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아버지가 미안함을 표현하는 방법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by 노고록

혼자 참고 견뎌야만 하던 시대,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품고 삭이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아주 옛말이 되어버렸다.

요즘엔 속에 있는 감정을 감추지 말고 있는 그대로 자주 표현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들을 가감 없이 내뱉게 된 지금, 역설적이게도 우리 곁엔 말과 글에 의한 상처가 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솔직해지자고 하는 동안, 정작 품고 삭임으로써 지켜냈던 소중한 것들을 너무 쉽게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요즘은 응답하라 1988 시리즈를 돌려보고 있다.

1988년, 내가 20대이던 시절의 감성을 느끼고 싶기도 하고, 제대 후 모처럼 집에서 한가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아들과의 추억거리를 만들어 보고 싶기도 했다.


저녁 9시가 되면 각자가 하던 일을 멈추고 거실에 모여 앉는다. 마치 아주 오래전 우리 집 안방을 보는 듯한 광경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힐링을 하는 기분이다.


빛바랜 필름을 보는 듯한 드라마 속 세트장이나 배우들의 모습, 얘깃거리들 모든 것들이 정겹다.

그중 우리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상을 보여주고 있는 성동일이다.

필요 이상의 사투리와 다소 거친 말투를 쉬지 않고 고성으로 내뱉는 모습, 종잡을 수 없는 표정과 행동 한마디한마디는 예측불가다. 성동일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원래 연기를 잘하기도 하지만 애드리브가 아주 강하신 분이라 대사와 애드리브의 경계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1988년에 20대 전후의 자녀를 둔 아버지, 내가 살던 시대 우리 동네 삼촌들의 모습이다. 이웃집 아저씨의 모습 같기도 하고, 내가 살던 골목길에서 마주치면 호통을 치던 친구의 아버지 같기도 하다.

성동일의 모습은 당시 아버지들의 특징적인 모습을 모아 놓은 듯한 캐릭터의 백화점이다. 그러기에 드라마 속의 성동일의 모습은 우리 세대가 직접 겪었던 여러 천구들의 아버지들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그 속에는 내 선친의 모습이 비치기도 하기에 내 감정이 이입될 수밖에 없다.




"응답하라 1988에서 보는 아버지"


성동일은 집에서 항상 큰소리를 친다. 본인이 잘못했어도 큰소리, 기분 좋아도 큰소리, 일상이 큰소리다. 나긋나긋한 대화가 없다. 어쩌면은 아예 진중한 대화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건 아마도 본인이 저질러 놓은 일에 대한 미안함에서 시작된다. 물론 역설적이다. 잘못을 한 사람이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고 큰소리를 치는 것, 그러나 그건 그 당시 가부장적인 우리 아버지 세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엎질러진 물은 지금 와서 주워 담을 수는 없다.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당장의 해결책이 없는 일을 자꾸 얘기하다 보면 잘잘못을 따져야 하고, 결국에는 미안함이 넘쳐서 무능으로 비칠 수 있기에 가장으로서는 체면이 안 서는 일이다. 그러기에 막무가내로 그런 자리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듯하다.


성동일은 가끔은 "어찌할 수 없지 아네"라는 말로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미안함을 표현한다.


그건 마치 역시 약주를 좋아하시던 내 선친이 술을 거나하게 한잔하고 들어오다가 어머니한테 들키는 날, 마당에 서서 초점을 잃은 채로 무안하게 서있던 모습과 같다. 그때 아버지는 어머니가 퍼붓는 무수한 말의 폭격 속에서도 묵묵부답이었다. 아버지의 미안함의 표시는 침묵이었다. 그건 수십 년 겪으면서 익힌 아버지의 지혜로운 행동이었다. 보통의 수련으로 그 상황을 참아낼 수는 없다. 말을 받고 주는 순간 전쟁일 수밖에 없는 살얼음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우리 시대 아버지의 잘못은 얘기할 수도 없었고, 따질 수도 없었다. 그저 그러려니,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야 하는구나 하고 살았다. 물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가장의 속마음이야 우리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겉으로 보이는 그 모습들은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쉬운 현상들은 아니다.

