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잭 콘필드『처음 만나는 명상 레슨(불광출판사, 2014)』
지난해 20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 제주로 다시 돌아왔다. 2024년이 휴직이라는 그늘 아래서 제주도를 음미하던 시기였다면, 2025년은 완전한 백수, 인생의 백지 상태에서 제주에서 내 기반을 다져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어떤 전문성을 쌓을까, 뭐부터 배워볼까, 많은 생각 끝에 가장 우선순위로 꼽힌 것은 다름 아닌 ‘명상’이다.
명상? 생계용 직업으로도 그동안의 커리어로만 봐도 살짝 뜬금없다. 나에게 명상은 농사를 짓기 전, 땅에 거름을 치는 행위와도 비슷하다. 열심히 살아왔으나 진짜 온전한 나를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기에 항상 주변을 더 의식하는 나. 그런 만큼 중심을 잡지 못하니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 불안이 밀려왔다. 그래. 명상부터 시작하자. 처음부터 시작하자.
마음의 때를 깨끗하게 씻어내고 싶을 때 종종 찾는 동네 책방 한 곳이 있다. 영성 관련 책 큐레이션이 잘 되어 있어, 어느 날 들어가자마자 명상 책 추천을 부탁했다. 책방지기님은 분야별 세 권의 책을 골라 주었는데, 나에게는 이것보다 『처음 만나는 명상 레슨』이라는 제목의 책이 더 눈에 들어왔다.
‘레슨’이라는 단어에서 초심자가 차근차근 할 수 있는 매뉴얼을 제시해 줄 것만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 역시 명상을 피아노 배우는 일에 비유한다.
피아노를 배울 때처럼 명상에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가끔, 여기저기서, 조금 연습한다고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피아노 연주든 명상이든 중요한 무언가를 진심으로 배우는 데는 참을성과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p. 12)
피아노를 치려면 피아노 앞에 앉는 자세부터 건반 운지법에서 악보 읽는 법 등등의 이론을 배우는데, 책에는 명상을 하는 자세와 명상의 종류, 명상을 하면 좋은 점 등을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명상을 처음 시작하며 자신의 호흡을 바라보고, 몸의 느껴지는 모든 감각에 집중하는 내용은 이론적으로는 익숙했다.
명상을 하는 동안 몸에서 어떤 감각을 느끼면 그 감각에 이름을 붙여보십시오. (…) 이름을 붙이면 나와 감각 사이에 간격이 생깁니다. (…) 가렵다고 바로 긁는 것이 아니라 “가렵구나, 가렵구나, 가렵구나.”라고 말해봅니다. (p. 47)
위에서 말한 ‘이름 붙이기’ 방법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차가움이든 따뜻함이든, 긴장이든 고통이든, 모든 감각이 마찬가지’(p.47)로 이름을 붙임으로서 그것을 하나의 존재로 형상화할 때 감각을 그저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생각이나 계획, 기억도 같은 방법으로 그것이 떠오를 때마다 이름을 붙여서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명상의 포인트다.
이 책에서는 위빠사나 명상, 통찰 명상에 대해 소개하는데 이를 보완하는 ‘용서의 명상’과 ‘사랑의 명상’도 따로 다룬다. 저자는 용서가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한 핵심 기술 중 하나’(p.91)라고 강조한다. 용서라고 하면 나에게 잘못한 타인만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1) 타인에게 상처를 준 자신을 먼저 용서한 뒤에, 2)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을 할 수 있는 만큼 용서하라고 조언한다. 나 자신을 먼저 용서하는 명상, 한 번 시도해 볼 법하다.
걷기 명상과 먹기 명상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어 보이지만,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하기 힘든 명상이지 않을까 싶다. 아예 움직이지 않는 것 이상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일은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명상이 어렴풋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그러나 명상을 실제 하지 않으면 그저 피아노 앞에 앉아 눈으로 악보를 읽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명상을 왜 하려는지 가만히 생각해봤다. 책에 그 답이 들어 있었다.
통증 없이 앉아 있는 게 명상의 목표가 아닙니다. (…) 연민과 부드러움, 자비심과 이해심으로 기쁨과 고통 모두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네는 법을 배우는 것이 보다 유용합니다. (p. 50)
내 몸과 마음에 친절해지는 것, 그 힘을 바탕으로 이웃과 주변에 사랑을 베푸는 것, 통증 없이 앉아 있는 행위에 목표를 두기보다 가만히 바라보는 여유를 훈련한다면 내게도 가능한 일이 아닐까.
힌두 요가 스승 스와미 사치디난다는 “파도를 멈추게 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서핑을 배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명상의 핵심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저자는 레슨을 마치며 명상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언급한다.
명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날마다 명상하는 것입니다. (p. 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