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 읽는 집

우리나라에 사는 피노키오가 그림책을 만든다면?

[책읽는집 04] 박연철 작가님 편(그림책방 노란우산)

by 제주껏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할수록 코가 길어진다. 왜 코가 길어지는 것일까?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든 티가 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코는 얼굴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데다 툭 튀어나와 입체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조금만 콧대가 높거나 코끝이 뭉툭하기만 해도 단번에 눈에 띄는 신체 기관이다.


피노키오가 목각 인형이기 때문에 코가 자란다는 설정을 했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거짓말을 했을 때 얼굴이 빨개진다거나 심장이 빠르게 뛴다는 표현이 생리적으로 더욱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거짓말 탐지기도 대상자의 심박수를 체크하지 않나.


한국에는 목각 인형이 아닌 진짜 '사람 피노키오'가 산다. 그는 안면 홍조증이 있는데, 사람들 앞에 서면 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지는데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으면 '안면 홍조증'이라고까지 말을 했을까. 아니다, 거짓말을 해서 빨개진 건데 그걸 부끄러워 그런 것으로 이 역시 거짓말을 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피노키오는 자신이 만든 목각 인형을 가지고 1인극을 하는데, 그때의 모습은 부끄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피노키오가 사람이고 그 피노키오가 목각 인형을 만드는 일을 하니, 이야기의 재해석은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며 계속 살아 움직인다.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 중 '박연철' 작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떤 분일까 찾아봤더니 '어처구니 이야기'부터 '떼루데루',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등의 그림책을 만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기승전결을 고수하지 않는다. 결말이 없거나, 갑자기 황당무계한 설정이 등장하거나, 읽는 사람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의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재미'다. 나는 아이를 낳고 난 이후부터 모든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읽었는데 아이는 이 '재미'를 판별하는 심사위원 역할을 해준다. 내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아이가 "재미 없어"라고 말하면 어김없이 그 책은 금방 시들어버린다. 반면 아이가 "오늘 또 읽어줘!"라며 손에서 놓지 않는 책들은 반드시 그런 이유가 있다. 박연철 작가의 책도 우리집 심사위원의 평가를 무난히 통과했다.


또 하나, 책을 읽어주는 나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준다. 평소 그림책을 읽을 때 어느 정도 감정을 이입해 읽기는 하지만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사람'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데, 박연철 작가의 책은 달랐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며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내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감정이 살아 춤을 추더니, 어느 순간에는 마치 내가 그의 작품을 '1인극'으로 공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박연철 작가의 책에는 곳곳에 한 어린아이 얼굴이 박혀 있다. 코가 길쭉하게 자라난 피노키오, 위에서 말한 '사람 피노키오'는 그의 책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아주 작은 거짓말조차도 죄악시된다. 숨기고 싶은 비밀, 감추고 싶은 내면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럴 때 그리워지는 것이 바로 '피노키오'다. 문득 피노키오가 아이들의 수호신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더 생생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팟캐스트 '책읽는집'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팟빵 링크 :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3729/episodes/252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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