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때문에 할 수 없는 일과 나이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의 차이
성우 교육기관에 전화하면 가장 먼저 듣게 되는 질문이다. 이름도 경력도 아닌 나이를 묻는 질문, 처음 질문을 받았을 때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살짝 불쾌하기도 했다. 요즘은 친척들도 나이를 확인하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문화로 바뀌었는데 초면에 불쑥 나이부터 묻다니...
"81년생이에요."
차마 42라는 숫자를 바로 말하기가 민망했는지 나도 모르게 태어난 연도를 대답했다. 나이가 40을 넘어가면서 나는 몇 년생임을 먼저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이를 묻는 질문에 얼굴이 화끈거렸던 건 내가 내 나이를 너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만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성우 교육 과정을 듣기로 결심하고 상담을 위해 전화를 하면 가장 먼저 나이를 물었다. 상담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방송사 공채 시험을 합격해야 정식 성우가 되고 대부분 애니메이션에 투입되는데, 그 역할들은 20대가 가장 잘 소화한다는 것이다. 외모로 치면 모델 업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성우도 결국 어떤 캐릭터를 소리로 가장 잘 표현하는 배우이니까.
목소리에도 나이가 있다. 이 사실을 성우 과정을 알아 보면서 처음 깨달았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목소리는 몸을 악기 삼아 나오는 소리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악기 소리도 조금씩 변하겠지. 지금 나이에 가장 만족하면서도 노화에 대해 생각하면 애잔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성우 시험을 보려는 것은 아니지만 시험 보기는 힘들다는 말을 듣고 있자니 스스로가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럴 때쯤 희망이 담긴 한 마디가 들려온다.
"KBS는 가능할 수도 있어요."
그 때부터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시험에 응시해 볼 생각이 있느냐고 부추기듯 물어온다.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묘하다. 나이 때문에 뭔가를 할 수 없다는 제약을 받을 때의 슬픔과 나이가 있음에도 도전하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았을 때의 기쁨이 짧은 시간에 교차했다. 막상 시험을 보자 하면 망설일 거면서, 시험을 봐도 떨어질 확률이 99%인 초보이면서도 말이다.
상담을 받고 몇 일 후에 카톡으로 링크 주소가 하나 날아왔다.
"KBS 공채 떴어요."
엥~ 나더러 시험을 보라는 소리인가? 시험은 3차까지 있었고 공채답게 채용 과정이 어마무시하게 다가왔다. 그저 웃음이 나왔다. 내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선생님의 친절이 고마웠다. '아직 교육을 시작도 안 했는데 어떻께 시험을 봐?'라고 생각하면서 손으로는 1차용 녹음 원고를 출력하고 있었다. 1차는 녹음 파일 제출이라 비교적 쉽게 응시할 수 있다. 시험을 보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나이임에도 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해 보는 것, 그 짜릿함을 오랜만에 맛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