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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Nov 18. 2022

엄마야 아빠야, 클럽 살자

 취향의 자리를 찾아서 / 용인 캐리비안 베이

서울에서 직장 초년생으로 정신없던 어느 날, 동생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형, 나 첫 외박 나가(목소리에 떨림과 감격, 비장함 따위의 감정이 섞여있다)."

군인에게 있어 첫 외박의 의미는 뭐랄까, 영화 쇼생크 탈출을 떠올리면 좋을 거 같다. 주인공 앤디가 숟가락으로 땅굴을 파고 하수구를 기어나가, 쏟아지는 폭우 속에 자유를 만끽하는 장면. 아니면 15년 동안 만두만 주야장천 먹다 탈출한 올드보이의 오대수는 어떨까.


자대 배치를 받고 첫 면회를 갔을 때, 수척했던 동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거칠고 붉게 튼 피부, 부러진 뿔테 안경은 면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었다. 

"안경은 어쩌다 그랬니? 응 축구하다."

"그래, 축구를 얼굴로 했구나."

"머리는 그게 뭐냐."

"어, 그냥 우리부대는 다 이래."

어설픈 이발병의 솜씨에 머리는 머리칼이 아니라, 털이 되어 있었다. 스타일이 없는 것이 스타일이랄까. 


지하철 역 계단을 오르는 한껏 멋 낸 군인 아저씨, 어떻게 해야 잘 놀았다고 소문이 날까. 그냥 술 한잔 하는 거 말고 좀 더 특별한 경험은 없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먼저 서울 살이를 시작한 만화과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짜식 진작 전화하지, 동생이랑 홍대로 튀어와! 형 여자 친구랑 클럽 갈 건데 같이 가자."

'짜식아 봐라 인마. 형이 해냈다. 들어는 봤니 홍대 클럽, 쭉쭉빵빵 언니들과 이 밤이 가도록 몸을 흔들어 보자.'


몇 벌 없는 옷 중에 가장 힙해 보이는 옷을 입혀 홍대로 갔다. 선배는 어딘가 음습해 보이는 골목으로 우릴 인도했고, 거기서 더 음습해 보이는 지하로 내려갔다. 쿵 쿵 쿵 쿵! 두터운 문 뒤로 심장을 바운스 시키는 비트가 흘러나오고 우리의 심장 역시 박자를 타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클럽의 풍경은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귀청이 떨어질 듯 음악이 흘러나온 것 까진 좋은데, 상상했던 장르가 아니다. 디스코도, 테크노도, 하우스 뮤직도 아닌 헤비메탈이 미친 듯 포효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맥주병을 손에 든 과격해 보이는 사람들이 모가지가 떨어져 나갈 듯 머리를 돌리고 있다.


"야, 어떠냐, 분위기 끝내주지?! 뭐해 인마, 같이 흔들어."

음악은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선배와 사람들은 광신도들의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점프를 하기 시작했다.

"형. 나 목이 너무 아파, 우리 그만 가면 안 될까?"

황홀한 밤을 선사하겠다 호언장담했던 형은 순식간에 쪼그라들고, 클럽을 나온 우리는 아픈 목을 부여잡고 근처 술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선배가 미웠고, 내가 싫었다.


우리가 진정한 핵인싸

더 이상 내 인생에 클럽에 갈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마흔여섯이 된 지금,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클럽문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것도 인싸들이 즐긴다는 풀파티라니.

해적선을 점령한 크라켄을 형상화한 무대에서는 DJ가 현란한 멘트를 던지고, 젊은 열기를 마구 뿜어내는 선남선녀들이 뒤 섞여 미친 듯이 야광봉을 흔든다. 그 시절 동생과 내가 꿈꾸던 그런 풍경이었다.

부우~~~ 하고 나팔소리가 울리면 저 멀리서 파도가 시작되고 위험 구역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울린다. 쑴은 아빠 등에 업혀 파도를 피하려 하지만 1m가 넘는 파도에 둘 다 꼬르륵, 어푸어푸 거리며 올라와서는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거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니콜도 함께 웃다가 비트에 맞춰 몸을 흔든다.

그야말로 난장판 형식파괴 풀파티였다.

쌀쌀한 밤 기온에 몸을 녹이려 들어간 온수풀에서는 거품이 보글보글, 안경엔 금세 뿌연 김이 서린다. 우린 서로를 꼭 끌어안고 캐리비안 베이의 밤하늘을 바라봤다. 연애시절, 둘이서 핫바로 주린 배를 채우며 놀던 캐리비안 베이에서, 셋이 되어 춤을 추고 부둥켜안고 있다. 그 시절의 젊음은 잃었지만, 그만큼의 젊음을 간직한 딸이 생겼다.

홍대에서의 슬픈 추억이 내 인생 마지막 클럽이라고 생각했는데, 마흔여섯 살 아저씨도 즐길 수 있는 클럽이 생겼다. 쑴이 이번 여행 최고의 장소로 꼽았으니 매년 클럽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신나게 잘 놀고 호텔방에 누우니 동생 얼굴이 떠오른다.


'미안해 브라더, 형이 진짜 좋은데 찾아놨어. 이번엔 진짜야! 우리 둘이 한 번 가자꾸나(와이프 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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