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기타의 울림을 닮은 손주를 만나다

첫 손주를 만나서 한 세대를 더하면서..

by 노고록

2025년 12월 31일, 첫 손주와의 첫 만남을 약속한 날, 하마터면 첫 약속을 지키지 못할 뻔했다.


결혼하고부터 우리 집 아침 알람은 새벽 6시 자동으로 켜지는 TV다.

현대 문명의 이기는 99% 이상으로 정확하게 운영되다가 가끔 헛다리를 짚게 한다. 오늘 아침도 헛다리를 짚은 날이다. 아내와 아들은 어제 상경을 하고 오늘 아침은 혼자다. 첫 손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른 비행기를 타야 하는 설레임의 아침이다. 몸은 이미 기상시간이 지났음을 알리는 것 같은데 집안은 고요하다.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시계를 보니 이미 6시에서 1시간 하고도 40여분이나 지난 시간, 8시에 근접해 있었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빠듯하다. 자칫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둘렀다.



제주밖으로 나가는 날은 항상 코디가 걱정이다. 무엇을 입고 가야 하지가 아니고 '어떻게 입고 가야지'의 문제다. 제주와 서울의 날씨 차이는 크다. 제주의 온화한 날씨만 믿고 가볍게 입고 갔다가 매서운 서울 추위에 혼쭐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평소 간편함이 지나쳐서 아주 간단한 차림을 좋아하는 나와, 제대로 차려입기를 원하는 아내는 캐리어 앞에서 항상 '넣고 빼고'를 반복하면서 실랑이를 벌이곤 한다. 하지만 오늘은 나 혼자라, 혼자만의 생각으로 입고 가면 된다. 그래도 기본은 챙겨야 한다. 뉴스를 보니 엄청 날씨가 추울 것이라기에 내의까지 챙겨 입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앱을 보니 공항 가는 버스가 10분 후면 도착 예정이었다. 늦잠을 잔 것뿐 다른 여정은 착착이다. 밖은 좀 쌀쌀했지만, 정류장에 오자마자 버스가 왔다. 아주 여유로운 일정이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세밑 공항은 예상외로 여유로웠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연말이라는 것을 느낄 만큼 붐비지는 않는다.


공항에 왔을 때 기다리지 않고 바로 절차를 밟을 수 있는 날은 운수 좋은 날이다. 모든 게 나를 위해서 준비되어 있다는 생각, 나를 기다렸다는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넓은 공항 안의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만 보더라도 세상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속에 섞여 살기 위해서는 나도 부지런히 뭔가를 해야 한다는 자각을 받을 수 있기에 가끔 공항 나들이는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명분을 준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나면 그저 기다림의 시간이다. 공항에서의 커피 한잔은 기다림을 여유로 만들어 준다. 길 가다 보면 채이는 게 커피숍이지만 공항에서 커피숍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가 커피숍하면 언듯 떠오르는 찾기 쉬운 그런 브랜드도 없고, 그 몇 개 안 되는 커피숍도 요리조리 아주 잘 숨겨놓았기 때문이다. 몇 번의 기웃거림 끝에 사람들이 서성대면서 뭔가를 기다리는 곳을 찾았다. 커피숍이었다. "헉! 아메리카노가 6,000원" 지금 이 커피 한 잔은 내게 그 정도의 맛과 여유를 가져다줄 수 없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렸다.

공항에서 일단 수속을 밟고 들어오면 새장에 갇힌 새다. 공항밖으로 나갈 수 없다. 맛과 비용이 어쨌든 선택 권한은 없다. YES/NO, 즉 살건지 안 살건지만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 그런 일은 많다.


비행기 지연 출발은 이제 당연한 일상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이미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에 갇힌 승객들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항공사의 처분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지연 이유는 늘 똑같이 영혼 없는 사탕발림이다. "연결 편 지연 도착 때문"이라는 그 한마디면 모든 불편은 승객의 몫이 된다.


기분 좋은 여행길, 공항에 왔을 때 내 기분을 깨는 일들이다.

오늘도 공항 내의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늘 해왔던 대로, 보던 대로다. 답답하고 더디다. 그러나 기분은 예전같이 그리 불쾌하거나 답답하진 않다. 오가는 모든 것들이 여유롭고 넉넉하게 보인다. 참고 기다릴만하다. 느림의 미학인가? 모든 게 천천히 여유 있게 다가온다. 보고 싶은 손주 얼굴을 그리며 한시라도 빨리 가기를 원하는 나에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오는 듯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인가?"


잠시 쉼을 청할 때 클래식 기타 연주를 듣는다. 나의 오랜 습관이다. 이젠 잠시 쉼을 청하면 되기에 에어팟을 끼고 클래식 기타 연주를 골랐다.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을 때 듣는 음악이다. 언제 들어도 좋다. 클래식기타 나일론 줄의 울림은 따뜻하고 부드럽다. 풍부한 공명과 긴 여운을 준다. 강하지는 않지만 오래 마음에 남아 우리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무방비한 평화로움의 소리다. 오늘 처음 만날 우리 손주의 모습도 이 클래식기타의 울림과 같지 않을까?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에 찾아와 항상 내 주위를 은은하게 맴도는 그런 소중한 울림이다.




우리는 세월이라는 열차에 탑승하면 중도에 내려올 수가 없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그 열차 안에 몸을 기대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아내를 만났고, 자녀들을 만나 이젠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손주를 만나니 '하부지'가 되었다.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라는 노랫말이 훅 와닿는다.


하부지가 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요새는 내 손주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일정한 절차를 거치고 또 어느 정도의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미리 예방주사도 맞아야 한다. 접종을 하던 날, 의사 선생님이 당연한 듯 "손주 보셨군요"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무척이나 어색하고 생경하게 들렸지만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아울러 "아, 그래야 되는 거구나" 하는 세상의 변했음을 직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비행기를 타고, 지하철을 타면서 반나절이 걸려서 도착한 그곳에는 손주가 있었다.

태어난 지 정확히 45일 만의 첫 만남, 2025년을 마감하면서 내가 맺은 가장 경이로운 인연이다.


흔히들 "손주를 보고 오면 자나 깨나 눈에 밟힌다"라는 표현을 한다. 아들, 딸보다는 손주가 먼저라고 한다.


나도 그럴까?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노부부의 얘기가 갑자기 어슴프레 떠오른다.

"젊은 날 부모가 되고서는 자식들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를 몰랐다고, 지나고 나니 못해준 것만 생각이 나서 애들에게 미안했는데 자식이 자식을 낳았으니 이제 아들, 딸에게 못해주었던 것을 손주에게 해줄 수 있어서 너무나 좋다고, 그래서 기대가 된다"라고 하던 말이다.


손을 씻고 손주를 안았다. 품에 안긴 아이는 소리 나는 내 얼굴을 쳐다본다. 아직이지만 그래도 나를 알아보고 쳐다본다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아이컨택을 했다. 슬며시 웃는 모습이 무방비한 평화로움 그 자체다. 공항의 무질서와 어지러움 속에서도 여유로움과 평화를 가져다준 아이다.

unnamed.jpg


어느 날 문득 찾아와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클래식기타의 울림을 닮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또 하나의 인생 변곡점을 넘는 아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