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꿈엔들 잊힐 수..' 없는 노래

향수라는 노래 속에 묻힌 선배와의 추억

by 노고록

승용자를 타고 막 라디오를 켰을때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는 날은 왠지 기분이 좋다.

운전이 편할 뿐 아니라 운전대를 잡은 내 손도 가벼워진다.

오늘도 그런 기분도 좋고 운도 좋을 듯 한 날이다.


아침 오랜만에 내리는 겨울비를 뚫고 유심재로 가는 길, 끝나지 않는 노랫소리에 차에서 내릴 수가 없다.

마치 노랫말 속의 서사와 같은 장소에 도착했다.


".. 서리 까마귀 우지 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유심재 입구에서 노래의 끝을 듣고서는 내렸다.

올레를 걸어 들어가는 길 자꾸 맴도는 가사가 있다.


"... 차마 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후렴구다.

향수.jpg

누구나 꿈엔들 잊지 못할 장소와 추억이 있다.




이 노래는 나에게 장소가 아닌 사람에 대한 "향수"다.

아주 오래전 한참 선배님이 들려주었던 노래로 나에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감흥을 주었다.

그 선배가 그날 그 자리에서 읊조리던 향수는 나에게 사람에 대해서도 향수가 느낄 수 있음을 남겨주었다.

그분은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무엇이 그리 바쁜지 몇 해 전 세상을 떠나셨다.

그래서 다시 뵐 수 없기에 그날 그 자리의 흥분이 아직도 내겐 여전한 것 같다.


내가 제주시에서 직장을 다니던 90년대 초반이다.

서귀포에 있던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몇몇 친구들과 같이 제주시에 동창회를 만드느라고 바빴다. 우리 기수들의 동창회를 만드는 것도 일이었지만 동문회의 제주시지회를 만드는 게 또 하나의 목표였다. 그러나 보니 선후배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 그 선배를 만났다. 나보다 6년 선배로서 제주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었다.

내가 동문회 일이 아니었다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분이었다.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자리 잡은 선배들의 인력풀이 많지 않던 학교를 졸업한지라 그분의 존재는 우리 후배들에게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분이 제주시 동문회 회장을 맡았고, 우리는 각 기수들 대표로 밑바닥을 다지는 작업을 했다. 그 선배가 우리를 대표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후배들에겐 큰 힘이 됐고, 우리가 같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자랑거리였다.


어느 날, 임원회의를 마치고 저녁을 먹고는 보통은 헤어지는데 그날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노래를 한곡 하자고 했다. 나이 차이도 있고 소위 말하는 사회적인 지위도 있기에 같이하는 그런 유흥의 자리는 아예 생각지도 못했는데 선배의 외침이 있었기에 후배들은 당연히 따라갔다.

지금 기억으로는 사무실이 있던 서해아파트 인근 단란주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원수에 어울리지도 않은 대형룸을 주는 걸 보니 아마 선배님의 단골주점이었던 것 같다.


몇 차례 후배들의 차례가 돌아가고, 선배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화면에 띄운 노래가 "향수"였다.


"어, 저 노래를 저 선배가 혼자서 부른다고..."

흔히 생각하기에 향수는 잘 부르기가 어려운 노래다. 원곡 자체의 느낌이 워낙 강하기도 하지만, 가사도 많은 듀엣곡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은 선배가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금방 기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잠시 눈을 감고 있으면 누가 부르는지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아주 편안하게 그러나 아주 강하게 들었던 기억이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선배를 새로운 느낌으로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 후 회장직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나와의 만남은 차츰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잊지 않고 전화와 서는 안부를 묻고 '한번 보자'라는 애정을 표현해주기도 했지만 끝내 만나보지는 못했다. 워낙 바쁜 선배인지라 일정을 잡는 게 쉬운 일을 아니었고, 하는 일이 서로 다른 분야이고 만나는 사람들의 대상이 다른지라 점점을 갖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서는 몇 해 전 부고장을 받았다.

전화 속 '한번 보자'라는 약속을 하지도 지키지도 못한 채, 우리는 영원한 작별을 했다.

이제 그 선배님의 '향수'를 다시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영원히 사라졌다.


이젠 가끔 들려오는 '향수'를 들을 때면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 아닌

그 선배가 '향수'를 불러주던 '그 홀, 그 무대'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황소같이 거대했던 '그 선배'의 모습이 보인다.


'차마 꿈엔들 잊을 수 없는.." 나만이 '향수'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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