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임새 달인을 벗어나 내 목소리를 찾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으며
인어공주 이야기.
바다에 사는 인어공주가 어느 날 난파된 배에 탔던 인간 왕자를 구해준 뒤 그를 사랑하게 된다. 인간이 되고 싶은 공주는 인간의 다리를 갖는 조건으로 목소리를 잃게 된다. 얼마 간 왕자의 사랑을 받지만 이웃 나라 공주를 은인으로 알고 있는 왕자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왕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인어공주는 칼로 왕자를 찌르면 다시 인어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공주는 왕자를 찌르는 대신 스스로 물 속으로 뛰어든다. 그런데 더 아름답고 신비로운 목소리를 갖고 불멸의 영혼을 얻게 된다.
성우 교육을 받기로 결정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인어공주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핵심 내용으로만 요약된 동화책으로 접했던 터라 애니메이션을 찾아봤다. 겸사겸사 디즈니 플러스 1개월 구독 지르기. 1989년에 나온 인어공주 오리지널 스토리가 안데르센 동화에 가장 가까운 듯했다.
(인어공주 얘기는 여기까지...)
직장 생활도 몇 년 후면 20년을 채운다. 나는 공공기관에서 홍보 업무를 하고 있다.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재주가 남들보다 조금 있다는 이유로 행사 사회를 보기도 하고 다양한 카피나 글도 작성하고 있다. 여기에 내 목소리는 없다. 미련은 없다. 돈을 벌기 위해 내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거기서 나의 정체성까지 찾으려는 건 욕심이다.
하지만 '나'라는 한 개인을 지켜왔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못했다. 자기 주장이 강했지만 나만의 색깔이 존재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그저 추임새 달인이 되었을 뿐이다. 누군가가 하는 말의 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다는 신호를 하기에 바빴고, 내 가치관과 상관 없이 웬만한 말에는 의견보다는 칭찬과 동조를 보내는 것이 익숙했다. 사람들은 상대의 진짜 내면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부터 내 생각을 담은 글을 쓰려고 SNS을 열었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인어공주처럼 내 인생을 노래하듯 펼쳐왔지만 어느 정도의 경제적 자유와 안정을 얻기 위해 목소리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슬픔이 밀려왔다. 모니터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가 나다운 말을 할 수 없다면 나만의 글을 쓸 수 없다면, 나는 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내 목소리를 찾고 싶다. 왕자의 사랑을 받고자 목소리를 잃었던 인어공주는 살기 위해 왕자를 죽이는 대신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전처럼 인어의 몸이 아니었지만 자신을 찾기 위해 온몸을 던졌고 결과 더 아름다운 목소리와 불멸의 영혼을 얻었다.
나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내면의 바다 속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