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커피와 함께 사라지는 것들
오늘은 할 수 없이 아침, 저녁에 아메리카노 커피 두 잔을 샀다. 두 잔 모두를 마시지는 못했다.
아침에 텀블러에 가득 남아있는 커피를 보자니 뭔가는 아쉬움이 잔뜩 남는다.
"아, 이 귀중한 커피를..."
아침 길 커피 한잔을 사면 저녁까지 마셔도 남는다.
텀블러에 남은 커피는 다음날 아침을 먹고 간단하게 모닝커피로 마실 정도의 분량이다. 어쩔 수 없이 아침에는 식은 모닝커피로 입가심을 한다.
나는 커피 애호가라기보다는 PC 앞에 앉아서 뭔가에 집중을 할 때 옆에 두어야 하는 친구 정도다. 매일 반복적으로 하는 일종의 루틴이다. 습관적으로 아침에 가게에 들러서 커피 한잔을 사고 저녁시간 남는 것은 들고 집으로 들어오는 게 일상이다.
커피 10잔을 마시면 한잔의 리워드 보너스 쿠폰이 나온다.
처음에는 그 쿠폰에 유효기간이 있는 줄 몰랐다. 어느 날 휴대전화 앱을 보니 쿠폰이 있었다. 이걸로 커피를 마셔야겠다 하고 눌렀는데 유효기간 경과된 쿠폰이었다. 아쉬움이 잔뜩, 길을 가다 돈을 잃어버린 그런 기분이었다. 쿠폰은 사용기간이라는 게 그리 긴 것은 아니기에 아차 하면 놓칠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동네는 커피숍들의 전시장이다. 커피를 권하는 분위기다.
B** , C** , M** 등의 중소브랜드와 별 커피숍도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거주하는 신흥 베드타운, 애월로 오가는 길목이라 그런지 항시 북적북적하다. 나도 오가는 길, 집에서 작업을 하더라도 일상복 차림으로 나와서 커피 한잔을 테이크 아웃하고 간다.
나는 한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시원함에 커피를 마신다기보다 커피를 목 넘 김한 후에 오는 뒷맛의 여운 때문에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후각을 자극하는 따뜻한 커피의 진한 향은 아주 오래된 기억 속 추억을 소환해 준다. 차분하게 뭔가를 생각하는 시간을 내게 가져다준다. 커피는 맛이 아니라 분위기다. 그러기에 다 마시지도 못하는 커피 한잔의 일상을 오늘도 하고 있다.
얼마 전 앱을 뒤지다 보니 쿠폰이 4장이나 쌓여있었다. B** 1장, C ** 1장, M** 2장이 있었다. 한 달여에 40잔을 마셨다는 얘기다. 무료쿠폰 1장의 금전적 가격은 얼마 되지 않지만 어느 노래의 가사에 있듯이 따뜻한 정을 나누어 주는 찻잔의 기분이라 반갑다.
아침길, M** 커피집에 들렀다. 유효기간이 오늘까지인 쿠폰으로 결재를 할 생각이었다. 가게밖 키오스크에는 사람이 대기 중이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직원에게 쿠폰을 보여주면서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텀블러에 가득 담아준 커피를 받았다. 텀블러를 가져간 날은 커피를 더 많이 주는 기분이다. 텀블러가 넘칠 듯 말 듯 그냥 뚜껑을 닫기에는 아쉬움이 있어서 한 모금을 훔치고 뚜껑을 닫는다. 무슨 득템을 하고 가는 어린아이 모양 커피 한잔을 옆에 싣고 달리는 기분은 행복 가득이다. 오늘은 보너스 커피라 마음도 보너스로 가득하다.
"아니, 이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다 휴대전화를 보니, 오늘까지가 유효기간인 쿠폰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유효기간이 다음 달인 쿠폰을 오늘 사용해 버린 모양이다. 다른 한 장의 쿠폰은 오늘 사용 안 하면 없어진다. 그렇다고 지금 이 시간 누구에게 보내줄 수도 없다. 내가 잘못 내민 건지, 커피집 직원이 잘못한 건지는 모르겠다. 지금 와서 그것을 따져봐도 필요 없는 일이다.
저녁시간 내가 내민 텀블러를 씻으려면 아내가 깜짝 놀랐다.
"커피 안 마셨네요, 텀블러에 커피가 가득이야.."
자초지종을 듣고는 아내가 웃는다.
"원래 우리의 일상이 그렇게 계획대로 순리대로 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지.. "
오늘 하루 커피 두 잔을 마실 수는 없는 일,
내일 아침에는 식은 모닝커피를 해야 할 것 같다. 아주 많이...
식탁에 놓여있는 텀블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함께 식어가는 추억들이 떠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