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보로 Nov 17. 2022

이걸 하려고 그렇게 우리는

22.11.16(수)

세 번째 새벽 요가를 마치고 너덜너덜한 몸을 추스르며 선생님께 질문했다.

"선생님 아까 그 자세 이름이 뭐였지요? 아까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에카파다라자카포타아사나(왕 비둘기 자세). 이름이 좀 길지요. 오늘 앞에서 길게 몸을 풀어준 이유가 이걸 해보려고 한 거였어요. 아직 초보시니까 한 단계 한 단계 몸을 풀면서 접근하도록."

"근데 너무 힘드니까 이게 진짜 가능하긴 한 걸까 싶더라고요."

"몸만큼 정직한 게 없어요. 세상엔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게 많잖아요. 몸은 거짓말을 안 해요. 하다 보면 언젠가 되니까요."

"하하, 정말 언젠가는 되는 걸까요."

"그럼요. 포기 하지만 않으면 되지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어느 정도 단계를 넘으면 몸도 마음대로 안될 때가 있어요.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안 따라오는, 그럴 땐 그냥 계속해야 해요. 되거나 말거나 그냥 하다가, 또 한 번 넘어서는 거죠."


직장인 시절 취미로 목공을 배우러 다녔다. 웹디자인처럼 화면에서 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실체가 있는 것을 만든다는 게 멋져 보였다. 성신여대(여대!) 입구에 있던 공방인데, 공방과 카페를 겸하는 곳이어서 가끔 맛난 커피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3개월의 피스 가구 만들기 과정을 마치고 수공구를 이용한 짜맞춤 가구 만들기 과정까지 수강했다. 짜맞춤 가구의 기본은 수공구를 다루는 것에서 시작한다. 끌과 대패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날은 어떻게 연마해야 하는지, 톱질은 어떻게 하는지를 배운다.


3개월 과정 중 두 달이 넘도록 날을 갈았다. 6개 끌 세트를 꺼내어 놓고 날이 평평해지도록 갈면 선생님께서 오셔서 쇠자를 갖다 댄다. 형광등에 비추어 날과 쇠자 사이로 빛이 통하지 않으면 잘 된 것이다.

피스 가구 만들기에서는 공방 사장님 같았던 선생님이, 짜맞춤 과정이 되자 머털도사의 스승인 누더기 도사님처럼 보였다. 도술은 안 가르쳐주고 허드렛일만 시키는 스승님 말이다.


피스 가구 과정에서는 작은 테이블, 협탁, 서랍장까지 만들었지만, 짜맞춤 과정에서는 쌀됫박 하나 만든 것이 최종 결과물이다. 날만 갈다 3개월이 날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좀 허무하긴 했지만, 쌀됫박은 오일로 마무리해서 지금까지 잘 쓰고 있다(쌀을 담진 않는다).


목공도 요가도 결국 지루한 반복 없이는 나아갈 수가 없다. 이걸 해서 뭐하나, 이게 되긴 하는 걸까, 치고 올라오는 의심과 싸워가며, 하루하루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일이다. 선생님이든 스승님이든 낚시터에 데려갈 순 있어도 고기를 잡아줄 순 없다. 결국 해내든 포기하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솔직히 나는 왕비둘기 자세를 해 낼 자신이 없다. 그걸 해야 할 확실한 이유도 없다. 다만 시키는 건 성실히 해내는 편이다. 아직까지는 요가가 좋아 문을 여는 것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어느 새벽 '어? 이게 되네.' 하고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한다면 좋고, 아니면 뭐, 할 수 없는 거고 말이다.


"오빠, 손님방에 책상 좀 하나 만들어 주세요. 기성품은 아무리 아도 딱 맞는 게 없네."

유일한 손님인 니콜에게 주문이 들어온다. 힘들고 귀찮고, 투덜투덜 거리지만 머릿속에 벌써 도면을 그리고 있다. 필요한 목재를 계산하고 공구를 꺼내어 손질한다. 한 동안 쓰지 않았던 대패는 녹이 슬고 끌은 이가 나가 있다. 어떻게 하는 거더라? 오랜만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숫돌에 물을 뿌리고 끌을 잡는 순간 몸이 기억한다. 이걸 꼭 해야 하나 싶던 일은 돌이켜 보니 꼭 필요한 일이었다.


아내와 함께 한 달에 한 번 여는 서점을 하고 있다. 주말 서점도 아니고 월간 서점, 오픈일도 일정하지 않다. 당연히 매출은 얼마 안 되고, 오픈일에는 숙박 손님을 받을 수도 없으니 할수록 손해인 장사다.


그럼에도 시작했으니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보려 한다. 한 명이 오든 두 명이 오든, 어쩌면 한 명도 안 오는 날도 있겠지. 그러다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뒤 돌아보며 씨익 한 번 웃어주고 미련 없이 접고 싶다.

그때 즈음의 우리에겐 어떤 것들이 남아 있을까. 당연히 돈은 아니겠지. 책으로 맺은 인연, 한 달 한 달의 추억. 어떤 것이 되었든, 이렇게 되려고 했었구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구나 하며 서로 꼬옥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 달 서점 오픈은 24일입니다. 제주에 계신다면 반갑게 맞이 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등록 감사드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