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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ul 06. 2024

1주일에 2번하는 고구마 농사

자연은 참 무심도 하다

올해는 고구마 농사를 2번 한 게 되었다. 

고구마는 구황작물이고, 건강을 위해서 편히 먹을 수 있는 작물이다. 아침 대신 한 끼 대용으로 많이 먹는다.  그러기에 게으른 농부지만 고구마는 매년 농사하는 주요 작물이다. 

올해는 작년에 먹었던 고구마가 맛있길래 종자용으로 몇 개를 보관했다. 고구마는 3~4개만 심으면 워낙 줄기가 왕성하게 자라기 때문에 자가비용 고구마 모종으로는 충분하다. 예년에는 오일장이나 모종을 파는 가게에서 고구마 줄기를 사다가 심었다. 10,000원 정도를 주고 한 단을 사오면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는 가능하면 모종을 직접 만들어서 재배를 해 보려고 하는 중이다.  



얼마 동안 제주는 바람이 말 그대로 거셌다. 

태풍이 아닌데 마치 태풍을 연상시킨다. 집이 7층이다 보니 바람의 강도는 더 세서 발코니 창을 때리는 소리는 겁이 날 정도다. 아랫동네 바람의 세기는 발코니밖에 보이는 커다란 나무의 흔들림을 보고 짐작을 한다. 나무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거의 깍뚜기 절을 하는 걸 보니 바람의 강도가 태풍급이다. 하루하루가 그런 바람이다.

며칠 전 회의가 있어서 시내를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이런 날은 보통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아파트 사이를 걸어서 나갈려는데, 도무지 전진이 안 되었다. 80kg을 넘나드는 몸인데 바람에 이리저리 휘청대는 내 모습이 처량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무리 바람이 세도 이래본 적이 없는데 하면서 겨우 정류장에 섰다. 기다리는 10여 분 동안 불안해서 죽는 줄 알았다. 인근에 간판이 날아와서 나를 덮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 정도로 요즘 제주의 바람은 거세다. 버스에 타는 게 안전하다 싶어서 빙글빙글 돌아서 가는 버스를 타야만 했다. 



보통 고구마는 6월 20일경에 심었다. 그런데 요새는 이상기후 때문인지 사람들이 작물을 심는 시기가 매년 조금씩 빨라졌다. 고구마도 그랬다. 

길은 가다 보면 고구마 줄기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자리를 잡은 걸 보고는 아차 늦었다고 생각했다. 6월 20일이 지나면서 무더운 날씨에 장마, 개인 일정들이 겹치다 보니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6월에는 심어야겠다는 생각에 장마가 잠깐 쉬고, 제초 매트가 준비되자 날짜를 잡았다. 더 이상 연기할 수 없는 상황인데, 호사다마일까, 멀쩡하던 허리가 갑자기 근육이 뭉친 듯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밭농사는 잡초와의 싸움이다. 멀칭을 하고 이랑 사이 고랑에는 제초 매트를 깔기로 했다. 잡초와의 전쟁에서 제압을 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랑을 만들 곳은 넓이를 측정하고, 비료와 퇴비를 뿌리고 경운해서 밭을 만들어 두었다. 그러나 막상 멀칭을 하고 제초 매트를 덮으려다 보니 넓이가 조금씩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몇 개의 이랑이 누적되니 밀리고 밀려서 고구마를 심으려고 비료와 퇴비를 뿌리고 경운을 해 놓은 공간이 제초 매트를 덮어야 하게 생겼다. 허리가 아프지만 않았어도 다시 밭을 만들고 되는데 이게 문제였다. 할 수 없이 제일 노동력이 덜들 것 같은 멀칭용 비닐과 제초 매트를 연결해서 고정핀으로 박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고는 고구마 줄기를 부지런히 심었다. 잠깐 멈추었던 장맛비는 심술을 부린다. 옷을 흥건히 젖을 정도로 비가 내렸다. 장맛비가 계속 오던 터라 밭은 수분 끼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헉헉대면서 겨우 작업을 마친 우리 부부는 서로를 격려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서는 말이다.  



다음날은 거의 태풍급의 강한 바람과 장대 같은 비가 솟아졌다. 밖을 나가거나 밭을 둘러보러 가야 하는 데 엄두가 나질 않았다. 방콕이 최고의 수단이었다. 2일째 되는 날 바람이 다시 잠잠해지자, 이것저것 걱정이 돼서 유심재를 찾았다. 우영팟은 전쟁터였다. 지지대를 세워놓은 애호박, 가시오이는 남은 잎들이 없을 정도로 모두 바람에 털려버렸다. 참외, 수박 줄기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불려서 한곳에 모아져 있었고, 토마토 줄기들은 갈가리 찢겨 있었다. 평소 같으면 사진이라도 찍으련만 그럴 힘도 없었다. 대충 정리한다는 게 의미가 없었다. 

"밭에 가서 호박잎이나 따고 집에 갑시다" 아내에게 말을 건네고 차로 5분 거리인 밭으로 행했다. 사실 엊그제 심어놓은 고구마도 걱정이 되기는 했다. 차를 세워놓고 밭을 보는데 고구마 줄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보니 멀칭용 비닐들이 밭 한구석 나뭇가지에 걸려서 바람이 흔들리고 있었다. "고구마가 하나도 없는데..." 비명을 지르면서 밭으로 들어갔다. 

고정력이 있는 제초 매트만 그대로 이고, 비닐은 바람에 휘날려서 모두 찢겨나갔다. 비닐 위에 있던 고구마 줄기들도 모두 날아간 상태였다. 모두가 날아간 이랑에는 생존력이 강한 고구마 몇 줄기만 나풀거리고 있었다.망연자실, 속수무책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순간이었다. 어떡하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유심재로 왔다. 작업복으로 환복하고 농기구를 챙겼다. 다시 심을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고구마 줄기는 남은 여분이 있어서 구입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농사는 정직하게 해야 하는겨, 잔머리를 굴리면 뒤탈이 있네..." 아내와 나는 투덜거리면서 다시 비닐멀칭을 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흙을 덮고 비닐을 고정했다. 고구마 줄기도 다시 심었다. 두어 시간의 작업으로 마무리 하고 물도 듬뿍 주었다. "이제는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끄덕없겠지.." 아내의 경고성 멘트였다.


어제 다시 고구마밭을 찾았다. 

모두가 그대로였다. 단지 고구마 줄기들만이 새로운 도약을 하려는 듯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고구마 수확이 끝나는 날, 오늘 힘들었던 얘기를 하면서 웃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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