세가 뒤는 거구나 하는 씁쓸함을 느낄 수 있는 과정이었다.  



예전에 제주는 신혼여행의 최대 성지였다. 결혼하면 당연히 신혼여행은 제주였다. 렌터카도 없던 시절 대부분은 개인택시를 이용했다. 개인택시 기사들은 입담이 좋았다. 이들의 필수품은 좋은 카메라와 그에 걸맞은 사진 촬영 기술이다. 나의 손윗동서가 아주 인기 좋은 개인택시 기사였다. 좋은 장소에서 작품 사진 촬영을 할 정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 결혼을 하고 후에 디지탈 카메라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 가족의 사진은 모두 동서의 손에서 탄생했다. 애들의 사진도 그랬고, 가끔 있는 우리 부부의 사진도 그랬다. 배경이 약간 들어간 인물 위주의 작품 사진이라 전시회의 우선 조건인 시대성을 알 수 있는 사진이 없었다. 몇 장 있는 것도 필터를 쓰고, 합성하다보니 아쉬움만 가득이었다.  


제주 벚꽃 잔치가 열리는 거리, 벚꽃이 아름다운 전농로는 내가 30년 동안 다니던 회사가 있는 곳이다. 아내도 이 길을 걸어서 출근하던 추억의 길이다. 마침 이 길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 있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행사의 취지에 부합할 것도 같아서 제출했다. 전농로는 제주에서도 벚꼿으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길이라 기록의 필요성이 있었는지 승인이 났다.  


1991년, 아마도 결혼하고 이듬해 큰애가 태어나기 전으로 결혼하고 몇달이 안 된 때다. 전농로에 살던 동서네 집을 들렸을떄 사진인 것 같다. 봄이라 벚꽃이 만발한 모습이 좋아서 잠시 카메라를 들고 외출해서 찍은 사진이었다. 


오늘은 그 모습을 재현하는 사진을 찍기로 하고 오랜만에 그 길을 찾았다. 낮에는 땀으로 뒤범벅이 된다는 작가님의 말을 듣고 아침 일찍 서둘렀다. 출근 시간과 겹치지 않을 아침 8시다. 비교적 움직이기는 좋지만, 아주 이른 시간이다. 

퇴직하고도 10년이 지난 터라, 오랜만에 들른 전농로는 많이 변해있었다. 사진을 손에 들고 그 장소를 찾았다. 주변 상가와 간판은 없어지고, 벚나무들도 30년의 세월이 흘러 장년이 되어 울창함을 보여주고 있으나, 다행히 기본 구조는 그대로여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근데 포즈가 문제였다. 아무리 모습을 재현하려고 해도, 30여 년이 지난 지금 뭔가는 어색함이 묻어났다. 감성과 감정이 변했으니, 표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때 그 사진에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적이고 진솔한 감정이 묻어났으나, 어제 찍고 받아본 사진에는 그런 편안함이 없어 보인다. 세월의 때가 묻어난 건지, 삶의 고단함이 녹아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사진에는 모습만이 아니라 순간의 감성과 감정이 묻어난다는 것을 느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받아 본 사진에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그 순간의 감성과 스토리가 녹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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