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 리더과정-3강] 논제문 쓰기
독서토론에 필요한 3요소는 진행자와 패널, 그리고 논제이다. 이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한다면 지휘자와 연주자, 그리고 악보라고 할 수 있다. 독서토론 리더과정에서는 총 8강 중 6강 동안 논제문 쓰기를 훈련한다. 좋은 음악(책)을 다 같이 연주(읽고 토론하기)하도록 하기 위해 지휘자(진행자)는 악보(논제문)를 잘 만들고 다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취미 연주자 또는 음악 감상자는 악보를 잘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만, 지휘자가 되기 위해서는 악보를 잘 '써야' 한다. 3~4강의 강의는 악보(논제문)를 직접 써보고 실제 지휘(진행)까지 해보는 실습이 진행됐다.
논제 만들기
눈으로 익힌 일과 직접 해본 일의 차이는 크다. 독서토론 입문과정에서는 진행자가 뽑아온 논제에 어떤 대답을 멋들어지게 할 수 있을까를 위주로 고민했다. 오케스트라 전체에 내가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가능하면 나의 연주가 돋보이도록 나 자신에게만 몰두하면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는 지휘를 해야 한다. 진행자의 입장에서 논제를 만들 생각을 하니, 책을 읽는 순간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가질까, 어떤 내용을 흥미로워할까, 토론하는 책의 주제를 잘 드러내는 내용을 뽑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나의 관심은 완전히 밖을 향해 있었다. 관심의 방향이 달라지니 밑줄의 위치도 바뀌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부분에 밑줄을 긋거나 나중에 활용하기 위해 별표까지 쳤다. 그런가 하면 이전과 달리 밑줄 없이 넘어가는 부분들도 생겼다. 논제를 만들 때 필요한 내용에 집중하다 보니 개인적 취향은 잠시 접어놓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처음에는 낯설었다. 내가 해왔던 독서와 완전히 다른 이 방식이 맞는 걸까? 내면을 향하는 독서에 비해 외부적 요소에 치우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그 변화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우선 책에 대한 집중도가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나의 독서 습관은 전체 악보를 보고 있지만 내가 맡은 파트, 그러니까 내 관심사가 나올 때에만 반짝 집중하는 연주자의 태도가 강했다. 그러나 지휘자는 악보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한 부분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가 없는 것이다. 각 연주자들이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애쓰는 지휘자의 자세로 책의 어느 부분이 논제가 될 만한지를 읽고 있는 내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는 3강의 선정 도서인 <침묵으로 가르치기>를 읽고 논제 2개를 뽑았다. 열심히 했다고는 자부하지만 결과는 초보 수준이다. 논제문은 단순한 질문 뽑아내기가 아니었다. 논제문 안에는 그동안 축척된 논제 만들기의 노하우가 쌓여 있었다. 그것은 언뜻 과한 틀에 갇혀 있어 보이지만, 틀이란 내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이게 하는 모양이므로 초보자인 나의 경우는 이를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했다(결과는 다름...).
논제문의 형식은 대략 다음과 같다.
논제문은 4~6 문장으로 작성한다.
논제문 안에 책 내용을 발췌하는 분량은 40~60% 정도로 한다.
한 문장의 길이는 두 줄을 넘지 않도록 한다.
발췌문은 논제문의 1~1.5배 수준으로 뽑는다.
마지막 질문 문장 바로 앞에는 핵심 문장을 배치한다.
이 규칙들 외에 폰트, 줄 간격 등 세세한 형식적 규칙들도 모두 맞춰야 한다.
이렇게 뽑은 논제 중 하나(아래 이미지)이다. 이렇게 어설프지만 가장 많은 정성과 땀이 들어간 나의 첫 악보가 완성되었다. 첫 시간이어서 그런지 선생님은 형식적 부분 위주로 피드백을 해주셨다. 이 논제를 굳이 캡처까지 해서 여기에 올리는 이유는 먼 훗날 내가 어디선가 독서토론을 하고 있을 때 처음 지휘자의 꿈을 품고 떨리는 손으로 악보를 그렸던 지금의 나를 남겨두고 싶기 때문이다.
논제 만들기는 앞으로 8강 때까지 계속 실습이 이어진다. 8강뿐이랴. 논제를 만들고 난 이후 앞으로 나의 독서는 달라질 것임을 확신했다. 이제 나는 주어진 악보를 받는 사람이 아닌 스스로 악보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 음악을 들을 것이기에. 내면을 들여다보는 독서도 좋지만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는 독서의 힘을 키워야겠다. 결국 음악도 독서도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세상 밖으로 걸어나와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