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단순했지만, 아주 행복했던 날들 이야기

첫 손주가 나를 찾아왔다.

by 노고록

"신이 인간에게 절망했다가도, 어린아이를 보면 다시 희망을 품는다"라고 한 어느 유명시인의 시구가 있다.


TV만 켜면 전쟁과 사고, 이전투구와 중상모략이 넘쳐 나는 얘기로 나도 모르게 이마가 찌푸려지는 요즘, 그 TV소리를 잠시 잊게 하는 천사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26년 3월 어느 날, 나를 한 세대 밀어 올린 손주가 비행기를 타고 봄바람에 넘실거리 듯 엄마의 품속에 안긴 채 하부지 집을 찾았다. 세상의 빛으로 태어난 지 4개월 만이다.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주던 봄바람도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했지만, 우리 집에는 꽃둥이 손주가 찾아 주었으니 26년 제주의 봄꽃은 나의 방안에 있다.



작년 한 해 나는 손주와 사위를 얻었다.

연초에는 사위를 연말에는 손주를 얻었으니 말 그대로 정신없이 바쁜 한 해였다.


우리는 종종 언제 닥쳐도 닥칠 일이면 정신없이 한꺼번에 맞는 것도 좋다고 얘기를 한다. 좋고 나쁜 감정을 느끼고 추스를 경황이 없이 지나가는 것도 좋을 수 있고, 좋고 나쁨이 겹치다 보면 서로의 감정이 중화될 수도 있음을 얘기하는 말이다.


애지중지하던 딸이 다 커서 짝을 찾아가는 과정은 부모, 특히 아버지의 입장에서 심정은 참 복잡 미묘하다.

딸은 아비의 심장 근처에 머물다 떠나는 가장 귀한 손님이라고 한다. 딸이 휑하니 떠난 자리에는 남들이 모르게 아주 은은한 봄바람인 듯 한 칼바람이 스쳐가기에 외상 없는 마음의 상처만 남는다. 그 자리를 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세월이라는 연고로 아물고 터지는 곳을 바르면서 지낼 수 있을 뿐이다. 그건 경험자만이 그리고 각자의 위치와 환경에 따라서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기에 공통의 약이 없음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 속에서 지내던 어느 날, 그런 빈자리를 알아챈 듯 또 다른 생명인 손주가 우리를 찾아왔다. 사실, 딸애가 임신소식을 전할 때만 해도 그리 실감 나는 일은 아니었다. 다른 여러 가지 생각으로 단지 먼저 걱정이 앞설 뿐이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2세를 갖고 싶어도 못 갖는 난임(무자녀) 부부의 비율이 30~40%를 육박하는 시대, 결혼을 하자마자 들려온 임신 소식은 축복이 아니냐는 아내의 대꾸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나이가 칠순을 머지않게 바라보다 보니 체념도 빨라진 듯하다.



아이가 아이를 가지니 이제 엄마의 그늘이 필요한 듯 자주 엄마를 찾는다.

그러나 품 안에 자식이라고 했다. 제 삶을 찾아 떠난 아이에게 예전같이 할 수 없음은 현실이다. 사위도 있고, 시댁도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옆에서 매일 걱정을 할 뿐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없음에 한숨만 깊어진다.


"옆에 있으면 잠시라도 내가 봐줄 수 있는데..."

"아니지, 사돈들이 있는데, 내가 그렇게 하면 안 되지..."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생각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잠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벼르고 벼르다 손주가 100일이 넘어서 비행기를 탈 수 있음에 집을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안 그래도 누가 오는 날이면 앞뒤로 며칠은 집안이 난리법석인데, 이번엔 전쟁통이다. 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이불과 요를 꺼내서 세탁을 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밀어내고, 군대시절 내무반 점검 준비 이상이다.


아이 하나가 더 붙으니 대가족의 이동이 되었다. 마치 피난민의 짐같이 이것저것을 싸들고 현관을 들어섰다.


손주는 잠깐, 한 번의 만남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아직 세상을 볼 준비가 안 되어있는 건지 손을 내미는 내 품에 반가이 안긴다. 포근하지만 유리알 같다. 잘못 잡으면 굴러 떨어질 것 같다. 마치 풍선도 같다. 어느 부분을 강하게 누르면 터질 것 만 같다. 나도 내 품에서 세명의 아이들을 키웠지만 이건 다른 경험이다.


아이가 머무르는 보름간 우리의 일상을 손주에 맞추어져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손주가 일어나는 시간이다. 평소에는 느긋한 아침이었는데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아침 5~6가 되면 손주는 영락없이 기상 신고를 한다. 아내가 가서 아이를 맡아주어야 딸애가 잠을 잔다. 나이가 들어서 없는 새벽잠은 손주의 장난감 음악소리에 더 없어졌다. 모른 체 잠을 좀 더 청하고 있으면 아내가 손주를 데리고 나를 깨운다. '하부지가 뭐 하나..." 이젠 내가 손주하고 놀아주어야 할 시간이라는 신호다.

Gemini_Generated_Image_t6l21tt6l21tt6l2.png


손주를 안았다, 내려놓기를 몇 번 반복하면 하루가 간다. 사람이 이렇게 단순하게도 살 수 있구나를 체감하는 시간들이다. 우리 부부와 딸내외, 4명이 반복하는 일상이다. 교대로 돌아가면서 돌봐주어야 다른 사람이 쉰다. 손주 한 명을 키우는데도 이렇게 난리인데, 우리는 언제 아이 3명을 모두 키웠는지 참 내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그래도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남들 못지않게 한 것은 있구나는 자부심이 뿜뿜 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지나고 보니 2주일이 훅 지나갔다.

공항에서 안녕을 하고 또 다른 만남을 약속하면서 잠시 헤어졌다.


돌아온 길, 거실에는 흔적만이 가득하다.

보름간 손주가 점령했던 거실 가운데는 휑하니 빈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손주가 뿌리고 간 채취와 느낌은 아직도 공간을 꽉 채우고도 남는다.

그 채취와 향기가 다 사라지기 전에 손주는 다시 온다고 약속을 했다.

또다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우리 시대, 아버지가 미안함을 표현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