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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Oct 19. 2024

강일병의 소울 푸드

휴가 온 아들과의 맛집 탐방

군대에서 사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는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애틋함이다.


첫 휴가 나오는 아들이 단톡으로 일정표를 보내왔다. 8박9일의 짧은 일정이라 하고 그런 건지, 첫 휴가라 그런 건지 하루도 빈틈이 없는 빽빽한 일정표다. 그 옆을 자세히 보니 일정마다 반드시 먹고 싶은 음식도 나열되었다. 요즘은 군대에서도 식사가 다양하고 맛있게, 젊은 병사들의 취향에 맞게 나온다는 데도 군대 밖에서 먹고 싶은 사제 음식은 있는 모양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제 음식이란 군대 내에서 먹은 음식이 아닌 외부 음식을 총칭한다.


자식들의 이런 마음을 안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게 부모다. 고향에서 머무르는 3일 동안, 고향의 사제 음식은 먹어야 하나, 일정이 빡빡하다. 3일 동안 5개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러나 매일 외식을 할 수는 없다. 엄마의 가정식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엄마의 손맛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첫날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픽업을 하면서 바로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아들이 여름내 찾았던 밀 냉면을 먹기 위해서다. 올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짜증이 날 정도였다. 아들이 자재에 배치를 받고 신병으로 근무할 즈음의 날씨다. 밖에서 땀을 흘릴 때마다 칼칼한 맛의 냉면 한 젓가락이 생각났다고 한다. 폭우같이 쏟아지는 땀은 닦아도 닦아소용이 없고, 안에서 올라오는 열은 식혀도 식혀도 소용이 없을 때마다 생각났던 밀 냉면이라고 한다. 아들은 저녁 시간 카톡을 할 때마다 산방 국수 얘기로 시작하곤 했다. 


늦은 오후라 산방식당은 한가했다. 우리는 각자의 메뉴를 주문했다. 밀 냉면, 비빔 밀 냉면, 계절 음식인 고기국수에 수육 한 접시다. 아들은 카톡에서 그토록 노래 부르던 대로 시원한 살얼음이 동동 뜬 밀 냉면을 주문했다. 음식 주문 자체만으로도 아들은 흡족한 모양이다. "드디어 산방 국수를 먹네"라는 표정이다. 수육은 음식이 나오기 전에 먼저 나온다.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제주산 돼지고기를 먹기 좋게 썰어나온 한 접시다. 식기 전에 먹어야 제맛이다. 고기 위에 고추냉이를 살짝 얹어서 먹는 맛은 고기의 덥덥한 맛을 잡아준다. 깔끔하게 만들어진 냉면을 볼 때나 먹을 때나 같은 맛이다.         


살 얼음이 동동뜬 밀냉면과 수욕 한접시


집 근처에 있는 나라왕돈까스는 아들의 소울푸드다. 

어릴 때부터 입대 전까지도 수없이 찾았다. 지금은 손님이 너무 많아서 개조했지만,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동네 어린이들의 생일잔칫집이었다. 매일 잔치가 벌어졌던 곳이다. 유난히 친근해 보이는 부부가 운영하던 식당은 내부를 아이들의 생일잔치를 할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만화책, 동화책도 비치하고, 아이들의 장난감까지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몇 번은 여기서 생일잔치를 것 같다. 아이들의 어릴 적 추억이 묻어 있는 동심의 장소이고, 어릴 적부터 맛이 깃든 소울푸드다. 

아내가 잠깐 장모님 병간호차 집을 비웠을 때는 나와 아들과 함께 주로 찾던 음식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추억이 깃든 나라왕돈까스를 아들은 먹고 싶다고 했다.     



3일째 되는 날, 아들이 집을 떠나기 전날 점심시간을 맞추었다. 

여기는 SNS 입김을 타면서 항상 만원이다. 인터넷상으로는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12시 전에 식당에 들어갔는데도 식당 안은 만원이다. 입구 쪽에 좁은 테이블 하나만이 있었다. 할 수 없이 의자를 가져다가 우리는 비좁게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대기 번호를 받아야 한다. 그 자리도 다행이지, 우리 다음 손님부터는 모두 대기 번호를 받았다. 

돈가스 하면 아이들이나 젊은이들만의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노년의 부부들도 꽤 들어온다. 소문의 위력은 대단하다.


여기 올 때마다 우리들이 주문하는 음식은 정해져 있다. 나라왕돈까스, 치즈돈까스, 쫄면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양과 맛을 가진 메뉴를 주문한다. 남기지 않고 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른 결정이다. 돈가스는 워낙 크기가 커서 먹다가 포장을 해가야 한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 얻은 결론이다.   

"와..이 치즈.." 돈가스를 썰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치즈를 보면서 아내와 아들이 감탄을 한다. 끊어지지 않고 길게 늘어져서 나오는 치즈를 보니, 변함없는 주인장의 음식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해준다. 돈가스 몇 조각을 먹은 후에 먹는 맵고, 시원한 쫄면은 돈가스의 텁텁함을 잡아주는 맛이다.  


우리가 주문한 나라왕돈까스, 치즈돈까스, 쫄면..나라왕돈까스는 이집의 시그니춰 메뉴다. 크기가 부담스럽다





"와! 전화 안 받네, 열 받아, 분명히 인터넷에는 영업 중이라고 떠있는데 .." 

연이틀 동안 저녁 시간 전화를 해대던 아들이 마침내 내뺕는 탄식의 소리다.

마지막으로 저녁 시간 야구 중계를 보면서 먹고 싶다던 음식이 J치킨이다.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치킨이다. 아내는 넉넉하게 먹을 생각으로 쿠폰도 모아두었다. 아들은 휴가 2일째 날부터 수없이 전화했는데 통화가 안 된다고 투털이다. 인터넷을 보니 영업 중이라고 돼 있다. 그러니 아들은 속상한 모양이다. 

"에이, 미련을 남기고 떠나라 하네..그래서 다시 오라고..."


결국 아들은 고향의 치킨 맛을 못 보고 떠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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