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집 03] 제주풀무질 추천 도서 『당신은 연결되어 있습니까』
풀씨(제주풀무질 책방지기)가 추천해 준 책이 도착했다. 고미숙 고전평론가가 낸 신간이라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나는, 손바닥만 한 크기에 시집만큼 얇은 두께에 조금 김이 빠졌다.
책을 아예 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입문서일까. 풀벌레(제주풀무질 일꾼), 풀씨와 대화를 나눠야 하니 읽어는 봐야겠고... 첫 장을 펼쳐 들었다.
친구와 같이 있으면 누구든 생기발랄해집니다. 소리, 눈빛, 손짓 등 다양한 상호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죠. 하여, 청춘과 우정은 그 자체로 동의어라 할 수 있습니다. 배움과 만남, 동경과 추앙, 친밀감과 경쟁심 등 성장에 필요한 모든 활동은 친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15쪽)
가볍게 발을 디뎠다가 완전히 주저앉고 만 도박꾼처럼, 나는 고미숙 님의 화려한 언변에 금세 사로잡혀 버렸다. 그래, 이거였어. 내가 20대 때 고미숙 님의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북드라망)』을 읽었을 때의 환하게 비췄던 앎에 대한 열망, 삶에 대한 의지 같은 것들이 다시금 내 세포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책이 나오는 대로 사봤던 기억까지.
책날개를 보니 이 책은 창비에서 기획 시리즈로 발간하는 ‘교양 100그램’ 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이었다. 이런 기획도 있구나, 흥미가 생겨 목록을 훑어보니 어라, 김영란 작가의 『인생독서』를 이미 사놓기도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유시민, 정혜신, 최재천, 하지현, 변영주, 차병직, 김준형, 권정민 작가의 책들도 덩달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연결’이다. 지금의 청년들이 무기력한 이유는 사람·사회와 연결이 끊긴 ‘고립’과 ‘단절’ 때문이고, ‘연결’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본능’이며, ‘연결’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읽기와 말하기, 쓰기를 제안한다.
저자는 연결,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세 가지 비전으로 ‘밥과 글과 벗’을 언급한다. 이 중 가장 낯선 단어는 ‘벗’이다. 사전에는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이라 나와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우정을 나누는 ‘벗’이 얼마나 존재할까?
지금 시대는 우정이라는 상호작용이 실종된 대신, 누군가 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그동안 외로웠지?’ ‘넌 정말 멋져’라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듯합니다. 이건 우정이 아니라 팬덤에 가깝습니다. (39쪽)
우정 대신 팬덤이 지배하는 세상. 그래서일까. 친구란 말도 SNS 계정을 팔로잉하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이란 의미로 바뀐 것만 같이 씁쓸했다.
또 하나 낯설어진 단어는 ‘고독’이다. 그와 반대로 최근에 자주 들을 수 있는 단어는 ‘고립’이다. 예전에는 물리적 고립을 말할 때만 썼다면, 지금은 너도나도 고립을 말하고 있으니 어느새 일상어가 되어 버렸다. 한시도 빼놓지 않고 온라인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데 우리는 왜 ‘고립감’이 커져만 가는 것인지 되돌아보아야만 한다.
고독이 내적 성장과 변화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능동적 행위라면, 고립은 자신만의 공간으로 후퇴하는 수동적 행위입니다. 따라서 고립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로맨스나 예술을 탄생시키는 내적 충만함의 공간 자체가 증발되었기 때문이죠. 당연히 사색과 성찰도 불가능합니다. 그 좁은 공간에 들어찬 것은 바로 ‘에고(ego)’입니다. 나밖에 없는, 나뿐인 세상 말입니다. (21쪽)
연결되기 위해 필요한 읽기와 말하기, 쓰기를 하기 좋은 공간 중 하나가 바로 ‘동네책방’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독서모임하기 좋다는 것인데, 내용은 쉬운 데 비해 사람들과 꺼내놓고 해 볼 만한 개념들이 풍성하다. 독서모임 책을 찾는다면 이 책으로 모임을 진행해 봐도 좋을 듯하다.
책을 추천한 동네책방 ‘제주 풀무질’은 그야말로 ‘독서모임 맛집’이다. 아버지 책방지기 ‘풀벌레’는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7개의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그 종류도 시집과 그림책, 녹색평론, 인문학 등 다양하다. 아들 책방지기 ‘풀씨’는 2개의 모임을 운영 중인데, 비교적 최근에 나온 소설이나 에세이를 중심으로 책을 선정해 젊은 층이 부담 없이 참여하기 좋을 것 같다.
‘풀벌레’는 독서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라며, 책을 읽고 오지 않아도 모임에서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다고 강조한다. 책보다는 모임에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기분, 말만 들어도 가볍고 따스해진다.
“당신은 연결되어 있습니까?”
책을 덮으며 제목에 다시금 눈이 간다. 그리고 책 속 한 문장을 떠올린다.
공동체의 핵심은 시설과 건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활동과 활동의 연결망에 달려 있습니다. (73쪽)
마을마다 소담하게 마련된 동네책방들이 사람과 사람, 활동과 활동을 연결하는 점조직인 것은 아닐까. 이 점들을 다 잇다 보면 어마무시한 그물망이 펼쳐지겠지.
그것이 내가 꿈꾸는 지향점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과 관련한 더 생생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팟캐스트 ‘책읽는집’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https://dlink.podbbang.com/71ae5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