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형사 박미옥] 서평을 가장한 팬심 가득 팬레터
박미옥 반장님께
안녕하세요. 『형사 박미옥(박미옥 지음, 이야기장수 펴냄)』을 읽고 책을 읽은 느낌을 적고 싶어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편지글 형태로 글을 적자니 실제로 편지를 보내는 것도 아닌데 괜히 부끄럽고 낯 뜨거운 기분이 드네요. 어린 시절, 위인전을 읽고 주인공 인물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쓰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의무감이 있었다면 지금은 넘쳐 오르는 감동과 반장님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존경을 표현하는 데 편지글이 가장 적합한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열어봅니다. (호칭은 반장님이라 하겠습니다. 책 내용 중 '반장님'이라는 호칭이 마음에 든다고 표현하시기도 했고, '형사님'이라고 하면 사건 관계자 같고 그렇다고 '(인생) 선배님'이라고 하면 너무 다짜고짜 가까워지려는 것 같아 조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어느 저녁 샤워를 하면서 듣던 팟캐스트(듣똑라)에 이름도 생소한 '박미옥' 형사가 나왔는데 '우리나라에 이런 형사가 있었다고?' 싶은 놀라움이 들었습니다. 목소리는 다정하고 그 내용은 담백하고 시원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말도 반장님의 말을 통해 들었을 때의 진실됨과 무게감이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애초에 말을 돌려 하거나 화려하게 장식해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상대방의 질문에 정확하고 오해 없이 답을 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느껴졌는데, 그것이 반장님을 가장 반짝이게 하는 아우라 같았습니다.
아, 이 사람이다! 하는 느낌. 방송을 더 들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샤워를 하다 말고 이름을 검색했고 최근에 책을 내셨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책을 바로 주문하고 도착하자마자 책에 빠져 들었습니다. 어제 저녁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그 여운을 간직한 채 씻으러 들어갔는데 뭘 들을까 검색하다가 또다른 팟캐스트(책읽아웃)에도 반장님 인터뷰가 올라와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아, 이제 나는 박미옥 형사에게 포위됐구나. 사방이 박미옥이구나' 하면서 말입니다. 두 번째 인터뷰 방송은 아껴듣고 있습니다. 이전 방송과 책의 단순 반복이 아니라, 매체마다 다양하게 변주되는 말들에 푹 빠져 있다고나 할까요?
저는 왜 반장님의 말에, 반장님의 인생에 푹 빠져 버린 걸까요? 어떤 이유로 아무 의심도 없이 완전히 기대어 버린 걸까요? 첫 번째는 반장님이 살아온 인생이 너무나 입체적이라 흥미진진했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떠올릴 때 이렇게는 살아봐야 하지 않겠어? 하는 삶 말입니다. '대한민국 여경의 전설'이라는 수식어보다 더 매력적인 인간 박미옥의 이야기도 그렇거니와, 반장님이 거쳐온 수많은 가해자와 피해자들 역시 어떤 한 인간의 이야기로 들려왔습니다. 방송에서 "대단한 야사를 담았을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사건 앞, 사람 앞에서 주저했던 이야기를 담았다"면서 이것을 '신의 한 수'라고 하셨습니다. 반장님의 조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수많은 수사물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주저함의 묘사가 책에는 생생히 표현돼 있었습니다. 제가 여태 봐 왔던 경찰 이야기 중 이보다 더 스펙터클한 것은 없습니다.
두 번째, 사람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그것이 감정만이 아니라 삶의 실천으로 이어졌기에 더욱 날 것 그대로 다가왔습니다. 오늘 아침, 아이의 배변이 묻은 속옷을 맨손으로 빨면서 '아, 어쩌면 형사의 삶이란 남의 오물마저도 내 손으로 빨아내며 보람을 느끼는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예전에 『혼밥판사』라는 책에 나온 세상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며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봤습니다. 두 직업 모두 파렴치한 범죄자에서 연민 어린 피해자,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판사가 옳고 그른 것을 이론대로 짚어주는 사람이라면 경찰은 남의 오물을 제 손으로 치워내야 하는 역할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판사의 책과 비슷한 사건을 다루더라도 전혀 다른 결로 읽혔습니다.
'전생형사'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퇴직 전 직업을 전생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무척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전생을 뜨겁게 살았고, 이생에 온 이후로는 다시는 전생을 기웃거릴 미련도 없을 테니까요. 저도 지금의 제 일을 훗날 '전생'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겠습니다.
책방을 하신다고요.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지인들이 머물다 가는 곳, 힘든 사람들이 마음을 털어놓고 가는 곳이라 하셨습니다. '이미 현장이 된 사람보다 현장이 되기 이전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으로 만든 공간이라는 말에 마음이 시립니다. 반장님이 현장에서 느꼈을 끝 모를 무력감, 분노, 연민과 사랑이 동시에 전해지는 듯합니다. 10년 후쯤에는 '죽음 앞 카페'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얘기하는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 공간의 최애 단골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제주에 사신다고 들었습니다. 어쩜, 제가 좋아하게 된 사람이 제 고향에 살고 있다니요. 저는 제주에서 20년, 서울에서 20년 넘게 살았습니다. 올여름에는 제주에서 1년살이를 할 예정인데, 반장님이 계신 제주를 생각하니 하루라도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문득 반장님과 제주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 제주 여자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생각도 듭니다.
책의 시작 문장을 다시 한번 읽어 봅니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착하게 살고 싶었다.
다만 착하게 사는 데도 기술과 맷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저 또한 착하게 살고 싶었으나 기술과 맷집을 갖추지 못해 그저 포기하고 불평불만이나 일삼으며 스스로를 걸어 잠근 제 자신이 보였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반장님 덕질을 하면서 그러한 기술과 맷집을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다시 일어서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혹여 소심한 마음에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책방 앞을 기웃대는 여성을 발견한다면 스토커라 의심치 마시고 책처럼 다정하게 맞아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