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소울푸드
(*주: 각재기는 전갱이의 제주어 표현이다)
어머니를 보러 다녀온 저녁 시간, TV를 보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각재기국 맛있게 먹었져….”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힘이 있다.
각재기국은 어머니에게도, 나에게도 추억의 음식이다.
어머니를 뵈러 가는 길이다.
마트에 들렀다. 오늘따라 수산물 코너의 각재기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다듬어지지 않는 체, 비닐봉지에 몇 개씩 포장해서 판매하고 있었다.
“각재기나 사고 갈까?”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내는 당황한 듯했다. 각재기가 다듬어지지 않은 채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고 가는 건 좋은데 다시 어머니가 다듬어야 하는 상황이라 아내는 그게 마음에 내키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각재기를 다듬는 과정조차도 어머니는 좋아하실 것 같기에 더 망설임 없이 한 묶음을 카터에 넣었다.
어머니를 뵈러 가는 날이면, 빈손으로 가늘게 미안한지라, 텃밭 농사에서 수확한 작물이나 아내가 만든 이런저런 것들을 가지고 간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인사를 하고 처음 하는 일이 가져온 것을 풀어놓고 자랑하는 일이다. 무엇을 드릴 수 있다는 기쁨에 일단 가방을 풀어놓고 우리는 가져온 것을 어머니에게 자랑한다. 안방 침대 위에 앉아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어머니는 반응은 늘 시크하다. “기여, 알았쪄. 고맙다. 거기 놔두라”처음 접하는 사람은 오해할 정도의 무관심한 멘트와 표정이다. 그리고는 한참을 얘기하다가 슬그머니 나와서 물건을 하나하나 챙긴다. 그리고는 칭찬반 고마움반의 몇 마디 멘트를 한다. 뭔가를 누구에게 받는 게 익숙지 않은 삶, 자식들이 가져오는 것을 그저 받는 것에 대한 미안한 생각 등이 복잡하게 얽혀서 나타나는 행동으로 이해하고 있다. 아내도 어머니의 이런 반응에 처음에는 많이 당황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이제는 어머니의 성격으로 이해하려 하지만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오늘도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는 가져온 것을 풀어놓으면서 자랑을 했다.
어머니의 반응은 평소와 다름이 없다. 90대 중반을 넘어선 어머니는 요새 부쩍이나 청력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약해지는 것을 실감한다. “어머니 각재기 사왔쑤다”내가 어머니 가까이 가서 힘주어 말했다. 각재기라는 말에 얼른 주방으로 온 어머니는 각재기를 살피더니 얼굴빛이 달라졌다. “이거 금방 다듬어야 허키여”라는 말과 함께 도마와 칼을 가져내더니 금방 베란다에 자리를 잡았다. 능숙한 솜씨로 머리를 잘라내고, 비닐을 벗겨내고, 내장을 냈다. 예전 많이 보던 모습이다. 나이 들었다고 몇십 년을 다녀온 기술이 다 녹이 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능수능란한 솜씨에 각재기 8마리를 다듬는 일은 금방 끝났다. 우리 부부와 누나는 옆에서 서로를 보면서 웃을 뿐이다. 각재기는 크기가 크고 기름져 보였다. 이제 며칠간은 각재기국을 끊여서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어머니는 어린아이 같이 신나 보였다.
각재기는 어릴 적 내가 자주 먹을 수밖에 없었던 추억의 음식이다.
그때는 지금의 매일올레시장 근처에 살았다. 당시는 매일 시장이다. 저녁 무렵 시장을 다녀오는 어머니 장바구니에는 고등어나 쥐치, 각재기, 갈치 중 하나가 있었다. 지금은 비싼 가격에 팔리는 쉽게 먹을 수 없는 비싼 어종이 되었으나 당시는 시장에서 가장 흔한 서민 먹거리였다. 고등어와 갈치는 조림이나 구이, 쥐치는 조림, 각재기는 국이다. 구이감은 생선의 배를 갈라서 내장을 내고, 굵은소금을 좍좍 뿌린 다음 마당의 시멘트 바닥이나 지붕의 햇볕에 말렸다. 며칠 마른 생선은 연탄불 위에 석쇠를 놓고 구운다. 석쇠를 몇 번 뒤집고 나면 누르스름하게 기름을 떨어뜨리고 있는 모습이 먹어도 된다는 표시다. 각재기국은 각재기에 얼갈이나 배추 푸성귀를 놓고 끓이면 된다. 다른 채소류는 필요 없다. 노랗고 하얗게 속이든 배추도 필요 없다. 파란 잎이 있는 배추여야 한다. 각재기국의 국물은 참고기의 깊은 맛이 우러난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기름기가 푸짐하고 진하게 입안을 감싸준다. 깊은 바다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각재기국의 이런 참 맛을 알게 된 것은 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나서였다.
직장을 다닐 때 동료들과 점심을 먹을 때였다. 지금은 유명한 앞뱅디식당이 그 옆에서 조그맣게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근처에 살던 동료가 맛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은 곳이다. 각재기국이 맛있다고 주문했는데 나온 모습을 보니 익숙한 모습이었다. 한 수저를 먹으니 맛도 어디서 익숙한 맛이었다. 어머니의 음식 맛이었다. 그제야 나는 그게 각재기국임을 알았다. 고향을 찾은 기분, 잃어버렸던 소중한 뭔가를 찾은 기분이었다. 그 후 나는 종종, 아니 정기적으로 각재기국을 먹어야 했다.
그즈음 시내에도 각재기국을 하는 식당들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게 돌하르방식당이다. 점심시간이면 줄을 서야 하는 그곳, 허름한 홀 안에 가득 찬 사람들 앞에서 펄펄 끓는 각재기국이 놓인 분위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가 각재기국을 다시 찾게 된 계기는, 내 단골인 마트 매장에 놓인 각재기를 보고부터다.
일주일에 두어 번 가는 매장인데, 각재기는 한 달에 두어 번 매장에 나온다. 날마다 나오는 게 아니어서 각재기가 나온 날이면 무조건 구매한다. 아내도 이런 나를 알기에 당연히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7~8개가 들어있는 한 봉지를 사면 2~3일 저녁거리 준비는 필요 없다. 얼갈이나 푸성귀 배추만 있으면 된다. 각재기국에 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공기는 뚝딱이다.
집으로 돌아온 저녁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힘이 차고 들뜬 어머니의 목소리다. 각재기에 내가 가져간 텃밭 배추로 각재기국을 해서 먹었는데, 국물이 너무 베지그랑 하고, 각재기도 살이 통통 쪄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는 자랑이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도 덧붙여 주었다. 칭찬이 드문 어머니의 평소 성격상 지금 이런 반응은 일종의 사건이다. 확실히 각재기는 가성비 최고로 어머니에게 최대의 선물이었다. 어머니의 기쁨 때문인지 요새는 마트를 가는 날이면 제일 먼저 수산코너를 기웃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텃밭에는 각재기국을 해 먹자고 심은 배추가 제법 자랐다.
유심재를 다녀오는 길, 텃밭에서 파란 잎을 가진 배추를 한 포기 캤다.
오늘은 새삼스럽게 각재기국의 맛이 궁금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은 설마….”하는 부푼 기대감을 안고 마트에 들렀다.
오늘은 각재기 매장이 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