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여름, 지중해에서 부르던 노래
2004년 여름, 나의 첫 해외여행지는 이집트/그리스/터키 지중해 3국의 주요 유적지를 돌아보는 7일간의 여정이었다.
주 5일 근무와 해외여행 자유화로 너나없이 여권을 들고 돌아다니던 시절이다. 회사에서는 부지런히 명목을 만들고 포상으로 직원들을 해외로 보냈다. 대부분 여행지는 동남아였다. 그것도 비용 부담 없이 출장으로 가는 길이었기에 감지덕지한 일이다. 어떤 동료는 몇 번을 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나에게는 행운이 닫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일이 터졌다.
"과장님, 카이로에 가봤쑤과?"
아니라는 말끝이 끝나자마자 팀장이 본사에서 받았다는 메일을 전달해 주었다. 전국 각본부에서 당분기 우수사원 1명씩 선발해서 해외여행을 보내는데, 그게 나였고, 여행지가 지중해 3국이었다. 이건 아닌 밤중에 홍두깨급 이었다.
학교 다닐 때 책에서나 들었던 카이로, 아테네, 이스탄불 7일간의 여행이었다. 당시 해외여행 대부분이 동남아였기에 우리 코스는 말 그대로 파격이었다. 준비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기에, 그날부터 여행을 출발하는 날까지 뭔가에는 홀린듯한 기분이었다.
남들이 두세 번 가는 것을 모았다가 나에게는 한방에 터진 것이라고 부러워하는 눈길을 뒤로하고 2004년 한여름 뜨거운 도시로 향했다.
처음 가는 해외여행 길, 지금같이 여행정보가 많은 것도 아닌 시절이라 뭐를 준비하고 가야 될지도 몰랐다.
긴장감이나 설렘으로 가득한 체, 두 돌이 안 된 늦둥이 아들 때문에 아내가 같이 못 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집을 나섰다.
당시는 중동에서 우리나라 무역회사 직원인 김선일 씨 납치 살해 사건으로 중동과 우리나라 관계가 뒤숭숭한 때였다. 과연 아무 일없이 카이로 입국수속을 밟을 수 있을까의 걱정과 우려를 가지고 출발했다. 서울에서 카이로까지 이동하는데 13시간, 마침 카이로 공항에 착륙한 시간이 컴컴한 한밤중이었다. 밖도 어두컴컴한데 무장한 군인들이 서있는 것을 보고는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시간여 우여곡절 끝에 입국수속을 마쳤다.
이후 이어진 2일 동안의 카이로 여행 남는 것은 군데군데 무징한 군인들과 누런 잿빛 도심, 그리고 사막 가운데 자리 잡은 거대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전부였다. 그중에서도 길가를 달리던 대우 지동차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학교 다닐 적 하도 외울 게 많아서 기피 과목이었던 세계사, 그중 고대사의 반을 차지하고도 남는 그리스다.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철학과 인문학의 기초를 만든 3대 철학자가 숨 쉬던 곳, 아크로 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곳에 발을 디딘다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가시지가 않았다. 아테네를 여행하는 이틀 내내 마치 고대왕국을 여행하는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웅장한 대리석 건물들과 도시를 누르고 있는 고색창연한 분위기, 도시를 덮고 있는 울창한 가로수 사이에서는 방금이라도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들이 튀어나올 듯한 소설 속 분위기였다. 몽환의 공간에서 월담을 하듯 잠깐 외출을 하고 마셨던 산티그마 광장 근처 플라카 거리의 하이네켄 한잔은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아테네 이튿날 일정이 말로만 듣던 지중해 크루즈 여행이었다.
항구에는 부를 상징한다는 각양각색의 요트들이 전시장을 이루고 있었다. 요트 하나쯤은 있어야 산다는 그리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크루즈 여행은 일정상 아테네와 가장 가까운 1시간 거리로 옛 도시국가가 있던 에기나 섬을 가는 일정이었다. 아파이아라는 대표적인 고대신전을 둘러보고 항구 인근의 카페와 해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낯선 첫 경험, 두려움과 기대감을 안고 오른 크루즈, 우리는 배 가운데 있는 객실로 향했다. 앞에 무대가 있고 둥글게 의자가 있는 일종의 공연장이었다. 무대에서는 그리스 전통 복장을 한 악사들이 신나는 연주와 전통무용으로 우리를 환영해 주었고, 원형 테이블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알굴, 피부색, 머릿결, 하는 말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마치 인종전시장에 온 듯, 내가 여행 중임을 실감할 수 있는 공간이자 분위기였다. 무대에서는 섬에 도착할 때까지 공연과 노래, 게임이 쉬지 않고 진행되었다. 테이블을 대표하고, 일행을 대표하고, 나라는 대표하는 사람들이 무대 위에 초대되어 게임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풀로어에 사람들은 따라서 노래와 게임, 안무를 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도 연예인 수준의 일행이 있었다. 나와 같이 동행한 우리 팀 직원이었다. 무엇이든 자신감이 있었고, 어느 자리든 참석을 마다하지 않는 젊은 친구였다. 그때도 그 친구는 마다하지 않고 우리 일행을 대표해서 무대로 나갔다. 게임을 하고 난 후 국적을 물었다.
"코리아"라고 이 친구가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음악이 연주되었다.
뭔가는 익숙한 멜로디, 그러나 조금은 어색한 연주, 가사가 튀어나왔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노사연의 만남이었다.
90년대 초 국내에서 한참 일기를 끌었던 노래, 이젠 국민 애창곡이 된 노래였다.
"아니, 이 노래가.. 왜 여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일행 40명이 앉아서 부르고, 다시 일어서서 부르고를 반복해서 몇 번을 불렀는지 모른다. 가사를 모르는 외국인들도 모두 손을 들고 좌우로 흔들고, 어깨동무를 하고 좌우로 흔들고... 남녀, 나이, 국적 불문이었다. 몇 차례를 부르고 나니 모두가 친구가 되어있었다.
그게 그 배위의 마지막 노래, 가시지 않은 흥을 중얼거리면서 배에서 내렸다.
그리고 섬을 한 바퀴 도는 사이에도 그 노래의 여운은 가시지가 않았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뜨거운 지중해의 선상에서 부르던 그날 모습이 떠오른다.
지중해의 뜨거운 만남을 외치고 온 지 20년이 지났다.
그때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의 만남은
이 노래 하나로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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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사랑해 너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