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2025년 벌초 길 단상
매년 9월이면 치러야 하는 중대사가 있다.
바로 조상산의 벌초를 하는 일이다. 2025년 올해도 마찬가지다. 13기나 되는 산소를 벌초하기 위해서는 한라산을 넘나들면서 9곳을 찾아다녀야 한다. 벌초시간이나 이동시간이나 비슷하다. 산소에 따라 벌초인력이 많고 적음은 확연하다. 윗대 조상산 모둠벌초는 산소가 많더라도 사람들이 더 많아서 하루 정도면 끝이 나지만, 나만 해야 하는 벌초는 인력이 없음에 며칠이 걸린다. 하루에 끝내려고 무리를 하지 말자는 생각에서 하다 보니 두어 차례로 나누어서 한다. 아침 일찍 가서 해가 뜨기 전에 하고 나머지는 다음 하는 방식이다. 사실 무더운 여름 산소 하나를 벌초하고 나면 온몸이 젖어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사람이 기진맥진해서 다시 일어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올해는 4회에 나누어서 벌초를 했다.
물론 하루 종일하는 것은 아니다. 날씨가 더워서 중단하고, 폭우가 와서 중단하고 그렇게 짧은 하루를 사용하다 보니 4일이 걸렸다. 그러니 기분상으로는 마치 한 달 내내 벌초를 하는 걱 같다. 벌초의 데드라인은 추석이다. 예년 같으면 추석이 9월 말 경이라 9월 중순까지는 벌초를 마쳐야 했는데, 올해는 추석이 10월이라 비교적 여유가 있기는 했다. 또 하나 내 벌초를 도울 아들이 9월 초 제대를 하고 잠깐의 여유를 누린다고 2주간을 서울에서 있다가 내려오는 까닭에 순연될 수밖에 없었다.
올해 벌초 길은 유난히도 험난했다.
오름임야지대 산등성이에 있는 할머니 산소는 하마터면 벌초를 못할 뻔했다. 너무 왕성하게 자란 잡초와 칡덩굴 때문에 주위환경이 너무나 변해서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커다란 표식이었던 조그만 창고도 수풀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두어번의 시행착오와 도전 끝에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공동묘지는 온통 칡으로 덮여있어서 어느 게 무덤이고, 어느 게 길인지 도저히 구분이 되지 않았다. 마을에서 관리하고 있는 공동묘지이기에 기본적인 잡초관리를 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나기도 했다. 칡덩굴에 둘러싸인 산소는 넓다란 칡잎이 그늘을 만들어 버린다. 그 속에 있는 잔디들은 자랄 수 없어서 맨땅이 그대로 드러났다. 마치 머리숱이 없는 사람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라 벌초를 하면서도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매년 벌초 길에서 늘 하는 생각이 있다. 많이 걸어야 하기에 생각의 시간이 그만큼 길어지는 이유도 있다.
먼저 산들은 왜 이렇게 한라산 중턱, 오름 정상까지 올라왔있나 하는 궁금증이다. 동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산소도 문제지만, 장소와 위치를 가리지 않는 것도 문제다. 거기다 무거운 돌담으로 산담까지 넓고 튼튼하게 만들어 놓았다. 왕의 묘지가 아닌지를 들어보는 외국인도 있다고 할 정도다. 물론 후손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후손들이 잘 된다는 위치에 산소를 조성하느라고 무척 애를 많이 쓴 것은 알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후손들이 이걸 그대로 돌아다니면서 관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항상 하시던 말이 있다. " XX봉에 있는 증조할아버지 산은 네가 잘 모셔야 한다. 네가 잘 되도록 도와줄 거다" 그 산은 오름의 최정상에 있어서 매년 하는 벌초의 끝판왕이다. 올라가기는 힘든데 산소 앞에 서면 한라산까지 한눈에 보이는 전경은 일품이다. 허나 많은 세월이 지난 이제는 앞에 소나무가 크고, 건물이 들어서면서 찢어진 풍경화가 되었다.
조상님들의 고생으로 그런 좋은 곳에 산자리를 썼기에 지금의 우리와 나가 있는지도 모른다. 무척 고마운 일이나, 그것을 판단해 줄 근거나 자료는 없다. 단지 나도 나이가 들면서 우리의 조상들이 후손을 보는 마음이 그러했겠구나하고 느끼고 이해 할 뿐이다. 나도 부모가 된 입장에서 내 자녀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일이다고 하면 맞고 틀리고 보다는 일단 해야 한다는 감정이 앞서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또 하나 매년 이렇게 단순 반복적인 벌초를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도 있다. 벌초는 9월이 다가오면 맨 먼저 걱정이 되는 일이다. 가족과 문중 친척들과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경우는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변화된 시대와 환경, 편리를 좇아서 만들어지고 있는 사회환경에서는 고민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다. 고민 끝 결론은 "빨리 정리해 보자"다. 그러나 그 생각은 벌초를 마치고, 추석을 지내면서부터는 차츰 희석되기 시작한다. 과정의 단순하고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모아지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는 일이다. 그 생각은 다음 벌초 길까지 잠시 내 머리를 떠나게 된다. 사람은 닥쳐야 힘든 생각이 나고 바꾸려 한다. 시대가 변했고,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산소를 관리해 줄 후손들이 없기에 정리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세상을 살다 보니 과학이니 합리성이니 하는 객관화된 잣대로만 판단하고 살 수는 없는 경우가 많다.
1+1=2로만 이루어진 세상이 아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고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고민하지만 결정하는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결국 감정이 지배한다고 한다.
그런 삶이 누적된 게 지금의 우리네 삶이다.
관습과 관행사이에서 합리와 변화를 요구받고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