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집 05] 아무튼책방과 함께 읽은 『돌봄이 돌보는 세계』
서울에서 20년 가까이 한 직장을 다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돌연 휴직을 했다. 몸도 몸이지만 피폐해진 정신과 마음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가족들과 제주로 내려왔을 때 우연하게 ‘자기 돌봄’과 관련한 교육을 수강하게 됐다.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힐링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뭔가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계속됐다.
그러던 차에 자주 가던 책방에서 ‘돌봄’ 공부를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주셨다. 와, 재미있겠는데? 4~5명의 고정 멤버가 모여 2주에 한 권의 책을 같이 읽었다. ‘돌봄’과 관련한 책을 읽는 모임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각자 읽고 싶은 책들을 자유롭게 읽는 쪽으로 선회했다. 아니, 보는 시각에 따라 우리가 고른 모든 책들은 ‘돌봄’이라는 주제와 연결이 되기도 했다. 양육과 간병이라는 좁은 범위는 물론이고, 젠더와 장애, 관계 등 우리 생활에 속한 모든 영역들에 ‘돌봄’이라는 개념이 스며들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그렇게 읽은 책들이 쌓여갈수록 뭔가 실마리가 잡혔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대안을 찾아내어 희망을 가져보기에 ‘돌봄의 가치’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물결에 그냥 휩쓸려가 버리는 느낌이었다.
『돌봄이 돌보는 세계(조한진희×다른몸들 기획, 동아시아, 2025)』
책 제목은 하염없이 따뜻하다. 돌봄이 돌보는 세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상향인가. 그런데 뒤 표지에는 또 다른 문장 하나가 적혀 있다.
“돌봄은 혁명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의 혁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물리적 투쟁이나 기득권을 쟁취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돌봄의 혁명은 생활 속에서 한 명 한 명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바뀔 때 가능하다. 이건 지구를 뒤흔드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지지부진하고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처럼만 느껴진다.
그래서 어떤 혁명을 해야 한단 말인가. 공부를 할수록 쌓여갔던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었던 대안이 바로 이 책에 나와 있었다. 바로 페미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가 제안한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이다.
이것은 기존 우리의 삶을 지배하던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이 아닌, 임금노동도 하고 가사노동도 하는 여성을 표준 시민으로 설계한 것인데, 낸시 프레이저는 “이 모델이 모든 시민을 돌봄의 주체로 상정하기 때문에, 지금과 달리 일자리는 돌봄 제공자이자 생계 부양자인 이들을 전제로 고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효율성의 가치만을 좇느라, 생산과 재생산 노동을 분리하였고 이를 남성과 여성의 역할로 구분 지어 왔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한 사람의 시민이 자신에게 주어진 생산과 재생산 노동을 균형 있게 해내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보다 건강해지리라고 생각해 본다.
아무튼책방 지기님은 그러한 의미에서 돌봄이라는 개념은 ‘확장’이 아니라 ‘해체’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노동과 돌봄을 구분 짓지 않는 것, 그러한 삶의 자세를 견지하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답답함을 부여잡고 돌봄을 공부해 나가보려 한다.
*이 책과 관련한 더 생생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팟캐스트 ‘책읽는집’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https://dlink.podbbang.com/c179ca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