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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un 12. 2024

창틀에 갇힌 세상, 창틀에서만 보이는 세상

서재에 앉으면 오래된 창틀 사이로 내 눈에 보일 만큼만의 세상이 보인다.

작물과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텃밭과 대나무 숲, 그리고 너머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다. 유심재는 제주에서 속칭 "제일 안집"이라 큰길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 긴 올래를 들어가야 나온다. 원래 있었던 초가를 두고 밖거리로 지은 집이라 밖으로 나가는 큰길과는 반대 방향으로 집이 들어서 있다. 그러니 집에 앉으면 사람이 만들어 놓은 집도 절도 아무것도 안 보인다. 단지 보이는 것은 자연이다.


유심재는 1980년대 지은 농가다. 방에는 그 시절에 맞는 창문이 있다. 미닫이로 된 2중 창문이다. 문을 열고 밖을 보더라도 창틀의 반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쪽은 항상 닫혀 있어야 한다. 요새는 대부분이 밖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통창인 경우가 많다. 아예 속 시원히 밖을 보자는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구식이라 그런가 반쯤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서 기웃거려 볼 수 있다는 것, 필요에 따라서는 문을 여닫으면서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선택이기에 나쁘지만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넓은 세상을 한눈에 볼 수 있지도 않고, 그리 하기도 쉽지는 않다.

모든 것을 한번에 속 시원히 볼 수 있다는 것도 물리적으로야 가능할지 모르지만, 생각을 가지고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마 눈에 보이는 정도가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일주일에 몇 번은 유심재라고 이름을 붙인 한적한 이 농가를 찾는다. 자연과 교감이 필요한 시간,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다. 여기는 인터넷이 없다. 문명하고는 일단 몇 미터 거리를 두고 있다. 문을 열고 방에 좌정을 하기 전에 일단 창문을 연다. 오래되고 자주 열지 않던 창문이라 힘을 주어야 다르륵 거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는 안과 밖이 다른 별유천지 세상이 열린다. 


책상 앞에서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는 게 일과의 시작이다. 오는 길 커피숍에서 따아 한 잔을 사들고 오는 것은 이젠 의식 행위가 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작업을 한다. 참 이상하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책상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치려고 하면 커피생각이 나니 말이다. 담배를 못 배운 나로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책상 앞에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고민거리들이 놓여있다. 우리가 얽어맨 자업자득의 결과물들이다. 노트북에서부터 책, 각종 자료를 복사해 놓은 것들,  전자기기들이 책상 가득 놓여있다. 이 복잡한 것들을 가지고 이내 뭐를 만들고 작성을 해야한다는 고민에 잡혀있다. 유심재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책상에서 뭔가를 하다가, 잠시 고개만 들어 밖을 본다. 오래된 창틀이라는 액자에 갇힌 세상이 보인다.  

그냥 그 자리, 그 자세로 고개를 들었을 뿐인데, 다른 세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유심재 글방의 매력이다.  

밖은 자연이 주는 그대로의 습이다. 계절 따라 작물과 식물들이 옷을 바꿔입고, 다른 색상을 보여주기에 지루하지 않다. 똑같은 자연이라도 하루는 바람이 불고, 또 다른 날은 비가 오고, 적막한 날이 있기에 일 년 365일이 지나더라도 똑같은 그림은 한 장도 없다. 그야말로 변화무쌍이다. 어찌 보면 우리네 사람의 삶과 비슷하다.


허리를 뒤로 젖히고 누우면 하늘만 보인다. 요새 제주의 하늘은 유난히도 코발트색이다. 하나도 거침이 없는 유심재 창문 밖으로는 총천연색 자연뿐이다. 파란 잔디 넘어, 울긋불긋 페추니아 꽃밭이 있다. 울퉁불퉁하게 쌓아놓은 돌담 위로는 긴 허리를 주체 못하고 있는 대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 위에 하늘이 덮고 있다. 그 모든 것을 방바닥에 누운 채로 볼 수 있다. 아니 자연을 느끼고, 자연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눈앞에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위작들은 하나도 없다.  

거대한 욕망의 숲들도, 짓다만 잘못된 생각의 작품들도 없다. 보기 싫은 것들도 없다.

아름다운 것,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창틀에 갇힌 세상, 창틀에서만 보이는 세상이다.

순간이나마 행복이다.

   

창틀에서만 보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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