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유감: AI와 함께 만든 손 편지

"손끝에서 전해지는 진심, AI로 완성되다"

by 노고록

연말이면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보내는 게 연례행사인 시대가 있었다.

친구들이나 아랫사람에게는 크리스마스 카드로, 윗사람에게는 격식을 갖춘 연하장을 보냈다. 매년 12월이 되면 우선 해야 할 주요 과제 중의 하나였다. 수십 장을 넘게 보내야 하는 해에는 카드와 우푯값으로 미리 용돈을 모아야 하기도 했다.

연하장은 한 해를 보내면서 고마운 분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인사, 어쩌다가 다투었던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화해를 청하는 마음의 편지였다. 친구들에게 모두 보낸다고 했는데, 깜빡해서 보내지 못하는 때도 있다. 친구들과 우연히 얘기하다가 나만 카드를 못 받았다는 사실을 안 순간 친구와의 친밀감을 의심하기도 하고 마음이 상하는 경우도 생긴다. 진짜 순수하고 풋풋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젠 모두 옛이야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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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2.28일 소인이 찍힌 연하장..내지에는 친필로 사연이 적혀있다.

인터넷 시대, 간단하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이메일이 생기면서 아날로그 감성의 손 편지가 없어졌다.

요즘은 SNS를 타고 동시다발적으로 다량의 메시지를 보낸다. 누구에게 보내는지, 어떤 관계의 사람에게 보내는지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 가장 일반적인 문구로 멋들어지게 한 장을 만들고 전송을 누르면 끝이다. 차별성도 없고, 개인화도 필요 없다. 굳이 용돈을 모아가며 연하장이나 우표를 구매할 필요도 없고, 일일이 손으로 편지내용과 주소를 쓸 필요도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보내는 사람에 맞게 무엇을 적을까 하는 고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저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면 된다.




오늘 오랜만에 손 편지를 부치려고 우체국에 갔다. 연말이라 그런지 우체국 창구는 사람이 가득했다. 예전 카드나 연하장에 붙일 우표를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던 우체국을 연상케 해 주었다. 그러나 다른 게 하나 있었다. 사람들의 손에는 편지 대신 번호표가 들렸고, 그 앞에는 큼지막한 택배 상자들이 놓여있었다. 예전 우체국은 편지를 부치는 곳이었으나, 이제 우체국은 택배를 부치는 곳이 되었다. 우체국은 우리의 아날로그 감성을 앗아간 대표적인 곳 중의 하나다.

이메일과 SNS, 문자메시지가 일반화되면서 이제 편지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편지를 부치던 우체국이 사라지고, 이제는 택배를 부치는 우체국이 되었다. 생존 전략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길거리 빨간 우체통의 추억을 빼앗긴 기분이다. 밤새 편지를 쓰고 우체통 앞에서 부칠지 말지를 고민하던 그때의 추억이다.

길가의 빨간 우체통은 손 편지가 전부이던 시대, 많은 사람의 애환과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시대의 상징물이다.


잡지의 제일 뒷장에 나오는 펜팔란을 보면서 알지도 못하는 이성에게 손 편지를 보내고서는 며칠을 끙끙 앓던 친구들이 있었다. 버스에서 만난 이성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서는 슬쩍 가방에 질려 넣거나, 아는 친구에게 전해달라고 빵을 사주면서 부탁을 하던 친구도 있었다. 멋들어진 문구로 연애편지를 잘 쓰는 사람은 어디서든 환영을 받았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지만, 군대에서 연애편지를 잘 쓰는 병사는 선임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선임들의 연애편지를 대필해 주는 게 커다란 특기였으니 말이다. 이 시대 손으로 직접 쓴 편지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세상을 이어주는 커다란 연결고리였다. 그래서 집 앞을 지나가는 빨간 가방의 우체부 아저씨는 항상 기다려지는 사람이었다.



오늘 부친 손 편지는 아주 사연이 많다.

얼마 전 아내가 60년 만에 처음 만난 사촌 언니의 편지에 대한 답신이다. 그분은 아내가 상대방의 존재를 아예 몰랐던 생면부지의 재일교포 2세다. 아내의 전화번호와 이름만 들고 입국한 그분을 호텔직원의 중개로 만났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한국어를 1도 못해서, 소통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휴대전화 갤러리의 사진으로 가족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스마트폰의 번역 앱에 의지하면서 간단한 의사소통을 했다. 매우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지만 황당한 만남이기도 했다. 이틀간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간 언니한테서 한 달 만에 편지가 왔다. 편지를 쓴 날짜하고 우리가 받은 날짜 하고는 한 달 차이가 있었다. 배달 기간이 무려 한 달이라는 얘기다.


