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와 나이를 초월한 책 친구를 만나다

서평-『독서-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by 제주껏


책은 나 혼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을 만났을 때 "이런 책 읽어봤어?"란 말을 건넨다는 건 상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하다. 흔히 가까운 사람과는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싸움이 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책이 포함되지 않는 이유는? 싸움이라면 차라리 애정이라도 있다는 뜻일 텐데, 책 얘기를 하는 순간 그 공간은 어색한 침묵으로 뒤덮인다. 주제를 꺼낸 사람은 외계인만큼이나 낯선 존재로 떠오르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책과 관련한 얘기는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된다. 왕따 취급을 받는 책이라는 물건. 이후 책에 빠져드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지 책과는 결별할지 방향을 정해야만 한다.


책에 빠져 살다가 어느 순간부터 책을 멀리했다. 책을 읽는 양 자체가 줄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읽는 책의 깊이나 영역이 매우 한정적으로 변해버렸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다시 책을 친구 삼고 싶어 가까이 가보지만 그게 쉽지 않다. 여태 살아오던 내 관성이 소위 어렵다는 책을 밀어내는 동시에 효율성 높은 자극적 콘텐츠들은 나와 책 사이에 가로막는다.


이러던 차에 만난 책, 『독서(김열규 지음, 비아북 펴냄)』는 나와 책 사이를 화해시켜 주는 매개가 되었다고나 할까. 저자가 한평생 읽어 온 책에 대한 기억을 모으면 이렇게 재미있는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구나, 감탄스러웠다. 사실 이 책은 2008년에 발행된 노쇠한 책이다. 책 제목도 '독서'라는 너무나 광범위하고 평범한 데다 저자 이름도 낯설기 그지없는, 한 마디로 나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할 책이었던 것이다. 단지 최근 독서교육 교재를 공부하다가 인용 문구 중 종종 이 책이 언급되길래 어떤 책일까 하는 호기심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시작했다. 그것도 찾아볼 수 없는 서고 한편에 묻혀 있던 오래된 책. 오래 산 사람이 쓴 오래된 책이지만, 오래됨의 숙성의 묘미를 맛보는 데는 더없이 좋았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부분에서는 한국학의 석학으로 꼽히는 김열규 교수가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의 자신의 독서를 회상한다. 뒷부분에는 책 읽기의 방법에 대한 설명과 김열규 교수의 소위 인생 작품 몇 개에 대한 감상을 담은 에세이가 담겨 있다.


책을 펼칠 때만 해도 저자의 지위가 갖는 무게감에 마음속으로 살짝 고개 숙이며 '얼마나 웅장하게 독서의 매력을 설파하는지 배워야지'하는 긴장으로 가득했다. 한물 간 책에서 내가 '독서'에 대한 걸 얻을 수 있을까, 노친네 잔소리만 담겨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기우였다.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속담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책 안에는 너무나 구수한 이야기꾼 한 명이 들어 있는데, 그는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남성임에도 연설하는 권위보다는 옛날이야기 한 소절을 뽑는 엔터네이너에 가까웠다. 나중에는 이 할아버지 이야기꾼의 매력에 푹 빠져 '그래! 나도 저자처럼 나만의 독서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됐다. 그동안 멀어진 책이라는 친구와의 관계를 책의 저자가 완전히 회복시켜 준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어령 선생이 떠올랐다. 난 김열규 선생이 왜 그만큼의 유명세가 없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순전히 나의 기준에서다). 이어령 선생이 대중들이 열광할 만한 촌철살인 같은 표현과 개념화에 능하다면, 김열규 선생은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 설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차이만 있을 뿐 두 분 다 높은 경지에 있었음을 비로소 발견했다. 전자가 대중매체 스타에 가깝다면 후자는 대학로 연극무대의 스타랄까.


책으로 돌아와 '독서'에 대한 수많은 표현 중에 지금 나에게 가장 꽂히는 문장이 있었다.



이제 글 읽기도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은 내가 가고자 하는 내 인생의 독서 방향이자, 내가 사람들과 책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즐기고 싶은 일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고루할 것만 같은 노교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내 마음에 더욱 큰 파장을 일으켰고, 저자가 '토마스 만'의 작품을 자신의 자서전이라 비유하거나 '릴케'의 작품 속에서 유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독서야말로 생사와 나이를 초월해 친구 맺는 행위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제 책을 반납하면 다시 서고 어딘가 깊숙한 어둠 속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속삭이듯 들려준 저자의 말들, 나와 감정을 주고받은 문구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반짝이겠지.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이제 이 한 권의 책이 계기가 되어 책이, 책을 대하는 모든 사람이 ‘또 다른 나’가 되기를 바라고 싶다. 또한 책을 대하면서 모든 독자가 책과 함께 ‘우리’가 되기를 삼가 빌면서 마무리로 삼고자 한다."는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나도 이제 우리는 꼭 말을 주고받거나 마주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은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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