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입대 1년 되는 날
기쁜 시간도 흐르고, 슬픈 시간도 흐르고, 힘들었던 시간도 흐른다. 그리고는 과거라는 배를 태우고 망각의 세월로 보낸다. 그러기에 인간들은 살 수 있는 것 같다.
아침 일어나자마자 군복무 중인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평일인데 아침부터 카톡이네, 궁금해서 열어보니 오늘은 "근무휴식"이라고 한다.
엊그제 휴일 밤샘 당직근무를 한 보상휴일이다. 요즘 군대에서는 당직근무한 다음날은 하루 종일 휴식을 준다고 한다. 규정상으로는 그렇게 돼있어도 현실에서는 휴무를 보장해 주기가 어려운데 철저하게 지킨다고 한다. 하여튼 고생한 아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그리고 몇 장의 추억사진이 올라왔다. 작년 3월 4일 어색하고, 아쉬웠던 사진들이다.
까까머리를 깎던 사진, 왠지 맛이 없었던 엄마의 갈비찜 사진, 작은 방에 둘러앉아서 아쉬운 입영전야를 하던 모습들 아들도 많은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우리는 2024년 3월 5일 신병교육대라는 낯설고 물설은 곳에 아들을 데려다 두고 나왔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해서다.
첫날, 첫 주, 첫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신병교육대 훈련이 끝나고, 후반기 교육이 끝났다. 이제 어려운 훈련이 끝났으니 좀 나아지려나 하면서 수료식 면회 때 얼굴도 잠깐 볼 수 있었다. 며칠 후 앞으로 1년여를 근무해야 할 자대배치를 받는 날이다. 청천벽력이라고 해야 하나, 아들이 제일가기 싫다던 부대에 배치를 받았다. 자대배치소식(5월 14일)을 듣고 며칠간은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아직도 생각이 안 난다. 고르고 골라서 간 아들의 주특기가 묻히는 곳, 그것도 전방에 배치를 받았다. 무슨 근거로, 어떤 이유로 그리 배치했는지를 알고 싶은데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더욱이 자대배치 결정이 나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딱한 마디가 나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내가 이리저리 알아본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라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뭐를 하려고 들수록 어른으로서의 무력함만 남았다. 부대도 부대지만 아들이 제일 싫다던 곳에 배치를 받았으니, 선입견 때문에 차후 어떻게 적응할지에 대한 걱정에서다.
5월 16일 자대로 가는 길, 아들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매가리가 없었고, 전화를 받는 우리도 해줄 말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졌다. 2차 자대배치에는 주특기상 "여단에는 남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건 희망 고문이었다. 웬걸 아들은 최일선 외곽 포병대대로 배치(5월 16일)되었다. 인터넷을 다 뒤지고, 여기저기 알아봐도 그 부대에 대한 긍정적인 말은 없었다. 우리는 걱정반 두려움반의 상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초상집분위기였다.
아들은 오후 늦게 자대에 도착을 하고 전화가 왔다. 아들을 군대 보내기 전에는 모르는 전화번호가 찍히면 안 받았는데, 3월 5일 이후에는 웬만한 전화는 받는다. 역시 모르는 폰번호, 포대장의 휴대전화라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잘 도착했다는 안부를 전하는 아들의 풀 죽은 목소리를 듣자니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화남은 어쩔 수 없었다.
군대라는 내부를 모르는 아내는 지금까지도 매일 좌불안석으로 걱정하는 하루를 보낸다.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저녁시간만을 기다린다. 저녁 통화시간 아들은 아내를 안심시키기 바쁘다. 좋은 선임들도 많고, 이제는 후임들도 들어와서 조금은 편하고, 오늘 식사 때는 뭐가 나와서 맛있었다고 아예 메뉴를 단톡에 쭉 나열하기도 한다. 가끔은 선임들이 후임들을 데리고 외출해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고 노래방에서 즐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인증 사진이 올라온다. 그렇게 시간 시간이 가고, 하루하루가 갔다. 그런 게 쌓여서 이제 1년이 되었다.
"적응 잘해주어서 항상 고마워" 요새 아내가 아들과의 통화를 마치면서 하는 말이다. 핵가족 시대, 대부분 외아들인 요즘, 아들들이 군대에 가서 적응을 못하고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걱정 속에서도 잘 적응하고 건강하게 잘 지냄을 고마워함이다.
남자들은 군대 갔다 와서는 사후 합리화를 위한 평가, 결과론적인 평가를 한다. 남자들이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회가 해주는 평가다. 남자다워졌다고, 어른스러워졌다고, 이젠 어려운 일도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참는 것도 배우고, 하기 싫은 일도 할 줄 알고 "허허" 하면서 웃는다.
그런 얘기를 술안주로 웃으면서 소주 한잔을 하려면, 아들은 아말다말 무사무탈하게 원대복귀를 해야 한다.
(아말다말 :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 자식을 군대 보낸 부모들이 쓰는 용어)
오늘도 밖은 춥다.
아들이 있는 곳은 어제도 제설, 오늘도 제설작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18개월 동안 일상의 반복이다.
오늘 쉬고, 내일부터 다시 출발하는 2년 차에는
작년 오늘 무엇을 하면서 힘들어했는지를 추억하면서 지내보라고 답글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