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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인생 변곡점을 넘는 아들에게

늦둥이 아들의 전역날 느끼는 단상

by 노고록

어김없이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갔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순간 시간이 딱 멎을 때가 있다.

시간이 가지 않을 것만 같은 순간이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 순간에도 어김없이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삶에 묻혀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답답함은 멈추고 우리는 해방이 된다.

영원히 가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이 흐른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고 얘기하게 된다.

지금 그 순간이 내게 온 듯하다.

KakaoTalk_20250904_065530561.jpg 지난 18개월의 숫자들

정확히 18개월 전, 늦둥이 아들을 낯선 곳에 맡기고 왔다.

만물이 꾸물꾸물 피어오르던 3월이었다.

긴 겨울을 지낸 자연들도 서로를 비비고 의지하면서 소생하건만 우리는 잠시 원치 않는 이별을 했다.

대한민국을 사는 남자로서의 의무를 하기 위해서다.

그날 그 시간 연천 신교대 앞에서 꾸물대던 사람들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정확히 18개월 전, 이젠 추억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된 549일 전의 일이다.

어떤 형태로든 본인이 원치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아무리 거창하고 명예스러운 이름을 붙이더라도 말이다.


항상 붙어있기만 하던 동그라미 우리 가족의 한쪽 모퉁이를 떼어냈다.

아직까지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경험을 하게 되는 시간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서로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로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생각, 그리고 서로가 살아온 길에 대한 생각들이다.

아들은 아들 데로 아는 이 없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삶을 살면서 자유와 가족에 대한 생각을 했고

집에 있는 가족들은 맨날 보이던 막내가 보이지 않음에 혹시나 하는 걱정을 했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고, 서로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해 준 기간이다.



그런 걱정 속 티끌 같은 나날들이 모여서 18개월, 549일이 지났다.

지나고 보니 벌써다.

무사히 전역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간의 부질없던 생각들이 교차한다.

전역은 고마운 일이다. 요즘 군대 생활에 적응을 못해서 어려워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막내는 꼭 가지 말았으면 하던 3가지 경우를 모두 합친 곳에 배치되었지만 별 탈없이 잘 지냈다.

아무쪼록 고맙다. 아말다말 하게 건강한 몸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반갑다. 이젠 아무 때나 볼 수 있느니 말이다.

축하한다. 또 하나의 인생의 변곡점을 무사히 통과했으니 말이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인생이고 본격적인 너의 삶이 시작이다.

18개월 전까지는, 정신없이 삶의 객체가 되어 살아온 나날이었을는지도 모른다.

사회와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학교를 다니고, 수능을 보고, 대학을 다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린 나이라 혼자서 세상이치를 판단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기에는 미숙하기에 사회와 부모가 개입하고 도와준 것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군생황 18개월은 너 혼자만의 숙성과 재충전의 시간이라고 합리화를 하면 된다.

이제 몸과 마음을 숙성하고 돌아온 너에게 더 이상 주위에 간섭과 도움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토록 원하던 자신만의 삶이 주어진 것이다.


18개월은 순수하게 자신만 돌아보고 반추해 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니 새로운 너를 그리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네 인생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그렸는지는 모른다.


그 생각과 결과는 순전히 너의 것이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말이다.


이제 부모는 네가 결정한 그런 인생을 잘 지켜내도록 응원하고 지켜볼 뿐이다.

그것은 부모의 기쁨이고 낙이자, 마지막 역할이다.


항상 응원하마, 그리고 사랑한다.


(추신) 그리고 이제는 항상 너의 전역 일자를 계산해 주던 고마운 앱을 지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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