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드신 어머니도 떄론 밥을 사고 싶어한다.
흔히들 "나이 들수록 돈이 있어야 힌다"고 말한다.
퇴직을 하고 나이가 환갑을 넘어서 자식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면서 자주 듣는 말이다.
가끔씩 찾아오는 자식들에게 생활비라도 하라고 보태줄 돈, 손주에게 용돈이나 장난감을 사주어야 할 돈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굳이 부르자면 부모로서의 품위유지비다.
모처럼 어머니를 뵈러 가는 날이면 종종 점심은 어머니가 한턱을 내시곤 한다.
먼 데서 왔으니 맛있는 것을 사준다는 의미, 꺼꾸로는 오랜만에 왔으니 사준다는 의미 등 여러 가지다.
오늘은 어머니의 입맛이 추어탕에 꽂히신 모양이다. 종종 찾는 단골집, 깔끔하고 정갈하게 나오는 맛집이라 시간을 잘 잡아서 가야 기다림을 피할 수 있다. 미꾸라지를 잘 갈아서 나오기에 추어탕이 거의 국물 수준이라 치아가 안 좋은 어머니가 씹을 필요가 없어서 좋다. 나는 유독 이 집의 돌솥밥맛이 좋다.
식사를 마칠 무렵 어머니가 카드를 내게 건네주었다. 오늘 음식값은 어머니가 낸다는 의미다. 한번 결정을 하시면 거의 번복이 없는 분이라 이젠 당연히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내가 낸다고 몇 번 사양을 했지만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어머니집 동네에서 점심값은 대부분 어머니가 낸다. 다른 특별한 날이나 어머니 심기가 불편한 날만 낼 수 있을 정도다.
어머니가 준 카드를 내가 받고 있자니, 어머니 옆자리에 앉아있던 노신사분이 갑자기 어머니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곤 마침 얼굴을 돌리신 어머니를 보더니 엄지 척을 하시며 뭐라고 얘기를 건넨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이라 걱정이 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물끄러미 쳐다보는 우리를 보더니 "멋쟁이랜.. " 잘 들리지 않던 얘기를 어머니가 전달을 해주었다.
보아하니 가족 같은데 연로하신 어머니가 식사값을 내는 것도 대단한데, 현금이 아닌 카드를 당당하게 내미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어 자신도 모르게 '엄지 척'을 했다고 노신사분이 나지막이 웃으며 전해주었다.
갑자기 날아들어온 칭찬에 어색했던 듯 어머니가 한마디를 더 추가했다.
"예, 큰아들네 하고, 큰 똘이우다. 나 나이는 얼마나 먹은 것 담수과?' 어머니의 뜬금없는 질문이다.
"한 85세 정도. " 머뭇거리던 노신사분이 대답에 내일, 모레면 100수 이젠 97세라는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는 노신사분은 조용히 물개박수로 한번 더 화답을 해주었다.
"오늘은 어머니가 밥값은 잘 냈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누나의 질투 어린 시샘으로 현장은 일단락되었다.
가끔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날은 주로 외식을 한다. 97세 노령이니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영양가 있는데 소화하기 부드러운 음식점 몇 군데를 리스트업 해두었다. 그중에서 그때그때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가는 곳은 달라진다.
밥값은 대부분 어머니가 낸다. 멀리서 왔으니 밥을 사준다는 명분이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했다. 다 큰 자식들이 함께 밥을 먹으면서 나이 든 어머니가 돈을 내면 남들이 욕할지도 모른다고 안 된다고 했는데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내가 살 돈이 았어서 사는 거니까 아무 말 말라고 한다.
"어머니는 예전 어려웠던 시절, 자식들이 먹고 싶어 하던 것들을 제대로 사줄 수 없었다.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쌈짓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미안함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어머니의 쌈짓돈이 생기고 여유가 생기니 늦게나마 자식들이 먹고 싶은 것을 사주고 싶다는 일종의 보상심리가 아닐까 하는 나만의 생각을 가져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금을 가지고 다녔다. 하지만 현금을 부족하다 싶으면 부정기적으로 은행을 가야 하는데 이건 옆에 사는 누나의 몫이었다. 매번 불편한 일이라 몇 번의 제안 끝에 체크카드를 만들었다. 현금이 오가는 것보다는 훨씬 편해졌다. 이제는 결재금액을 들어보지도 않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서 상큼하게 내민다.
요새는 부모가 제대로 대접받으려면 재산을 끝까지 쥐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흔하게 한다.
예전에는 자녀들이 결혼을 하고 손주를 보기 시작하면 대부분 재산을 모두 자녀들에게 물려주었다. 부부가 먹고살 거리만 남겨두고 정리하고 현실에서 퇴직을 했다. 아무런 부담 없이 편하게 노년을 보내기도 하지만 자식들이 자라는데 도움이 되고 싶어서다.
그러나 그런 선의가 어느 날부터 아픔이 되어 돌아오기 시작했다.
재산을 다 물려주고 사실상 빈털터리가 된 부모님을 잘 모셔도 이젠 더 이상 나올게 없어졌다. 기대치가 없으니 찾아볼 명분이 없어졌다. 부모님을 뵈러 갈 때는 뭐라도 사고 가야 하니 돈도 들고, 시간도 내야 한다.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이모저모로 투자를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돌아올 게 없는 부모를 만나러 가는 길은 연중행사가 되기도 하고, 가끔씩 선심 쓰듯 베푸는 시혜의 길이 되기도 했다.
부모와 자식으로서 정과 보답이 아니고 현실적인 손익계산이 앞서는 서글픈 현실이 되었다.
예전 막장극이라는 드라마에서 보던 일들이 이젠 슬며시 사회현상으로 돼버렸다. 물론 우리 사회의 일부이야기이겠지만 슬픈 자화상이다.
세상은 변하면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일들이다.
뿌리가 흔들리는 사회는 결코 든든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든 한 번은 그 뿌리가 되어 세상을 떠난다.
오늘 아침 TV 하단을 유유히 흐르던 뉴스자막이 떠오른다.
"자기 부모님 노후준비 하셨지? 확실하지?"결혼 필수 질문이 되었다.
이제 부모의 존재가 자녀의 혼삿길을 막는 장애물이 될지도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
식당에서 어머니를 향한 노신사의 '엄지 척'의 의미를 되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