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 특히 공항에서 헤어짐은 뭔가는 특별한 것이 있어야만 될 것 같은 시대도 있었다..
가요를 들으면서 느낀 생각이다. 예전 유행가를 보면 공항에서의 이별을 소재로 한 가사들이 유독 많다.
공항에서는 반드시 이별이 있어야 하고, 돌아오는 길은 쓸쓸할 것 같다는 유치찬란한 감정의 표현이다.
오랜만에 고향 집을 찾은 둘째를 공항까지 배웅하고 오는 길이다.
수없이 많이 공항을 왔다 가건만 익숙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도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발길을 돌려본다.
틈만 나면 고향에 가고 싶다고 단톡에서 노래 부르던 둘째가 집에서 며칠간의 망중한을 보내고 귀경하는 날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집으로의 나들이는 자매가 일정을 맞추어서 다녀가곤 했었는데 이번 일정은 드물게 혼자 왔다 가는 길이다. 서로의 일정이 있다 보니 매번 그렇게 할 수만은 없는 나이가 되었다.
둘째가 어느 날 휴가를 간다고 단톡에 비행기표를 떡하니 올려놓았다.
갑자기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휴가를 신청했다고 한다. 구정때 다녀가고서 처음이니 몇 개월이 되기는 했다. 그래도 올해는 막내의 입대로 서울에서 가족이 모이는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 3월 입대, 4월 수료, 5월 후반기교육 수료 때 만났으니 지난달만 만나지 못하고 매달 만난 셈이다.
그러나 그것하고는 다르다고 한다. 부모님은 고향에서 만나는 게 제맛이고, 집에서 뒹굴뒹굴 방콕을 하다 가야 집에 다녀간 것이고, 가족을 만난 것이라고 한다.
마침 오는 날이 선친의 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애들이 집을 오가는 날은 아무리 바빠도 매번 공항 픽업을 직접 한다. 이번엔 사정이 여의치 않자, 단톡에 버스라도 타고 오라는 말을 전했다. 늦은 시간이라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은 걸 알 텐데 늘 공항에 마중을 나오던 아빠가 갑자기 버스를 타고 오라는 말에 둘째는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던 모양이다.
늦은 시간 제주공항의 대중교통은 불편하다. 30여 분을 기다리고 겨우 택시를 잡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 할아버지 제사상에 올릴거 뭐 사고 갈까?" 택시를 탄다고 연락해 온 지가 한참인데, 도착을 안 하길래 무슨 일인가를 걱정하고 있던 참에 전화가 왔다. 어떻게 할아버지 제사임을 알았는지 빈손으로 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SOS를 청한 전화였다.
“아, 그래서 공항에 못 나왔구나! ㅎㅎ” 제사를 준비하고 이것저것 하느라고 바빳던 것을 짐작하는 듯 둘째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제사인 줄 알았으면 일찍 와서 같이 했을 텐데..”라는 미안함을 감추던 둘째는 제사가 끝나고 밤늦게까지 설거지와 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 그래도 네가 와서 일을 다해주니 큰 힘이 되었다.”아내는 무척이나 고마운 듯 둘째를 보면서 웃었다. 사람 손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큰 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둘째는 집에 내려온 6일 동안 하릴없이 빈둥빈둥 그렇게 지내겠다고 선언했다.냈다. 우리 부부도 6일간의 일정을 모두 비우고 둘째와 하릴없이 지냈다. 먹고, 쉬고, 얘기하고, 자는 게 일과였다.
우리 부부는 애들이 휴가를 받고 내려오면 어디를 같이 가서 맛있는 것이라도 먹거나, 좋은 곳에 구경을 시켜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애들이 어릴 때 해주었던 생각을 아직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듯 싶다. 애들은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다 그냥 집에서 쉬면 된다는 생각이다.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서울에서 사람들 속에서 매일 신경전을 하면서 치이다가 왔는데 왜 제주집에까지 와서 사람들과의 전쟁에 들어가야 하냐는 생각이다. 그냥 집에서 푹 쉬고 싶다고 아내와 매번 전쟁이다.
어제 늦은 취침의 여파인지 모두 늦게 일어났다. 아내는 일정이 있어서 부지런히 챙겨서 외출했다. 둘째는 침대 위에서 눈은 뜨고 몸은 뉜 체 뒹굴뒹굴 이다. 휴가를 실감하는 기분이다.
"사진 볼래?"
