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 손님이 오는 날이라 저녁 타임 수련을 하기로 했다. 새벽 수업도 있었지만 날씨가 추워지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새벽에는 몸이 굳어 있어 위험하니까 저녁시간이 나을 거라는 핑계도 갖다 붙였다.
딸의 하교시간, 잔뜩 상기된 표정에서 판단 미스를 직감했다.
"엄마 아빠 이거 봐, 이거 우리 오늘 해야 돼!"
고사리 손에는 직접 만든 가정통신문이 들려있다. (누가 봐도 가짜지만 너무 정교해서 구분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
이번 미션은 할로윈 베개 싸움입니다. 먼저, 할로윈 분장을 하시고 베개 싸움을 합니다. 알레르기가 있는 분은 안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무서운 옷을 입고, 누군가를 놀래키시면 됩니다.(살살 놀래키세요)
이태원 참사로 인해 모든 파티가 취소되면서 초등생들은 충격에 빠져 있다. 한 달 동안 학원 할로윈 파티에서 쓸 쿠폰을 모아 왔는데 하루 전날 취소라니, 나 같아도 분노 게이지 폭발일 거다. 파티가 왜 취소되었고, 우리가 함께 추모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끄어끄어~ 서럽게 울다 다시 잦아들고, 끝났구나 싶으면 다시 대성통곡, 30여분은 울었던 거 같다. 어떤 딜이 오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퉁퉁 부은 눈으로 나온 딸은 아빠 품에 폭 안겼다.
"아빠 잘 갔다 와, 끝나고 내가 얘기하는 거 사 오면 돼. 오늘 1시까지 놀 거야. 먼저 자면 반칙이야."
한 바탕 전쟁을 치른 후라서 그런지 발걸음은 천근만근. 요가원엔 우리 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금요일 밤이지 않은가. 불금 밤에 요가라니, 금요일 저녁에 출근하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싶다. 한 가지 다른 건, 출근은 돈을 받고 하지만, 요가는 돈을 내고 한다는 것.
역시 선생님께서는 다 들여다보고 계신가 보다.
"오늘은 두 분만 나오셨어요. 다들 불금을 즐기러 가셨나 봐요."
"그러게요. 저희도 다음엔 새벽반에 와야겠다,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우리는 우리데로 요가로 즐기면 되죠. 제가 즐겁게 해 드릴게요."
'즐겁다'의 의미가 '최대한 고통스럽게'로 번역되는 순간이다.
후굴의 밤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금요일 밤을 위해 '후굴 한상차림'을 준비해 주셨다.
이런 자세들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만들게 된 것일까? 우리는 왜 금요일 밤에 모여, 엑소시스트에나 나올법한 기괴한 자세로 숨을 헉헉 거리고 있는 걸까.
가장 인상적이었던 '만두카 아사나' 일명 개구리 자세. 골반을 수문 개방하듯이 열어젖히는 동작이다. 선생님은 늘 천천히 조금씩 늘려가다 보면 된다고 하시지만, 이게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신기한 건 그런 맘이 올라올 때마다 시범을 보여주셔서 깨부숴 버린다는 것.
개구리 자세 후에 부장가 아사나를 하면 확실히 좀 더 편안해진 느낌이다. 자세의 변주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가동 범위가 확장되고 있는 느낌이랄까. 선생님께서 사진을 찍어 보내 주셨는데 확실히 이전보다 치골의 눌림이 좋아 보인다. (표정은 고통에 허덕이고 있었지만)
수련을 마치고 나오니 바람이 초겨울 것처럼 매섭다.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보니 일단 그냥 오란다. 같이 편의점에 가서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사다가 파티를 하잔다. 돌아가서 베개싸움과 파티할 생각을 하니 뻐근했던 몸이 더 쑤셔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