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휴대전화를 찾는다. THE CAMP라는 앱을 습관적으로 연다.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제목을 쭈욱 읽어본다. 별다른 얘기가 없음을 알고는 안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앱을 닫는다.
51사단 병사의 죽음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여기서다. 이후 며칠이 지나서야 언론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늦둥이 아들이 입대한 지난 3월부터의 아침 일상이다.
이제 4개월이니 1년 2개월이 있어야 원래의 위치로 돌아온다. 아말다말 무사무탈 무사귀환이다.
한 달이 멀다고 발생하는 군에서의 사망사고 소식을 들으면서 괜히 더 불안해지는 것은 군인 아들을 둔 부모로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도 하고, 아는 게 병이라고도 한다.
어느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들은 대부분 그렇다. 직접 군대를 다녀왔기에 뭐라고 다 표현은 못 하지만 군대 생활이라는 것을 알고 짐작한다. 잊혀진 시간이지 결코 녹녹하거나 다시 하고 싶은 생활이 아니다. 그러니 내색은 안 하지만 아들을 군대 보내면서 가장 많이 걱정한다. 그러고는 설마 내가 있을 때보다 더 힘들거나 어렵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한다. 그러나 자꾸만 눈에 선한 연병장과 내무반의 모습, 거기에 한참이 지난 어느날 내 아들이 영문도 모르고 서 있는 모습은, 혹시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 때도 있다.
예전에는 군대의 모든 것이 보안이었고, 국가기밀이라고 했다. 군대 내부에서 생기는 일들은 일절 외부에 얘기하지 말도록 교육을 받는다. 옆 부대에서 뭐가 생기는지, 군대 내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전혀 알 수 없었고,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같은 부대 내에서, 바로 옆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서도 비밀 유지라는 이유로 모른 체 해야 한다. 외부에 얘기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 있었다. 군대 내에서의 모든 일은 철저하게 감춰질 수밖에 없다. 그런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 군대 의문사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이를 추적 조사하기 위한 국가의 작업도 진행이 되었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의문사가 있다. 군대라는 독특한 분위기와 비밀주의에 쌓여서 끝내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경우들이다.
국가가 부여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타의로 입대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영영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은 참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모두 20년 이상을 품 안에 안고 감싸면서 애지중지 키운 소중한 아들들이다. 더 슬픈 경우는 불명확한 이유로 그 길이 아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고 매듭지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죽음들은 외부에 공개가 되지 않고 비밀스럽게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가 된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그런 사고가 1년에 400~500건 정도가 되었는데 지금까지는 외부에 공개가 안 되어서 우리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우리는 군대에서의 죽음은 개값이라는 속어들이 만연되기도 했다.
요즘 군대는 많이 달라졌다.
군대 내에서 스마트폰 이용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해졌다. 스마트폰을 군대에서 사용하도록 허용한다는 뉴스를 듣고는 황당하기까지 했다. 1980년대 구식 군대 출신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었다. 예전에는 오가는 편지도 수시로 검열하던 시대다. 심지어 전화 통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그럼 감청하겠다는 것인가? 그 수많은 휴대전화를 일일이 감청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쁜 의미, 부정적인 의미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폐쇄적이고 모든 게 보안이었던 구시대적인 군대에서 시대에 맞게 변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대책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자대에 배치된 아들들은 일과 후에 거의 자유스럽게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인터넷 접속도 되고, 카톡도 하고, 전화 통화도 한다. 하루하루의 일과를 얘기하면서 군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유스럽게 외부와 얘기한다. 더욱이 훈련소 동기, 군에 있는 친구들, 교육 동기들과 자유스러운 정보교환을 한다. 이들은 어쩌면 전군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전우들이기에 전군이 돌아가는 얘기를 모두 소통하게 된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군에서는 보안 교육을 하면서 부대 내의 얘기를 외부에 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외부 통신이 가능한 상태에서 완벽 차단은 불가능하다. 가린다고 가려지는 게 아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예전 보안이고 국가기밀이라고 하면 모두 통제되고 책임이 면제되던 시대는 갔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아말다말 무사무탈
아들이 입대한 후에는 나도 군대 사고 소식에 굉장히 민감하다. 예전에도 그런 일들이 자주 있었지만 아마도 나에게는 원픽 뉴스가 되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한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다.
아들이 입대하고 매달 1건씩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훈련병에서부터 자대배치를 받은 아들까지, 모두 다 입대를 한 초년병들이다. 아직 군대라는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들이다.
아들을 군대 보낸 부모님들은 아주 활발하게 카페 활동을 하면서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바로 어제 들어간 아들들의 정보부터, 이제 제대하는 아들의 부대 정보들까지 세세하게 공유할 수 있다. 아들의 배치되는 자대의 정보가 궁금해서 들어보면 그 부대에 근무하는 아들의 부모님이 부대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대답해 줄 정도다. 국방부나 군에서 해줘야 할 일들을 해주고 있다. 모두 서로를 걱정하고 응원을 해주는 모습이다. 힘들면 모두가 가슴 아파하고, 좋은 일이면 모두가 서로 축하해준다.
막내의 생존 보고를 받기 위해서 동그라미 가족들은 오후 5시면 단톡에 모인다.
요즘은 오후 5시가 우리 동그라미 가족들의 일상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이 시간이면 각자 일을 하다가도 모두 단톡에 들어온다. 늦둥이 아들, 막냇 동생의 생존 보고를 받기 위해서다. 군에서는 일과가 끝나면 휴대폰을 내준다고 한다. 그게 오후 5시경이다. 5시를 기점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부대 구호와 함께 아들이 단톡에 들어온다.
조금만 늦어도 누나들의 온갖 걱정들에 난리다. 아직 안 끝났나,힘들었나를 거치다가 무슨 일이 있지 않은가하는 걱정으로까지 이어진다. 아들이 입장을 하면, 이제부터 단톡은 활성화가 된다. 디른 일을.히느라고 조금만 방심하면 수십개, 수백개의 톡들이 쌓인다. 입장을 하고는 한참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오늘 일과며, 전우들과의 얘기며, 선임들과의 얘기들이다. 그러고는 한참 사라졌다가 점호시간이 되면 내일 봐요 인사를 하고 다시 사라진다. 내일을 기약한다. 요즘 우리 가족들의 일과다. 물론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이걸 우리는 생존 보고라고 한다. 무사함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예전에 당신네가 군대 갔을 때 부모님들은 어떻게 견뎠을까요?"
단톡에서 아들이 사라지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아내가 나에게 던지는 말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려니 살았지 뭐..
이제 1년 2개월이 남았다.
아말다말 무사무탈 무사귀환을 바랄 뿐이다.
오늘도 오후 5시쯤이 되면휴대전화에서 "사랑해"라는 알림 메세지가 울리기를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