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란 곧 나를 알아가는 과정의 출발점
"왜 성우 교육을 신청하셨어요?"
내가 10~20대였다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성우가 되어서 좋은 목소리로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어요." 다른 분야도 비슷하다. 젊음은 많은 미래와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앞으로의 꿈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린다. 나의 경우는 다르다. 이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성우 교육을 받지 않는다 해서 "너 이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왜?"라는 질문을 받게 됐을 때 "그냥 듣고 싶어서요"라는 대답으로는 부족하다. "안녕하세요~ 저는 OOO입니다. 지금부터 첫 수업을 시작해 볼까요?" 이렇게 대본처럼 기계적으로 수업이 진행될 수 없다.
그 전에 선생님에게 수줍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Once upon a time...
저는 지금 회사에서 홍보 업무를 하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발행하는 홍보지를 만들고 있죠. 이 직장에 다닌지는 18년째예요. 처음에는 인터넷방송 업무를 맡아서 원고를 작성하고 방송으로 내보내는 일을 하다가 언론 담당, SNS 담당 등을 거쳐서 지금 출판 홍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프라인 매체가 사양 산업이라고 하지만 저는 종이 매체가 정보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베이스 정보를 폭넓게 활용하는 채널을 확장하고 싶어,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종이 홍보지 기반의 팟캐스트 채널을 만들었답니다.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영역을 확장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요.
왜 팟캐스트냐고요? 여기에는 제 개인적 흥미, 사심도 많이 담겨 있는데요. 저는 누군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해요. 심지어는 누군가의 대화를 엿듣는 것도요. 개인 채널을 만들어 볼까도 했지만 성향상 직장내 캐릭터와 완전히 분리된 나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두 가지를 잘 해낼 자신도 없고요. 그래서 제 사심을 일에 녹여 내어 보기로 한 게 바로 팟캐스트예요. 편집 마감시기에는 조금 버겁긴 하지만 아직까지 두 개 매체를 잘 운영하고 있답니다. 팟캐스트 채널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홍보지 낭독 파일도 올려 놓는데요. 성우 교육을 잘 받아서 채널 구독자 분들께 좀 더 좋은 목소리를 전해 드리고 싶어요.
("이전에도 이런 교육을 받은 적 있으세요?")
네. 20대 때는 방송사에 입사하고 싶어 발성과 원고 낭독을 배우려고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다녔어요. 그 때 정말 재미있었어요. 뉴스 낭독을 앵커처럼 흉내내 보고 MC멘트를 적어보았죠. 발성 훈련과 발음 연습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참~! 또 하나 생각이 떠올랐어요. 10년 전쯤일까요? 1:1 성악 레슨도 몇 개월 받았었네요. (오마갓~) 주로 대중적인 이태리 가곡이나 오페라 명곡을 배웠는데 가사도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여기까지는 첫 수업에서 선생님과 나눈 대화의 요약이다. 스스로를 회상하다 보니 옛 기억들이 하나씩 건들여지면서 쏟아져 나올 듯했지만 말을 멈췄다. 다음은 내가 하지 않은 바로 그 말들이다.
대여섯살 꼬마 시절...
날씨 캐스터를 흉내낸답시고 옷장 문 한쪽을 열어 그 안에 우리나라 전도를 삐뚤빼뚤 그렸어요. 예전 날씨 화면은 중국과 러시아 지역이 왼쪽 상단에 위치해 있고 우리나라가 조그맣게 붙어 있는 이미지였어요. 그 위에 고기압 저기악 원형들이 여러 개 겹쳐져 있고요. 비슷하게 흉내낸 지도 문짝 옆에 서서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뭐라도 꾸며야 한다고 생각했나 봐요...) 부러진 안테나를 손에 들고 날씨 예보를 따라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담임 선생님이 합창반을 맡고 계셨어요. 사자머리 파마에 늘 화사한 투피스 정장을 입고 다니셨던 선생님. 이름도 정확히 기억나요. 자신이 없었던 건지 실력이 부족했던 건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합창반을 부러워만 하면서 활동을 하지는 못했죠. 어느 날 선생님께서는 제가 노래하는 걸 듣고 '잘 한다'고 칭찬을 해주셨는데 제 우상같은 분의 칭찬 한 마디에 저는 황홀해졌어요. 그 느낌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네요.
고등학교 때에도 방송반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쭈볏대고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도전도 하지 못하고 기회를 놓쳐 버렸네요.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는 공지 전달 목소리가 얼마나 부럽던지... 내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꿈만 꿨어요.
몇 년 전부터는 판소리를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강해졌어요. 예전에는 거친 소리라고만 생각하고 기피했는데 지금은 내 색깔대로 적당히 지르면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그런 기질을 갖기에 판소리가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예쁜 목소리 이상으로 내 목소리로 살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거든요. 이자람의 공연을 보면서 완전히 빠져 들었고요. 조만간 꼭 도전해 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