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책을 다 만날 수 있다면"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오다

by 제주껏



올해는 달랐다. 일단 도서전을 대하는 나의 여유 있는 마음 자세. 직장을 다닐 때는 휴일 시간도 겨우 쪼개어 갈까 말까 했겠지만 지금은 잠시 일을 쉬고 있어 평일 예매를 해놓았다. 하루를 전부 도서전에 할애해도 좋은 시간적 여유는 도서전에 더 큰 기대를 갖게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달랐던 것일까. 평일 오전의 여유를 기대했던 내 생각은 완전히 잘못됐다. 입구에서부터 수백 미터가량 길게 늘어선 입장객 줄을 보고 자신만의 기대를 품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열기가 느껴졌다. 10시 입장. 2023 서울국제도서전의 문은 그렇게 열렸다.




이번 도서전의 주제는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 주제관은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B홀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야 주제를 만날 수 있는 구조. 주제에 가장 힘을 주고서는 막상 도서전 구석으로 밀려난 모습이 다소 의아했다. ‘사라지다’, ‘저항하다’, ‘가속하다’, ‘교차하다’, ‘가능하다’의 키워드로 600권의 책을 분류해 놓았는데, 큐레이션이 괜찮아 느린 걸음으로 모든 책들을 훑어보았다. 입구에 들어섰을 때 다짜고짜 대형 출판사 부스와 주빈국의 허전한 부스에 조금 당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발품을 팔더라도 제일 안쪽 주제 전시부터 보고 도서전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도서전 콘셉트부터 느낀 후에 책을 구매해도 늦지 않다. 아니 오히려 구매에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출판사별로 개성 넘치는 부스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평소에 대형 서점의 신간 또는 베스트셀러, 광고도서 위주의 큐레이션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볼 수 있다. 각 출판사가 우리는 어떤 책을 어떤 진심을 가지고 만들었는지 선보이고 싶은 절실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판매되는 물건인 점은 똑같았으나, 챗 한 권 한 권 제 배 아파 낳은 아이를 다루듯 전시부터 큐레이션 문구, 포장까지 제대로 대접받는 모습을 바라보는 경험은 신선했다.


중간쯤 사람들이 몰려 있길래 ‘어느 서점이지?’ 궁금해 발길을 옮겼다. 슬램덩크 코너. 와우, 빠질 수 없지. 놓칠 수 없지. 이 코너 하나만을 위해 도서전에 온 사람들도 꽤 있는 듯하다.


책은 너무나 너무나 매력적인 텍스트이지만 읽기 전에는 소통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그래서 책 행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책 속 문장 또는 나의 독서 스타일 등의 이벤트도 곳곳에서 진행됐다. 나는 백수린 작가의 문장이 담긴 책갈피(창비, 고마워요)와 나의 독서 취향에 따른 여행티켓과 스티커(다산북스도 땡큐!)를 챙겼다. 또 하나, 아침 커피가 간절했던 나에게 유일한 시식코너가 눈에 띄었는데 바로 ‘몽상가들’ 부스였다. 작가가 작품을 쓸 때 자주 찾았던 카페와 콜라보를 해 소설에 나오는 도시(서울과 하얼빈)를 주제로 커피를 만들었는데 그걸 나누어주었다(너무 감사… 꾸벅^^). 커피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던 책(서울 이데아)과 작가(이우)를 시식 커피를 마시는 시간 내내 음미했다.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은 환상 동화 콘셉트를 잘 살려 부스 역시 동화 속 세상처럼 꾸며 놓았다. 처음 보는 책이었지만 부스의 매력에 끌려 책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도서전을 한참 즐기다 보니 이곳에 있는 책의 수가 지구의 사람 수만큼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한 명의 사람을 하나의 책과 같다고 하듯이 한 권의 책도 한 사람의 정신이 담겨 있을 테니까. 어느 순간 나는 오늘 전 세계를 여기저기 구경한 기분이 들었다. 대형 출판사(대도시)의 화려함과 무게감, 그들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보았고 알지 못했던 작은 출판사(마을)들의 자부심과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알게 되었다. 어떤 책은 친한 친구처럼 마구 달려들어 펼쳐 보았고 처음 보는 책 앞에서는 조심스레 표지부터 만져보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대부분의 책 앞에서는 팔짱을 끼고 적당한 거리를 둔 채 표지만 흘기고 지나쳤지만 그럼에도 그 많은 책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을 또렷이 기억에 남겼다.


책은 정말이지 사람과 같다. 내가 지구상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내게 소중한 사람, 내가 기억하고 싶은 사람만 남기면 된다. 책도 그러하다. 그런데 책은 사람처럼 포기가 쉽지 않다. 알면 알수록 이 세상 모든 책을 다 만나고 싶다. 오늘 도서전에 다녀온 뒤로 그 병이 조금 더 심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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