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양미 작가의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동녘, 2024)』
여러모로 첫인상이 강렬한 책이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도서 관련 오픈채팅방 중 한 곳에서 누군가 이 책을 추천했을 때 표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손으로 꾹꾹 힘주어 쓴 듯한 폰트에서 시골살이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아 보였다. 시골생활의 찬양보다는 더 큰 문제의식에 대해 공론화하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런 폰트랄까.
책을 펼치고는 한 번 더 깜짝 놀랐다. 제목이야 원래 크게 강조하기도 한다 쳐도, 내용에 해당하는 글씨 크기까지 이리도 시원시원할 수가 있나. 책 크기는 일반 책자인데 내지는 큰 글자책과 같았다. 평상시 읽는 책들의 글씨가 전부 검정이었던 것과 비교해, 이 책은 녹색을 쓴 점도 특징이다. 글자가 커서인지 글씨색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가 작용했는지, 책을 읽는 내내 피로감 없이 편안하게 술술 읽혔다. 아니 그것은 저자의 필력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는 2015년부터 시골생활을 시작한 양미 저자가 겪은 시골 생활의 현실을 개인적 취향이나 감상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한 내용을 모은 에세이다. 사회운동 활동가와 정당 활동, 여러 종류의 임금노동을 해온 저자에게 시골살이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저항이자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실천 운동으로 느껴졌다.
“나는 유연한 노동시장과 불안한 삶을 고민하다가 시골로 이주했다.”(p.13)는 들어가는 글의 첫 문장부터 “임금노동자되기를 그만두고 처음 깨달은 것은 ‘나는 얼마나 삶의 기술에 무지한가’였다.”(p.39)라는 고백까지, 수많은 문장들이 제주로 내려온 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저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삶의 기술을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 공정무역 생두로 직접 커피 볶아 마시기
- 바느질을 배우고 옷 만들어 입기. 그와 더불어 바느질로 할 수 있는 소품 만들어 쓰기.
- 막걸리, 맥주, 와인 만들어 마시기.
- 아토피에 좋은 비누와 스킨, 로션, 생활재 만들기. 가능한 한 이때 들어가는 재료들을 직접 추출하기.
- 음식 만들어 먹기. 살림 배우기.
- 친구들과 함께 5평 주말농장 가꾸기.
- 시장에서 주운 사과 박스로 공간 박스 만들기.
- 도서관 이용하기.
- 책은 가능하면 헌책으로 구입하고 다 읽거나 읽지 않는 책은 중고로 내다 팔기.
- 투쟁하는 사업장이나 장소에 응원과 지지를 담은 마음으로 음식을 들고 방문하기.
- 중고물품, 직접 만든 물건이나 음식, 농산물들을 거래하는 마켓을 열거나 그런 마켓에 참석하기.
- 다른 삶과 대안운동 배우기.
굉장히 공감되는 내용이다. 이 중 ‘살림 배우기’는 나 역시 절실한 항목이기도 하다. 이는 단지 시골살이할 때만이 아니라 인생을 사는 누구나 자신의 살림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바느질은 그저 점수를 받기 위한 과목에서 멈췄고, 모든 것은 돈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 그럴수록 나는 내 삶에서 소외되었고 불안은 높아져 갔다. 나에게 필요한 삶의 기술 항목부터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2부에 나오는 ‘연결될 권리: 시골과 이동권’ 역시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제주에 내려와 사는 곳은 시내 중심가에 해당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으로는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 혼자라면 어떻게든 극복해 보았을까, 아이 등하원 미션 앞에서 나는 결국 평생 차 없이 살아보리라는 다짐을 서둘러 접고 운전연수를 받았다. 저자가 살고 있는 진안의 사정은 더욱 열악했다. ‘버스’라는 단어를 ‘비행기’로만 바꾸면 해외여행을 할 때 비행기를 경유해 이동한다고 말해도 좋을 만한 경험담을 들으니, 이동권을 완전히 빼앗긴 시골 현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3부 ‘돌봄에는 장소가 필요하다: 시골과 주거권’은 빈집은 늘어가지만 살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집에 대한 공급과 지원은 현실에 맞지 않은 사례들이 소개된다. 이제 주거권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주거가 부동산 산업에 전부 편입된 우리나라의 현실 앞에서 시골을 중심에 둔 주거 현실의 민낯을 볼 수 있었다.
이어 시골에 사는 여성과 청년, 지역 활동가,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이 책은 다룬다. 큰 차이가 있다면 이런 주제들을 시골의 관점에서 시골을 중심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가 중심이므로, 도시가 급하니까,라는 이유로 시골을 늘 뒷전이었고 여전히 뒷전이다. 그저 시골은 보이지 않게 가려진 그 무엇으로만 남아 있어야 하는 걸까. 그러면서 우리는 지방 소멸을 걱정하고 있는 걸까.
다시 나의 위치로 돌아와 본다. 저자와 생각의 출발은 같았으나, 나는 대충 타협하고 포기하고 나만 살고 보면 된다는 자세로 모든 상황에 임했다. 저자는 “모든 개인의 삶은 구조와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p.19)고 했다. 내가 속한 이 사회의 구조, 그동안 살던 도시와는 다른 제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겠다. 이것은 내가 추가할 ‘나에게 필요한 삶의 기술’ 중 하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