편지는 두툼했다. 봉투를 열어보니 예쁜 꽃편지지 4장이 들어있었다. 언 듯 보아도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쓴 글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틀비틀하고 큼지막하게 쓰인 글씨는 편지지 한 장 가득하다. 마치 초등학교를 막 들어간 아들에게서 어버이날 받았던 편지를 연상케 해 주었다. 문장은 서툴고 매끄럽지가 못했으나, 이상하게도 편지지에는 그리움과 따뜻함이 잔뜩 묻어있는 듯했다. “전혀 한국어를 못하던데, 어떻게 썼지…?” 편지 끝에 답이 적혀있었다. 일본어로 편지를 쓰고, 스마트폰의 번역 앱으로 일일이 번역을 하면서 손으로 한글을 써서 보낸 편지였다.

Scan_20241231_001803-1.jpg 편지 말미에 적힌 친절한 안내문


"글쎄 일본으로 가니까 잊어버린 모양이네" 아쉬움반 그리움 반의 마음으로 연락 없음에 속상해하던 아내는 편지를 받자마자 답장을 썼다. 참고로 아내는 글을 쓰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고 스스로 얘기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순식간에 답장을 썼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한글로 쓴 편지라 한글을 모르는 언니에게 보낼 수는 없는 노릇, 번역해서 보내야 할 숙제가 생겼다. 아내가 일단 편지를 쓰면 일본어로 번역하는 일을 내가 해결해 보겠노라고 장담을 했기 때문이다.


모처럼 쓴 아내의 편지가 A4 2장이 넘는데, 그걸 휴대전화 앱으로 번역하면서 쓸 수는 없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AI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마침 내가 AI를 공부하고 있던 터라 어찌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아내가 쓴 손 편지를 스캔해서 텍스트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편지를 ChatGPT에게 번역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물론 문장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번역해 달라는 프롬프트도 잊지 않았다. AI는 사람이 주는 일을 아무 불평 없이 충실하게 수행을 해주었다. 며칠간의 고민을 순식간에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착하게도 번역한 내용을 다시 한글로 보여주었다. 언어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우리말의 세밀한 표현이나 감성적인 표현은 AI도 다 담아주지는 못했지만, 아주 훌륭한 결과물이 나왔다. 스스로 만족을 하면서 A4용지에 인쇄했다. 인쇄물로 깔끔하게 만들어진 편지를 처음 볼 때는 만족했는데, 몇 번 보고 있자니 편지가 아닌 듯했다. 일종의 공문서를 보내는 기분이다. 아내가 꼭꼭 눌러쓴 정성이 아무 데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더한 것은 서툰 한국어를 일일이 정성을 다해서 그리듯 써서 보내준 언니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건지 약간은 고민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리고서 한 달이 지났다. 연말이라 캐럴을 듣고, 방의 달력을 바꾸다가 문득 부치지 못한 편지 생각이 났다. "우리가 너무 한 것 아닌가? 이 편지 연말 전에는 부칩시다. 연말 정산해야지…." 아내에게 재촉했다.

부치지 못한 편지는 책상 한편 책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편지를 꺼내 들고, 날짜가 지났음을 표시하는 몇 개의 문구를 수정했다. 그리고 ChatGPT에게 다시 번역을 시키려다가, 한글을 좀 더 익숙한 AI를 사용하면 더 매끄럽게 번역이 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국산 AI인 클로버 X가 생각 나서다. 프롬프터를 주고, 본문을 붙여 넣으니 신속하게 번역물이 나왔다. 결과물을 받아보니 ChatGPT가 해준 내용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았다. 일단 문장의 차이가 있었다. 내가 일본어를 모르니 더 이상 검토해 볼 방법은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봐, 편지 첫머리에 AI로 번역했음을 알리는 문구를 삽입했다.

20241231_090452.jpg 클로바 X가 번역해 준 내용

A4 2장 분량의 편지가 만들어졌다. 한 장이 30줄 내외, 1,400자 분량의 편지다. 꽤 많은 내용이다. 일본어로 번역된 편지를 받아 들고 직접 수기로 옮겨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한참 했다. 일단은 옮겨 쓸 자신도 없었거니와, 옮겨 쓴 서툰 글자와 문장이 오히려 상대방이 읽는 데 불편을 줄 듯했다.

이왕 컴퓨터로 번역한 걸 다 아는데 그대로 보내기로 했다. 한자로 된 주소도 라벨도 깔끔하게 출력해서 편지봉투에 붙였다. 아내가 마음을 꾹꾹 담아서 정성스럽게 손편지인데, 보내지는 편지는 인쇄물이 되었다. 많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 최고의 방법으로 만든 손편지이기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

모처럼 우체국 창구에서 우표를 사고 편지를 부쳤다.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가슴이 설렌다.

답장을 기다려도 되는 차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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