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상] 그림책 『프레드릭(레오 리오니 글/그림, 시공주니어)』
육아휴직을 한 지 3개월 차인 지금의 나는 너무나 한가롭다. 밤마다 다음 날 출근에 대한 압박을 느끼지고 않고 하루 일과를 빼곡하게 짤 필요도 없다. 점심을 먹는 시간도 자유롭고(하지만 매번 12시쯤 식사를 하는 걸 보면 그동안 조직생활에서 쌓아온 나의 생체시계가 다시금 놀랍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보다 관대해졌다. 이런 장점들을 누리면서도 순간순간 '나 지금 너무 놀고 있는 거 아니야?' 하는 불안감이 생겨난다. 그 사이 한우리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고 지금도 독서토론 리더과정 수업을 듣고 있음에도 나는 꼭 놀고 있는 사람처럼 스스로를 대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해 지금까지 -직장 안에서 쉬었을지언정- 한 번도 일을 쉬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도 출산휴가만 끝내고 바로 다시 일을 했다. 그런 나에게 이 정도의 여유를 주는 것조차 사치처럼 여기고 있는 나 자신이 안쓰러웠다.
『프레드릭(레오 리오니 글·그림, 시공주니어, 2013)』 은 4년 전쯤 그림책을 사 모을 때 어디선가 유명 작품이라는 말을 듣고 구입한 책이다. 이 책은 개정판으로 이전에는 『잠잠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었다. 책 표지에는 '칼데콧 아너 상' 수상작이라는 딱지가 붙여져 있다. 책에 등장하는 들쥐 가족의 이야기를 읽는 순간 익숙한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개미와 베짱이'. 프레드릭은 바로 베짱이에 해당하는 들쥐로, 모든 들쥐 가족이 추운 겨울을 위해 식량을 모을 때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은다. 식량이 다 떨어진 후 들쥐 가족이 프레드릭이 모은 것들을 궁금해하고, 프레드릭은 그때 비로소 자신이 모은 따스한 온기와 오색빛깔의 색깔,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굴 속을 채워 나간다.
'개미와 베짱이'의 스토리 구성과 같아서 다 아는 이야기겠거니 하며 설렁설렁 읽다가도, 프레드릭이 모으는 세 가지 요소가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장면들에서는 나 또한 프레드릭의 마음이 되어 본다.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가만히 무언가를 모으는 프레드릭. 우리는 눈에 보이는 움직임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지만 프레드릭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모은다는 행위를 '하고 있다'. 사실 말이 쉽지 내 옆에 누군가가 가만히 있다고 한다면 나야말로 답답해 폭발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만 큰 우리는 무엇을 하든 한시라도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나는 프레드릭만큼이나 들쥐 가족의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들쥐들은 "넌 왜 일을 안 하니?", "지금은 뭐 해?", "너 꿈꾸고 있지?" 하는 질문을 프레드릭에게 던지지만 그 질문에서 어떤 비난의 뉘앙스가 느껴지지 않고, 프레드릭의 대답을 듣고 난 후에도 딱히 반박을 하기보다 묵묵히 곡식을 모으는 자신들의 역할을 해나갈 뿐이다. 책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겨울이 되었을 때 프레드릭에게도 기꺼이 식량을 나눠 주었음을 알 수 있는데, 주변 인물들 역시 프레드릭을 '가만히 지켜봄'으로써 가장 적극적으로 프레드릭의 개성을 인정해 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다시 만난 건 이번 주 독서토론 수업에서였다. 이미 읽은 책이라 대충 훑어만 보고 토론에 임했는데, 많은 참여자들이 높은 평점을 줬다. 아마도 우리가 지켜야 할 다양성의 가치가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메시지가 빤해 보이면서도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선택 논제에서 '내가 프레드릭이라면 무엇을 모으겠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나는 '이야기'를 선택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나는 앞으로 '이야기'를 모으고 싶다. 어떤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막연하고 방대해 글로 표현하기는 조금 어렵다. 그래서 지금 나는 프레드릭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는다. 누군가 나더러 뭐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육아휴직 중이에요."라고 하겠지만 마음속으로는 "이야기를 모으는 중이에요."라고 동시에 소리 내지 않고 답할 것이다.