애들이 어렸을 때 사진, 우리 부부가 결혼하기 전 사진, 결혼식 사진을 모두 앨범에서 떼어내서 케이스에 분류하는 작업을 올해 초에 했다. 그리고 모두 스캔도 했다. 한 2,000장 정도였다. 앨범에 담고 있으니, 변색도 하거니와 큰 앨범인 데 비하여 사진 보관량이 많지 않아서 비효율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주 볼 기회가 없다는게 가장 맹점이었다. 좋은 방법을 생각하던 중 올해초에 모두 스캔하고, 분류를 해서 소형 케이스에 담았다. 스캔본은 PC 앞에 있으면 언제든지 볼 수있다. 20여개의 소형 케이스에 담아 놓은 인화 사진도 케이스만 가져오면 언제든지 볼 수있다. 조금 있자니 거실에서 혼자 웃음소리가 들여온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면서 웃는 모습이다. 보는 사진들은 늘 봐왔었는데 유치원 때 사진, 어렸을 때 집에서 일상으로 찍은 사진은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킥킥거리더니 사진을 찍어서 언니한테 보내주고는 서로들 신이 난 모양이다.
저녁 시간 아내가 외출에서 돌아오니 서로가 사진을 보면서 다시 한번 과거로의 여행을 한다고 난리다. 2살 터울인 딸들의 어린 때 사진이 가끔은 구분이 잘 안되는 경우가 있어서다. 나도 실수를 몇 번 해서 응징을 당한 적이 있을 정도다.
다음 날 아침 20여 개의 사진 케이스가 내 책상 위에 있었다. 맘 늦게까지 하루 종일 사진을 보면서 과거 여행을 한 모양이다. "다 봤어?" "네, 재미있었어요"
토요일 아침 일찍 서둘렀다.
할머니가 고령이라 애들이 집에 올 때는 반드시 가서 만나도록 일정을 잡는다. 일찍 가서 할머니와 점심이라도 같이 먹고, 오후에는 서귀포 시내라도 한번 둘러보고 오기로 했다.
어머니는 95세의 고령이고, 여름철이라 뭐를 먹으면 요새 자꾸 장 트러블이 생겨서 비상사태 중이다. 뭐를 먹어야 하나? 젊은 둘째의 식성과 역시 입맛이 까다로운 어머니의 식성에 맞는 음식을 찾는게 우선이었다.
어머니한테 전화를 드리니 무척이나 반긴다. 예정에 없던 손녀의 방문인데, 직장에서의 좋은 소식도 가져온 상태라 기분은 최고로 업이다. "게메이, 뭐 먹으면 조코? " 끝을 흐리는 대답이 고민을 안겨준다.
이럴 때는 지근거리에서 어머니를 자주 보는 누나의 의견이 답이다. 같이가면 좋으련만 이미 친구분과 점심먹으러 가는 중이었다.
원래, 오늘은 인근에 사는 동생과 같이 두 딸이 어머니를 모시고 족발을 먹으러 가기로 했었는데 동생이 병원을 가는 바람에 다음으로 미루었다고 힌트를 준다. "족발은 좀 딱딱할 수가 있으니 보쌈이라도 사서 가보라" 쉽게 답을 얻었다. 사실 좀 전에 어머니하고 통화할 때도 언뜻 보쌈을 얘기했다가, 혹시나 하는 걱정으로 머뭇거리던 메뉴다.
보쌈은 우리 가족 누구나 좋아하는 메뉴다. 그러나 보쌈의 맛은 천양지차라 몇 번을 다녀서 맛이 검증된 곳이 아니면 쉽게 문을 두드리기가 어려운 메뉴이기도 하다. 다행히 서귀포에는 누나의 소개로 몇 번을 찾았던 가게가 있어서 어렵지않게 포장을 주문했다. 보쌈 반, 족발 반으로 모두를 충족시키는 메뉴다. 가는 길에 찾아서 가면 된다. 어머니의 식사량은 많지 않다. 딱 적당량을 시간에 맞추어 드신다. 약을 먹은 게 있어서 식사를 중단할 수는 없다. 어머니의 소식과 절제가 지금 이 나이 되도록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아내는 항상 어머니의 대단함을 얘기한다.
" 아, 고기가 부드럽고 맛있다. 먹고 싶었는데, 걱정이 돼서.." 한 점 한 점을 천천히 집어서 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된다. 이 음식을 먹고 저녁에도 무탈해야 하는데...
오후 늦게 집을 나와서 매일올레시장 투어를 갔다.
처음으로 여유를 갖고 둘러보기로 했다. 내가 살던 70~80년대 매일 시장을 주제로 원고 청탁을 받았는데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고 글의 소재나 느낌을 받기 위해서다. 너무 많이 변해 있어서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을 정도다. 내가 살던 집 앞에 차를 세웠다. 공영주차장으로 변해있었다. 천천히 걸어서 시장을 한번 둘어보기로 했다. 워낙 많이 변해있어서 30여 년 전 장소를 생각하면서 사진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듬성듬성 남아있는 그때 그 자리는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매일올레시장은 아케이드가 되있어서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걱정이 없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머리에 뚝뚝 떨어진다. 비가 제법 오는 모양이다. 이중섭거리를 걸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휴가 왔는데 흔적이랑 남기고 가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가족들하고 여러 차례 들렀던 곳이다. 토요일이라 그래도 투어객들이 조금 있지 않을까 했는데 텅텅 이다. 비싼 물가과 비용 문제로 제주에 관광객이 줄었다는 게 실감이 될 정도다. 거리에는 우리만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 다소 스산하고, 쓸쓸한 분위기다.
