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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이름이 아닌 맛이다

소울푸드인 접짝뼈국을 먹고 나니..

by 노고록

사람은 누구나 추억의 음식인 소울푸드(한국적 의미로 추억의 음식,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가 있다.

세월이 흘러 먹어본 소울푸드가 당시의 맛을 느낄 수 없음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경우가 많다. 소울 푸드란 단지 맛만이 아니라 분위기와 기분 등 모든 여건을 감안한 맛이기에 그렇다.

나는 까다로운 입맛은 아니기에 특별히 소울푸드랄 것은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그중 하나가 제주의 고유 음식인 접짝뼈국이다. 뼈를 오래 고운 걸쭉한 사골 국물에다가 무를 썰어놓고, 메밀가루를 풀어서 놓은 어찌 보면 단순하고 심플한 제주전통의 음식이다. 메밀가루와 무는 서로 엉키고 설켜서 뽀얗고 걸쭉한 국물을 만들어낸다. 잘 익은 고기는 뼈에 붙을까 말까 살짝 걸쳐있다가 젓가락을 갖다 대면 그냥 툭 떨어진다. 제주에서는 경조사날 추렴을 했을 때나 먹을 수 있는 흔치 않은 음식이기도 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내에서 접짝뼈국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은 별로 없다. 특별히 어려운 음식이거나 호불호가 있는 음식은 아닌 것 같은데 식당메뉴로 접짝뼈국을 하는 데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아마도 전국적으로 일반화된 국민음식인 감자탕이나 뼈해장국에 밀린 게 아닌가 한다. 2000년대 이후로 시내에는 두어 집 건너면 하나씩 감자탕집이 있다. 사실 언듯 보면 접짝뼈국인지 감자탕인지도 구분이 안 되는 면도 있기는 한데 내용과 맛에서는 확실히 구분되는 음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퇴직하기 전 미식가인 후배와 같이 자주 다니던 접짝뼈국을 하는 식당이 있었다. 시내에서 멀리 삼양동에 있는 식당으로 그리 크지 않는 곳으로 1주일에 서너번은 다녔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줄을 섰던 곳이다. 12시가 되기 전에는 가야 안심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길지 않은 줄을 서야 했다.


뼈를 잘 고운 사골국물에 무를 넣고 메밀을 풀어놓았다. 한 수저를 뜨면 끈끈하게 국물이 붙는다. 마치 수프 같다. 반찬은 간단했다. 생배춧잎에 추자도 산 젓갈을 준다. 뼈는 적당한 크기로 얼마나 다렸는지 젓가락을 갖다 대면 먹기 좋게 툭툭 떨어진다. 고기 한 점이 떨어진 국물 한수저를 입에 갖다 대면 베지근하고 듬직하다. 마치 밥 한 수저를 먹은 기분이 들 정도다. 예전 어린 시절 잔칫집에서 받아먹던 그 맛이 그대로 배어있었다. 지금도 그 식당은 맛집으로 성업 중이다. 그 당시만 해도 동네맛집으로 가끔 줄을 서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젠 알려진 맛집이 된 모양이다.

뽀얀 국물에 살이 적당히 붙어있는 접짝뼈국 한사발, 옛날 막 그대로다.


유심재를 다녀오는 대로변에 곱게 정리된 뼈해장국집이 생겼다. 눈에 띄는 것은 접짝뼈국이라는 글자다. 뼈와 관련된 많은 음식을 한다고 돼있었다.

"접짝뼈국도 한다고??" 이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위치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주에서는 규모가 꽤 큰다고 할 수 있는 400여 세대의 대단위 공동주택 단지 바로 옆이다. 제주의 콘셉트 하고는 맞지 않는 공동주택단지라 완공하고도 분양이 지지 부진하고 입주도 거의 안 된 상태다. 고가의 아파트로 제주를 들썩이게 했던 아파트였으나 결국에는 분양이 되지 않아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 아파트단지에 사람들이 뼈해장국 먹으러 가지는 않을 텐데.."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다.

그 앞을 지나면서 목표가 하나 생겼다. 그 집의 접짝뼈국을 먹어보는 일이다.

"우리 언제 저기서 접짝뼈국을 먹어봐야 하는데.."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늘 아내에게 하던 말이다. 가면 되는데 이상하게 그 가게 앞에 차를 멈추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유삼재(글방)에서 아침을 건너뛰고 출출한 속으로 집으로 오던 길이다. 마침 점심시간이기에 매번 지나치던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접작뼈국을 먹어 볼 생각이었다. 예상대로 손님은 없었다. 넓은 공간에 1팀이 있었고, 손님이 다녀간 테이블에는 빈 그릇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분위기가 접짝뼈국집이라기보다는 도회풍으로 잘 정리된 양식집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첫인상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일단 들어온 길, 궁금증은 풀어야 하기에 잠시 망설이다가 접짝뼈국을 주문했다. 잠시 머뭇거린 것은 혹시나 내 소울푸드인 접쩍뼈국이 내 예상을 깨고 엉뚱하게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밑반찬을 가져오던 직원이 상추와 젓갈(?)을 가져다주었다. 궁금해서 쳐다보니 음식이 나오면 뼈를 발라서 상추에 싸서 먹으라는 나지막한 설명을 주었다. " 응, 이게 뭐지.." 좀 낯선 분위기다. 이제 예상을 빗나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커다란 그릇을 손으로 들고 와서는 내 테이블에 놓았다. 왠지 어색한 서빙모습이다. 내 테이블에 놓인 커다란 구릿빛 그릇의 음식을 보자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난 분명히 접짝뼈국을 시켰는데, 허멀건 국물에 잔뜩 파만 언저 놓은 느낌.. 그리고 커다란 갈비.. 이건 갈비탕인데.. 소울푸드에 대한 내 감성을 앗아가 버리는 순간이었다. 수저로 저으니 커다란 갈비 2대가 있었다. 갈비에서 살를 분리하는 일은 쉽지도 않았다. 허멀건 국물에는 무도, 메밀가루도 없었다. 그저 갈비탕일 뿐, 잘 분리되지도 않는 갈비를 대충 손으로 쪼개면서 살을 발라먹고는 나왔다.

오늘 경험한 색다른 접짝뼈국,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렇게 해서 판매하고 있었다. 이건 갈비탕이다.


제주의 음식을 먹고 자란 세대라 밖에서 얼른 식당을 찾고 들어가기가 겁난다.

특히 제주의 전통 음식을 하는 향토음식점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름만 제주 전통음식이고 내용물은 완전히 다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음식은 뭐를 팔던 어떤 이름을 붙이던 상관할바가 아니다. 단 일반적으로 알려진 음식인 경우는 그에 기대되는 합당한 조리법과 맛이 있다. 사람들은 그걸 기대하고 가는 것이다. 종종 퓨전이라든지, 개선이라는 이름, 현지화라는 명목으로 변형된 조리를 해놓고는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메뉴 이름만 보고 주문했다가는 낭패를 보는 경우다.


제주에서 향토음식점이라는 간판이 많다. 과연 그 안에서 판매하는 음식들이 제주 전통의 향토음식인지는 모르겠다. 겉과 속이 다른, 이름과 내용이 다른 경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관광객들은 그걸 먹고는 제주음식에 대해서 평을 하게 된다. 장님이 코끼리는 만지는 격이다.


오늘 나는 어느 몹쓸 사람에게 내 소울푸드에 대한 감성을 빼앗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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