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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Nov 14. 2022

재등록 감사드립니다!

22.11.14(월)

병에 대한 걱정을 달고 산다. 이십 대 후반부터였나, 늘 어딘가 아팠는데, 해가 갈수록 목록이 늘고 있다. 비뇨기에서 심혈관까지, 아플 때마다 정보를 찾다 보니 본의 아니게 돌파이 의사가 되어가고 있다. 친구들은 그런 내게, 넌 그런 식으로 백 살까지 살 거라고 했다. 죽이고 싶은데 왠지 안심이 된다.

‘그래, 난 그냥 이렇게 살 팔잔가 보다.’ 체념하고 싶지만 아프니까 그것도 쉽지 않다.


니콜이 암 진단을 받고 나서 불안은 더 심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주 앉아 먹던 된장찌개를, 혼자 먹어야 할 수도 있다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곤히 자는 딸을 보며, 매일 밤 한숨짓곤 했다.

치유를 위해 식재료를 바꾸고 함께 운동도 해봤지만,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니콜이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이 힘들어서, 이번엔 몸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였다. 진단을 받고, 삶을 마주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꼭꼭 묻어놨던 것들이  튀어나온 것이다. 이게 무슨 장난인가 싶게, 불안장애를 동반한 복합성 우울증. 본의 아니게 ‘불안’을 가지고 배틀을 펼치게 되었다.

 

우린 건강해지고 싶었다. 몸은 물론이요, 유리장 같은 멘탈까지. 니콜이 요가라는 처방전을 찾아 자랑하길래, 나도 질러버렸다. 혼자라면 절대 돈 내고 요가원을 찾을 일은 없을 것이기에, 절호의 기회다 싶었다.

“그동안 한 번도 안 빠지고 다 나오셨네요. 벌써 한 달이 됐어요.”

한 달이라니, 주 3일이니까 12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와 몸을 굽혔다, 젖혔다, 꼬고, 비틀었다. 새벽을 열기도 하고 금요일 밤을 불태우기도 했다. ‘요가란 이런 거죠’라고 말 하기엔 너무 짧은 기간이지만, 스스로에게 ‘짝짝짝!’ 해주고 싶다.


요가를 시작했다고 해서 아프던 몸이 눈에 띄게 건강해졌다거나,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골반이 열리면서 잠이 잘 오고, 잠이 잘오니 다음날이 기다려진다. 변도 조금 좋아진 거 같고 목의 통증도 조금은 좋아졌다. 허리는 잘 모르겠는데 왼쪽 무릎은 가끔씩 오금에 통증이 있다. 안 쓰던 곳들을 쓰면서 생기는 통증인 거 같다.

가장 좋은 것을 꼽으라면, 두려움이 몰려올 때 대처할 수단이 생겼다는 거다. 불안하거나 어딘가 아파오면 요가매트를 깔고 앉는다. 단다 아사나로 시작해 부장가 아사나를 거쳐, 사바나 아사나까지 한 바퀴 돌면, 살고 죽는 게 조금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선생님께서는 늘 다 괜찮다고 한다. 먹고 싶은 거 먹어도 되고, 자세가 안 나와도 되고, 슬퍼도, 우울해도, 괜찮다고 한다. 니콜은 워낙 선생님 말을 잘 듣는 편이라, 바로 다음날부터 먹고 싶은 거 다 먹는다. 주말에는 <인생이 내추럴 해지는 방법>북토그에 가서 내추럴 와인도 사 왔다. 병뚜껑을 따는데 진짜 폭발하듯 큰 소리가 나면서 은은한 사과향과 거품이 흘러나왔다. 난장판이 된 테이블 위를 닦아내고 나서야 안내문에 적힌 주의 문구를 발견했다. ‘괜찮아, 우리 말고도 이런 사람 많을 거야(진짜로 많았다). ‘어금니 발치한 지 3주 됐으니 이제 좀 마셔도 되겠지?’ 짠하고 잔을 부딪히고 교촌치킨을 뜯었다.


30년 후? 아니면 20년? 아니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어차피 다 죽는다. 어차피 죽는다면 지금은 우리 앞에 있는 것들에 충실하자. 와인을 머금고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자. 맛있어 보이는 닭다리를 건네고, 북토크의 감상을 이야기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지금을 살자.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서 당장 내일 죽는다 해도 후회가 없었으면 좋겠다.


진정 그렇게 될 때까지 재등록 합니다 선생님!^^


P.S 이런 얘길 하면 우리 딸은 이렇게 말한다. “아빠, 그래도 죽는단 말은 하지 마요. 말이 씨가 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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