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자국'을 듣던 레스토랑의 추억

인생의 첫 출발을 생각하 본다

by 노고록

지금의 카페가 등장하기 한참 전, 음악다방을 넘어선 레스토랑이 성업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레스토랑은 지금처럼 한 끼 때우러 가는 곳이 아니라, 졸업식, 생일, 혹은 큰마음먹고 데이트 때나 가는 고급스러운 장소였다. 입구에 들어서면 은은한 조명과 함께 클래식이나 폴 모리아 같은 경음악이 흐르고, 웨이터가 정중하게 자리를 안내해 주던 곳으로 우리가 늘 접하던 음식점 하고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여기서는 차, 주류, 식사 모두가 가능했다.

식사 메뉴는 주로 돈가스, 함박스테이크, 비프까스였다. 음식이 나오기 전 수프를 먹는 것도 낯선 일이고, 메인 요리가가 나오기 전 "빵으로 하겠느냐, 밥으로 하겠느냐"는 질문은 당시 레스토랑 문화의 상징과도 같았다. 식사가 끝나면 커피, 녹차, 혹은 콜라나 사이다 같은 후식이 제공되어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곳이었다.


당시 레스토랑은 지금의 미니멀한 인테리어와 달리 푹신하고 높은 등받이의 소파와 레이스 식탁보, 그리고 앉은키만큼 높은 칸막이가 있는 구조였다. 조명은 칸막이만큼이나 어두워서 다른 테이블에 누가 있는지도 보이지 않을 정도라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분위기를 잡고 깊은 대화를 나누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그러기에 젊은 아베크족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의 성지 같은 곳이기도 했다.


Gemini_Generated_Image_sscudksscudksscu.png 레스토랑 내부의 모습(제미나이 생성)


1980년대 후반 레스토랑이 한참 유행하던 시절 하면 연상되는 음악이 있다.

경음악, 무드음악이라고도 불리던 연주음악이다.


당시 유행하던 연주음악은 다양했다.

리처드 클라이더만의 피아노 연주나 폴 모리아 악단의 연주 음악이 있었고,

시인과 나, 첫 발자국, 사람의 기쁨, 외로운 앙치기 등 다양한 악기로 연주한 개별 연주음악이 인기를 끄는 경우도 있었다.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시낭송 음반도 유행했다. 대표적인 게 오미희 씨의 시낭송이다.


목소리가 없는 단순한 연주음악은 가수의 목소리가 없기에 그저 멜로디와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연주음악을 들으면서 얘기하는 서로는 주인공이 된다. 서로의 얘기를 명확히 들을 수 있다. 그러기에 분위기가 중요시되었고, 밀어를 즐길 수 있는 장소인 레스토랑과 연주음악은 환상의 궁합이었고, 그래서 젊은 아베크족들이 많이 찾았는지 모르겠다.



1980년대 후반 연주음악의 인기는 대단했다.

당시 유행가의 성패를 좌우하던 길보드 차트, 길거리에서도 연주음악의 소리는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대중성을 감안할 때 호불호가 있는 연주음악보다는 누구나가 좋아할 만한 가수들의 노래를 들려줄 만도 한데도 대도로변 레코드 가게에서는 연주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연주음악의 악보가 좌판대에 전시되어 있었다. 주로 피아노나 기타로 연주할 수 있게 편곡해 놓은 악보들이다. 노래를 들으면서 한 번쯤은 뒤척여본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내가 한번 따라서 연주해 보면 좋을 듯해서 몇 장을 산 적이 있다. 얼마 전까지도 책장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 "The poet and I"라는 통기타 악보다. 당시는 한참 클래식 기타를 칠 때라 "이 정도는.." 이란 자신감으로 몇 장의 악보를 구입했지만 완곡을 한 기억은 없다.



당시 레스토랑은 동성끼리 가는 곳이 아니었다.

레스토랑을 얘기하면 '데이트했구나'가 정답이었던 시절이다.


서귀포 동명백화점 사거리에서 삼일빌딩으로 내려가는 길 좌측에 지금은 없어진 '미리내'라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3층으로 기억한다. 건물사이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길쭉하게 자리 잡은 그리 크지 않는 공간이었다. 당시 레스토랑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어둑한 분위기, 앉은키를 넘는 칸막이, 홀 제일 안쪽에 주방 인근에 뮤직박스가 있었다. 홀에 있는 누구로부터도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않을 듯한 분위기다. 여긴 드물게 잊을 만 하면 몇 번을 찾았던 장소로, 아직도 기억에 남은 서귀포 레스토랑 두 곳 중 하나다.


서귀포에서 클래식기타 동호회 활동을 하던 1980년대 후반이다.

여자회원들이 많은 단체의 구조상 레스토랑은 간헐적으로 방문을 해야 하는 필수코스였다. 그러나 비용이 문제다. 당시 레스토랑의 음식값은 일반 음식점보다는 꽤 비싼 편이었다. 1인 1 메뉴에 맥주 한잔이라도 하려면 비용부담이 작지 않았다. 유일한 남자이던 나와 친구는 학생이던 시절이라 주머니에 든 게 없었다. 그러니 먼저 가자고는 할 수 없었고, 누군가는 물주가 되어야 갈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곳이었다.


반면 여자회원들은 대부분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직장인이 제일 여유로운 날은 월급날이다. 이렇게 가끔 찾았던 곳이 미리내 레스토랑이다. 모두들 클래식 기타 연주를 하기에 연주음악에는 남다른 견해가 있어서 신청곡도 다르고 해석도 다르다. 느낌이나 평 역시 각자 다르다. 그러나 저러나 나와 친구는 남들이 신청한 음악을 묵묵히 들어주던 게 일이었다. 가끔씩 연주 음악사이로 들려오던 오미희 님의 시 낭송 또한 기억에 남는다.


지금 이 미리내 레스토랑은 없어졌기에 다시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 플레이 리스트에 있던 경음악이 흘러나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나를 '미리내'로 데려가 준다. 어느날인지 모르지만 그곳의 풍경 그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공공장소에서도 흡연이 가능했기에 진짜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아련히 피어오르는 추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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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 발자국'과 '시인과 나'라는 음악을 리퀘스트했던 것 같다. 팬 플릇의 연주가 특징인 '외로운 양치기'도 좋아하던 음악이다.



지금도 난, 이 글을 쓰면서 유튜브에서 그 음악들을 다시 꺼내 듣는다.

플레이를 누르자마자 들려오는 음악소리는 40여 년 전의 그 음악이 맞다.

그러나 방금 모니터에 비친 나의 모습은 '첫 발자국'을 들으면서 설레던 풋풋한 청춘의 그 모습이 아니다.

반백의 낯선 사내가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다.


이젠, 추억이라는 인생의 저편을 뒤척여 볼 때가 된 것 같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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