한적한 이중섭거리 모습과 대조적인 매일올레시장 거리
둘째는 제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에 다녀서 그런지 제주에는 친구들이 별로 없다고 한다. 나가서 친구 좀 만나고 오라고 재촉해도 필요가 없다. 애들은 휴가를 올 때 외부 친구들을 만나는 일정이 있으면 미리 얘기를 해준다. 가족과의 일정이 중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둘째도 휴가를 고지하면서 일요일 저녁에는 고딩 친구를 만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고 바람이 불어서 외출이 짜증나는 날씨로 변했다. 외출이 엄청 싫은 모양이다. 날씨가 더 나빠지면 약속을 취소해야겠다고 투덜댔다. 늦은 오후가 되자 비가 갰다. 할 수없이 투덜 투덜 외출을 했다. 유일한 외출이라 뭐라 말할 수가 없다. 그래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니 반가웠던 모양이다. 자정이 넘어서야 귀가 했다.
제주에는 산방식당라는 맛집이 있다. 가족 모두가 최애하는 맛집이다. 군대에 있는 막내도 틈만 나면 산방국수를 부른다. 휴가 때는 꼭 다녀가리라고 예정된 버킷리스트다. 둘째는 집에 내려온 날부터 지금까지 제삿밥에 전에, 고기 산적만 먹었다. 차례상 비빕밥이 주메뉴가 되어버렸다. 아내는 모처럼 혼자 내려온 둘째에게 제삿밥만 먹인 게 미안한 모양이었다.
"오늘 롯데마트에 갔다가, 산방국수 먹으러 가자.." 이왕 외출을 했으면 그냥 돌아오는 것은 왠지 손해를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모두 콜이다.
산방국수는 시내 여러 개의 분점이 있는데 맛이 조금씩 다른 모양이다. 그래서 동네에 5분 거리에 있는 산방국수를 가지 않고, 자동차로 20여 분을 가야 하는 제주점을 찾는다. 애들이 처음 산방국수를 먹기 시작한 곳이다.
내가 퇴직 전 출장차 들렸던 모슬포에서였다. 90년대 초중반쯤 이 동네 출신 직원하고 동행을 했다. 그냥 국숫집으로 알고 들어갔는데 밀면에 갓 삶은 따뜻한 수육 한접시가 나왔다. 밀냉면도 맛있었는데 따뜻한 수육 한 접시가 내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한참 후에, 시내에 분점이 생긴 걸 보고는 냉면을 좋아하는 가족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한번 찾은 산방국수는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대표적인 메뉴가 되었다.
산방식당 본점과 밀냉면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라 식당은 한적하다.
수육 한 접시에, 밀냉면 2그릇에 비빔냉면을 주문했다. 냉면값은 저렴한데, 수육은 많이 올랐다.
제주의 삼겹살 값이 전국에서 제일 비싸고, 냉면값은 제일 저렴하다는 뉴스를 방금 오면서 들었는데 그 뉴스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아빠, 이건 내가 계산할께요." 맛있는 걸 사준다고 데려왔는데 얻어 먹은 게 되어버렸다. 이젠 백수가 되어버린 아빠의 빈털터리 주머니를 챙겨주는 딸이 고맙기도 하다.
나의 글방이자 휴식처인 유심재의 이야기는 내 브런치 스토리의 주요 소재다.
지난달 첫째가 왔을 때도 유심재를 들렸다.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제주의 전형적인 농가 모습이라 도시에 살던 애들에게는 힐링의 장소다. 밀냉면 한 그릇을 얻어먹었으니 유심재를 구경시켜 주겠노라고 하고 빗속을 달렸다. 꽤 비가 온다.
며칠간의 강풍과 폭우로 유심재 우영팟은 엉망이다. 그래도 촌스러운 분위기는 여전하다. 비 오는 날 처마 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잔디밭을 타고 내려오는 물길은 언제 보더라도 좋다. 둘째는 우산을 쓰고, 엄마의 장화를 빌려 신고 우영팟을 한 바퀴 돌았다. 내 서재 앉은뱅이책상에도 잠시 머물렀다. 조그만 창문 너머 보이는 파란 하늘과 우영팟을 보는 멍때림의 순간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