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접한 요즘 문화를 보면서
문화란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생활 모습과 사고의 누적물이다.
자연상태에서 벗어난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면서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 그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과정이나 결과의 유·무형적인 모든 것을 포함하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는 경작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자연과 대비되는 말이기도 하다.
문화는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누적된 삶의 모습이다.
오랜 기간 인간이 살아가면서 무의식 중에 누적된 결과로 시대와 환경에 따라 서서히 변화해 간다. 그러나 그 문화의 밑바탕을 흐르는 기본은 여전할 것이고 그 중심에는 그 가운데에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서서히 변화를 하고 적응을 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다.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런 변화가 아니다.
사회의 관계망이 촘촘해지고, 정보의 교류가 빨라서 그런지 변화라기보다는 혁신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다. 자고 나면 새로운 게 나온다. 용어도 그렇고 상품 이름도 낯설다. 좀 과장한다면 몇 개월 산속에 있다 나오면 새롭게 적응을 해야 하는 세상이 될 정도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천천히 변하는 어쩌면 가장 보수적일 수도 있는 문화의 영역에도 이런 현상은 피해 나갈 수 없다. 사회의 전 영역에서 이런 현상이 지속되다 보니 사람들도 갈피를 못 잡고, 사회도 세대 간, 계층 간의 차이를 조장하고 있다. 결국 이런 현상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통보된 결혼식 날짜
"요새 결혼식은 날짜를 골라서 하는 게 아니고, 웨딩홀이 비어있는 날에 하면 됩니다." 나와는 관계없이 지나가는 소리로만 들리던 얘기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설마가 현실이 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딸아이로부터 딱 하나의 날짜와 시간이 지정 통보되었다. 대답은 Yes/No만 필요할 뿐이었다. 딸이 말하기를, 본인이 원하는 결혼식장 몇 군데를 돌아왔는데 12월까지 중 비어 있는 일자, 시간이 이것밖에 없으니 이때 못하면 올해 결혼식을 할 수 없다는 통고였다. 법원의 출석기일도 선택의 여유가 있을진대, 30년간 온 정성을 다해서 키워 놓은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는 날도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날에 하기로 했다. 그게 요즘 풍습이고 문화라고 했다.
결혼식과 피로연도 업체에서 만들어준 시나리오에 그냥 따라 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도 제주에서 하는 사전 피로연은 좀 여유가 있었다. 예전 내가 결혼식을 하던 때와 같이 3일간 잔치는 못하더라도 5시간 동안 손님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언뜻 생각했을 때 5시간이면 너무 짧다 생각했는데 아무 일없이 온전히 손님 접대에만 집중하는 5시간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동안 소원했던 친족들과 친지들이 찾아주었고, 그들과 여유롭게 얘기도 하고 소주 한잔 할 여유도 있었다.
반면 서울의 결혼식은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식을 포함한 시간이 2시간, 촘촘히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고 사전부터 강한 주문이 들어왔다. 시키는 대로 따라 하기만 했던 2시간 동안 내가 기억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하나의 행동과 말에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날인데 내 의지대로 한 게 없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성스러운 일이어야 하는데 지나고 보니 아무 영혼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훅 지나간 타인의 일처럼 느껴졌다. 결혼식을 마치고 피로연장에서도 내 맘대로 돌아다니면서 인사할 수도 없었고, 그들과 어울려서 얘기 한마디 할 수 없음에 너무나 당황했고 미안했다. 내 뒤에는 항상 진행요원이 붙어 있었다. 과하게 표현한다면 진행요원들에 의하여 여기저기 배치되었던 휴머노이드 정도다.
출산일 산부인과를 찾아도 손자 얼굴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집안에 혼자 있다가 갑자기 산기가 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아내가 딸 옆에 있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내의 대답은 썰렁했다. "같이 산부인과를 가더라도 들어갈 수도 없고, 산모나 애기 얼굴도 볼 수 없다는데, 가서 뭐 하느냐"의 반응이었다. 이건 무슨 상황이냐고, 그럴 리가 없지 않냐고 내가 강변을 해봤자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 될 뿐이었다. 할수없디 출산일이 되기 전 며칠 가서 있어주고, 마지막으로 병원 가는 날 동행을 해줄 수 있을 뿐이라고 해서 아내는 딸애를 보러 다녀왔다. 그리고 손주가 태어나고 한 달 여가 지나서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출산 당일도 남편 외에는 병원에 들어갈 수도 없고, 면회도 안된다는 요즘 산부인과와 산후 조리원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물론 산모를 위해서라고 하겠지만 그럼 면회와 출입을 허용하던 예전 병원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결론은 한마디다. 그게 요즘 문화란다.
요즘 문화니까 가랑이가 찢어지고, 부당해도 따라야 한다고 한다. 공정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물론 이런 것들이 불편하다고, 불공정하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아니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달라져야 한다고, 바꿔보자고, 그렇게 하지 말자고, 그런 업체를 이용하지 말자고 하는 사람은 없다.
불편하다고 하면서도 그냥 감수하고 있다. 그러니 그런 업체나 상술이 점차 견고해지고 날개를 단다.
그들이 얘기하는 게 곧 우리 사회의 결혼 문화가 되고 출산 문화가 돼버린다.
그들은 단지 편하게 돈을 벌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놓은 건데 말이다.
주류 문화, 대중문화에 쉽게 편승하고 부추기는 사람과 이를 용인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우리 사회 미풍양속의 기저가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