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기록] 작은 도서관 '어린이 글쓰기 과정' 첫 번째 시간
동네에 있는 학교 옆 작은 도서관. 글쓰기 시간에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신청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주 동안 계속되는 오후 돌봄 중에 나에게 배정된 시간은 목요일 2시간. 글쓰기의 특성상 예비초등학생부터 받는 다른 반과 달리 초등학교 3학년 이상으로 연령을 제한했다.
하필 날씨도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섯 명 중 남매인 두 명이 못 온다고 연락이 왔다. 또 하나의 변수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 두 명이 돌봄이 필요해 부득이하게 이 시간에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초2~초4 아이들 5명으로 정원이 맞춰진 나의 첫 어린이 글쓰기 시간이 시작되었다.
자리에 앉은 아이들에게 노트와 연필을 나눠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제가 능력이 있었다면 여러분이 쓸 수 있는 컴퓨터를 개수별로 들고 오고 싶었어요.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 맞춰서 노트에 쓰도록 하고 다음 시간부터 패드나 노트북을 가져오고 싶다면 허락할게요.”
아이들은 “정말요?”라고 되물으며 지금 가져와도 되냐고 확인했다. “괜찮다”라고 했더니 한 친구는 정말 집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왔다.
내가 처음부터 디지털 글쓰기에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노트라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오프라인 교육의 특성상 어쩔 수 없기도 했고 아이들이 글을 쓸 때는 손글씨로 쓰기를 권해야 한다는 전혀 근거 없는 믿음 같은 게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린이 글쓰기 지도자 과정’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내 고정관념은 가볍게 깨어져 나갔다.
'종이에 써야 한다'는 규칙을 없애주면 글쓰기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넓어집니다. 노트에는 몇 줄만 쓰던 아이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매일 글쓰기 분량을 늘려갑니다. (...) 아이들은 컴퓨터, 태블릿, 휴대폰을 손에서 놓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런 기기들은 아이들 손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어요. 종이는 글쓰기를 숙제로 여기게 하지만 전자기기는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친구처럼 느끼게 합니다. 또 종이라면 다 쓸 때까지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주지만 온라인상이라면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거나 다른 일 때문에 자리를 떴다가도 언제든지 다시 와서 글을 이어가기 쉽습니다.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오수민 지음, 초록비책공방, 2023)』, p. 211)
또 하나, 아이들에게 약속했다.
“이 시간에 공책에 적은 내용은 부모님에게 보여드리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글씨를 못 썼다고 또는 내용이 이상하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한 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말을 이어간다.
“정말요? 뭐든 다 써도 돼요?”
“막 낙서해도 돼요?”
“욕도 써도 돼요?”
쏟아지는 모든 질문에 나는 “그럼!”, “그래도 돼!”라고 웃으며 답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들은 아이들은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이구동성 외쳤다.
“진짜요?? 욕을 써도 된다고요???”
놀라는 것과는 달리 표정은 즐거워 죽겠다는 듯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때 비로소 아이들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긴장을 푸는 듯했다. 그래, 절반은 성공이다.
아이들도 나와 비슷했던 것이다. 노트에 글을 쓰는 일을 ‘노동’이나 ‘수업’으로 여기며 내가 쓰는 글에는 예쁘고 올바른 말만 들어가야 한다는 고정관념. 위 책을 읽고 가지 않았더라도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손글씨의 가치를 설파하고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이지 기준을 설명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긴장이 풀린 것까지는 좋았으나 너무 편해져서 글쓰기보다 수다를 떨려하는 아이들을 다잡느라 나머지 시간에는 진땀을 뺐다. 자기소개용으로 준비한 ‘나만의 필명 짓기’와 글쓰기를 하기 싫은 이유 적어보기 정도를 겨우 시늉만 했다. 그래도 각자 지은 자신의 필명을 노트 앞에 적고 명찰도 만들었다.
글을 쓰기 싫은 이유에는 역시나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간다’, ‘손가락이 너무 아파 암에 걸릴 것 같다’, ‘예쁘게 안 써진다’ 등 손글씨 쓰기의 고충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오프라인 교육의 고충이 또 하나 있었다. 디지털 글쓰기는 내가 눈으로 읽고 내용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감상을 전달하기가 용이하다. 반면 노트에 적은 글은 각자 낭독하는데, 아이들은 부끄러워서인지 국수 말아먹듯 휘리릭 빨리 읽어버려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었다. 공감을 충분히 해주지 못해 아쉬운 점은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다음 시간까지 고민해 봐야겠다.
다음 시간에는 본격적으로 내가 만든 글감들로 아이들에게 글쓰기 요리를 제안해보려 한다. 아이들은 모두 타고난 요리사임을 믿는다. 내가 좋은 재료, 좋은 글감을 준비하는 게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