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창석 Jul 18. 2024

게으른 농부를 슬프게 하는 것들

게으른 농부도 올해 농사는 힘들다. 

매년 어김없이 봄은 찾아오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라 이때 작물을 심어야 한다. 때를 놓치면 작물은 제대로 자랄 수 없기에 시기를 지켜야 하는 중요한 일정이다. 올해도 여지없이, 어떤 작물은 조금 늦게 정식을 했다.     

매년 작물을 심을 때마다 고민인 게 모종의 구입이다. 

주위에 여기저기 모종을 파는 곳은 많다.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면 대규모 육묘장도 있고, 시장이나 동네 좌판, 매년 때만 되면 길목에 나타나서 모종을 파는 계절형 모종 판매상, 심지어는 동내 슈퍼나 문방구에서 판매하기도 한다. 파는 곳이 너무 많아서 구입하기는 편한데, 여기에 구입하는 모종의 품종을 신뢰 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모종은 한번 심으면 몇 달간의 긴 기다림 끝에 결실맺는다. 모종의 신뢰성은 한참 후에야 알 수 있다. 불량 모종을 심으면 몇 달간의 긴 노력과 수고가 헛되어, 1년 농사를 망치는 일이 된다. 그러기에 모종의 구입과 선택은 매년, 매번 고민스럽게 하는 게 사실이다.

퇴직하고 농업기술원에서 농사 교육을 받을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내용이다. 모종은 신뢰할 수 있는 곳에서 반드시 구입하고, 거래 영수증을 받고, 품종을 반드시 알고 구입하라고 했다. 그래야 혹시 모를 나중에 일에 대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규모 농사를 하는 경우가 아니면 그렇게 조건을 붙이고 따지면서 모종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심지어는 구입 증빙을 남길 수 있게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곳도 많지는 않다. 그래서 인지 주위에서 모종을 파는 곳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해도 쉽게 추천을 해주지 않는다. 변수가 많은 농사라 추천을 해주었다가 망치는 경우에는 원성을 듣지나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다.

      

내가 게으른 농사를 하는 곳은 유심재에 있는 우영팟(텃밭)과 유심재에서 조금 떨어진 밭에 자가소비용 농작물을 심은 일이다. 내가 매년 심는 작물은 거의 정해져 있다. 나와 우리 가족들의 식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작물들이다.

재작년까지는 모종을 구입할 때 한림에 있는 대형 육묘장을 이용했다. 워낙 대형이라 소규모로 모종을 구입하는 경우는 미안할 때도 있으나, 주인장은 실은 내색도 안 하고 몇 개씩이라도 팔아주는 곳이다. 매년 고추 모종은 200여 개 내외를 구입하기에 다른 몇 개 품종은 소량으로 구입하더라도 명분이 선다. 몇 년간의 경험으로 수확의 결과가 좋았기에 그래도 먼 길을 다녀올 만했다. 단지 아쉬운 점은 카드 결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대신에 몇 개의 모종을 덤으로 주는 서비스도 있었다.     


4월이면 집에서 유심재로 가는 일주서로 대로변에 계절형 모종 판매상이 매년 등장한다. 벌써 4~5년은 족히 된 것 같다. 시내에서 애월읍으로 가는 길목이다. 주말이면 농장이나 세컨하우스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길이다. 평소에는 뻥튀기를 만들고, 고춧가루를 만드는 소형 방앗간이다. 4~6월이면 어김없이 모종 판매상이 찾아온다. 여기 모종 가게가 오픈하는 때 쯤이면 봄이 왔음을 직감하고, 봄 농사가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내게는 봄의 전령사, 농사의 전령사와도 같은 존재다.     

모종 가게는 집에서 유심재 가는 길가에 있다. 처음 2~3년을 두고 보다가 매년 정기적으로 가게를 열기에 궁금하기도 하고, 약간의 신뢰성이 생기기도 했다. 처음에는 상추나 토마토 몇 개씩을 보식용으로 소량 구입했다. 작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구입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이 가게에서 모두 구입했다. 고춧가루용 고추, 청양고추, 꽈리고추, 애호박, 가시오이, 토마토, 참외, 수박, 가지, 쌈용 채소류 등, 심었다가 자리를 못 잡으면 다시 사다가 보식을 하기도 했다. 



이리저리 게으른 농부 구력 10년이라 작물을 잘 살리기는 한다. 매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수확하고 주위에 나누어 주기도 한다. 농작물 때문에 가족들이나 주위에 인심 좋은 사람이 되기도 했다. 아내도 이런 나를 보면서 “가족들에게 가져다주는 게 당신의 농사를 짓는 목적”이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안 좋다. 

토마토는 자리를 잡지 못했다. 추가로 사다가 보식했는데도 마찬가지다. 토마토는 텃밭 작물 중에서 내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작물이다. 유심재를 오가는 길, 한두 개의 토마토를 손에 들고 먹으면서 다니는 간식거리인데 재미가 사라졌다. 자라다가 문제가 있었으면 비료나 토양 성분, 물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련만 제대로 자라지를 못했다. 

애호박도 마찬가지다. 청양고추도 작년 수확의 근처도 못 간다. 가지도 늦게 자라기는 하는데 수확량이나 모양이 엉망이다. 


올해는 유난히도 자연이 농사꾼들을 괴롭히고 있다. 작물을 심으면 내려주어야 할 비는 안 주고, 사막의 햇빛만 일찍부터 내려주었다. 요새 흔한 말로 작물이 타버리는 현상을 초래할 정도다. 쌈용 채소들은 진짜로 줄기나 잎이 누렇게 타버리고 있다. 

중간에 태풍급 바람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1주일간을 태풍 같은 바람이 휘몰아치니 작물들이 그대로 누웠다. 지금도 육지는 폭우라고 TV가 난리인데 밖에는 강풍이 분다. 열심히 만들어 놓은 지지대를 타고 잘 성장하던 애호박과 가시오이의 잎과 줄기는 바람에 탈탈 털리다가 앙상한 줄기만이 남아있다. 

바람이 오죽 강하게 불었으면 비닐 멀칭이 다 날아가서 1주일에 고구마를 2번심는 희대의 촌극이 벌어졌겠는가?  


이제 7월이다. 작물들이 결실을 보고, 수확해야하는 계절이다. 

풍성하지 못한 우영팟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허전해짐을 느낀다.

거둬들일 게 없는 작물을 보니 환갑을 넘어 내리막 인생 고개를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듯 쓸쓸하다.   

자연과 사람이 도와주지 못한 올해 농사는 게으른 농부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1주일에 2번하는 고구마 농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