응팔.jpg 1980년대 우리 가정의 희노애락을 잘 표현해준 덕선이네 가족


"미안함 속에서 받은 보라의 선물"


사실 우리는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와 환경에 익숙지 않았다. 선물을 주기도 쑥스러웠지만 받는 사람도 그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은 서툴다. 선물에 대한 고마움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사의 감정 표현에는 다소 인색하건 서툰 것은 사실이다.


보라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받은 돈으로 산 아빠의 와이셔츠, 선물이라고 건네주는 보라도 어색하지만 받는 성동일도 몹시나 어색하고 서툴렀다. 아마 처음이라고 했던 것 같다. 몸에 맞지도 않은 사이즈, 성동일은 보라의 마음을 받고자 억지로 입었다. 맞지 않다는 주위의 얘기를 거부하면서 자랑하고픈 마음에 힘을 주는 순간 단추가 튀어나간다. 챙겨준 선물에 대한 마음이 고마웠기에 작다고는 차마 말을 못 했다. 그 선물이 얼마나 고마웠고, 받고 싶어서일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건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가끔 자녀들이 선물이라고 사 오는 옷들은 내 몸의 사이즈에 맞는 경우가 드물다. 아빠의 무게만큼 체격도 크게 보였는지 옷들의 사이즈는 크다. 얼마 전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 외국에서 비싸게 사 왔다는 옷은 1년이 넘게 옷장 깊은 곳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아주 입고 싶은 스타일이지만 크기가 내 몸을 덮고도 남으니 옷장을 열 때마다 눈팅으로 끝나니 가끔은 속이 상한다.


"우리네 아버지들이 속마음을 내비치는 서툰 방법들 "


보라가 고시공부를 한다고 집을 나서서 고시원으로 가는 날, 성동일은 은행 일을 핑계로 보라가 가는 길을 배웅하지 못한다고 했다. 보라가 가족들하고 이별을 하고 아쉽고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고시원으로 가는 길, 길목에 꾸부정한 성동일의 모습이 보인다. 가족들이 다 같이 있는 상황에서 떳떳하게 뭐를 내줄 수 있는 여건은 아닌지라, 고생을 위해서 떠나는 길 가족들 모르게 뭔가는 챙겨주려는 아빠의 방법이다. 역시 서툴지만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마음이 그대로 풍겨난다. 아버지의 무능으로 뒤늦게 힘들게 시작하는 보라의 앞길에 대한 응원이자 미안함의 표현 방법이다. 꼬깃꼬깃 둘둘 말아서 내미는 몇 장의 지폐와 약간의 먹을 것을 담아 넣은 듯한 종이봉투가 유난히도 그 시대 우리 부모님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앞에서는 제대로 말을 못 하지만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마음이 온갖 성동일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가 건넨 5,000원 한 장.."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용돈은 낯선 개념이었다. 아침에 학교까지 갈 수 있는 회수권정도라도 살 수 있는 돈을 받는 날이 운수 좋은 날이었고, 2km 이상을 매일 걸어 다녔다.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내 방문을 슬면서 열더니, 5,000원권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방에만 너무 있지 말고 바람이라도 쐬고 와라.."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일은 아마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와의 몇 안 되는 일화 중의 하나다. 나는 뜻밖의 횡재에 아무런 얘기 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이 어머어마한 용돈으로 미련 없이 헤드폰을 구입해 버렸다. 헤드폰 가격이 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헤드폰은 잡지와 TV에 비치면서 내가 아주 가지고 싶었던 필수템이었던 것 같다. 뭐를 구입할 때 검토와 비교를 하는 내가 당시 거금을 들여서 용도도 분명치 않은 헤드폰을 구입했다는 것은 사건이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을 아버지는 무심하게 내 마음을 아는 듯 해결해 주셨다.

길가에서 성동일이 건네는 꾸깃꾸깃한 지폐 꾸러미를 보는 순간 갑자기 아버지의 5,000원이 생각이 났다.



아버지들은 자식들이 해달라는 것은 남들과 같이 해줄 수 없는 순간부터 죄인 모드가 된다. 의무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안되니 못해주겠다고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아버지들은 많지 않다. 설령 말을 하드래도 미안함은 마음에 남는다.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럽게도 아내도 알아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아마도 1988년 세대를 살았던 우리 아버지,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자란 우리 세대까지의 아버지들의 모습일 것이다.


미안함과 의무가 섞여있는 우리 세대 아버지들, 그들은 미안함을 표현하는 방법은 서툴다.

단지 가족들이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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